사람의 삶이 사라진 자리에도 봄은 왔다. 한때 어구를 손질하고 물고기를 잡던 시간들은 잊혀졌다. 그 터전에 공장을 짓고 시간은 종잡을 수 없이 바쁘다. 유채꽃 한무리 곱게 핀 바닷가에 선다. 햇살 찰랑이는 처용암 위로 봄햇살이 따사롭다. 천년전 홀연히 뭍으로 건너 온 처용의 이야기가 아지랑이로 피어난다. 곱지못한 도로를 건너 개운포성에 선다. 세죽마을이란
자연은 공평하다. 사람 흔적은 사라지고 가슴에 새겨진 마을에도 봄은 온다. 처용암과 개운포만이 남아 천년이 넘은 전설을 간직하고 있는 남구 황성동이다. 하얀 벚꽃이 휘날리는 찬란한 봄은 아니지만 소박하게 핀 노란 유채꽃이 처용암을 감쌌다. 병풍처럼 들어선 잿빛 공장에 터전을 빼앗긴 어촌마을의 흔적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처용암도 마찬가지였다. 처음 방문한 사
올해로 '울산(蔚山'이라는 지명이 탄생한지 600년이 되었다. '울주'는 이보다 앞서 2018년이면 정명 1,000년이 된다. 한반도의 동남쪽에 위치한 울산은 '울산'과 '울주'라는 이름을 얻기 전 아득한 선사시대부터 사람들이 모여 살았다. 고대국가와 신라, 고려와 조선을 거치면서 독창적인 문화를 이어왔다. 지명의 변화는 단순한 행정적 변화로
[1] 울산지명의 시원 우시산국 '우불산'울산은 1413년 조선조 3대 임금인 태종 때 '울산'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하지만 울산의 위상은 고려 당시의 지명이었던 '울주'에 비해 크게 떨어졌다. 태종은 지방 행정개편 당시 주·부·군·현 중 '주'에 해당하는 고을에 천(川 36곳), 산(山 23곳)을 쓰도록
봄, 여름, 가을, 그리고 겨울. 계절의 변화는 우리의 일상이다. 하지만 봄은 왠지 특별하다. 따스한 봄날은 어디든지 햇살을 맞으며 만끽해야 할 것 같다. 이를 즐기기 위한 특별함은 단연 벚꽃놀이다. 어쩌면 우리는 흐드러지게 핀 벚꽃을 보며 겨우내 묵혀뒀던 감성을 채우고 싶은지도 모른다. 올해는 어디에서 벚꽃놀이를 즐겨볼까 하다 동구 대왕암공원을 찾았다.
태화강의 봄은 기자에게 있어 소박하지만 특별한 기억을 담고 있다. 3년전에도 딱 이런 바람냄새가 났다. 당시 생소하기만했던 태화강대공원을 다시 걸으니 그 때의 기억이 하나하나 떠오르기 시작했다. 이곳에서 꼭 글감을 찾아내겠다며 대공원 곳곳을 걸어다녔다. 다양한 꽃 씨앗을 뿌리며 봄을 여는 봉사자들도 봤고 산책하던 아주머니도 만났다. 일자리를 잃었지만 다시
따스한 봄기운이 태화강 수면위로 퍼져나가기 시작했다.겨우내 움츠리고 있던 메마른 나무는 햇살에 기대어 싹을 틔우고 사람들은 추억의 뗏목을 타고 그 시절의 봄을 추억하며 오늘의 봄을 맞이한다. 울창한 태화강 십리대숲도 새출발을 상징하듯 넘실대는 초록빛 옷을 자랑한다. 2013년 3월의 어느 멋진날 울산의 젖줄은 만물을 끌어안고 새봄을 열고 있었다. 글=김은혜
#성동마을 회관길 안쪽에 위치울산 도심의 진산(鎭山) 격인 함월산에 자리 잡은 성안동은, 그 자체로 산 머리에 형성된 마을이다. 이 성안동에서 길을 따라 북쪽으로 내려가면 산으로 둘러싸인 성동마을과 풍암마을이 나타나는데, 위에서 보면 그 모습이 오목한 분지 같아서 속세와 격리된 하나의 별천지처럼 보인다. 매섭지만 청명한 겨울바람을 느끼며 2월 하순 찾게 된
정자는 옛 사람들이 자연을 삶속에 끌어들이려 했던 흔적이다. 아름다운 자연 속에 그림처럼 정자를 짓고 자연과 소통하려했던 것이다. 하지만 주변 경관이 수려하지 못한 곳에도 정자가 세워지기도 했다. '모난 땅과 둥근 하늘을 상징하는 직사각형 연못과 그 속에 둥근 섬'(方池圓島)을 만들었고, 여기에 정자를 세웠다. 하늘과 땅, 사람이 만나는 '천지인(天地
#방어진항 '외국인 거리' 13일 오전에 찾아간 방어진항은 여느때와 같이 바다내음이 가득했다. 다만, 눈에 띄는건 약간은 어색해 보이는 영어로 표기된 간판들이었다. 대부분 술집(Western Bar)이었는데, 그 중에는 전통요리를 판매하는 음식점도 있었다. 그렇다고 외국인거리처럼 휘황찬란하지는 않았다. 무심코 지나치면 보통의 한국음식을 파는 식당이라고
직접 보고, 듣고, 경험한다는 건 확연히 달랐다. 외국인 1,500여명이 거주한다는 발 없는 소문과 글로벌 건축거리를 조성한다는 사실만 들어왔기에 마음에 와닿지는 않았다. 울산 동구 방어진항이다. 언제부턴가 그 곳은 외국인들의 둥지가 돼 가고 있었다.바다 특유와 짭조름한 냄새와 이국적 향신료 향이 섞여 오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는 방어진항.아직은 아주 작은
명절은 어머니들에게 특히 고된 시간이었습니다. 어려운 시절, 내 몸 하나 힘들더라도 몇 입 즐겁게 배불릴 수 있다는 우리네 어머니들의 깊고 따뜻한 마음은, 명절증후군이니 하며 내 몸을 더 챙기고 이런저런 핑계로 해외여행까지 떠나는 요즘의 신 명절 풍속도를 부끄럽게 합니다.빠르고 편한 것이 좋아 그 정성과 정겨움은 잊어가는 지금,언양장에서 옛날 방식으로 조금
"내가 5남매를 시집장가 다 보냈는데 명절이면 전국서 다 모여. 손주에 조카들까지 오면 스무 명이 넘지. 직접 농사지은 '냉천쌀'로 골미를 빼 떡국 끓이면 걔들이 그렇게 좋아해. 우리 며느리 말로는 손자, 손녀들도 그 쌀이 맛있어서 다른데 가서는 밥이 맛없다고 할 정도야." 5일 찾은 언양시장 내 부산 떡 방앗간. 설날에 먹을 가래떡을
차가운 강물에서 줄을 맞춰 헤엄치는 철새들에게 무슨 샘통이라도 났을까.둔치를 지나가던 행인이 '어허험' 헛기침을 한 번 해 본다.물 위를 미끄러지는 철새들의 유려한 움직임과 수면을 박차고 오르는 비행, 이곳 저곳에서 수런거리는 새들의 울음소리가 생생해진다. 강이 살아있음을 비로소 느끼게 된다. 해 저물어가는 강 위로 제 식솔들을 이끌고 누구도 가보지 못
#철새의 낙원이 된 태화강매년 가을과 겨울, 태화강은 새들의 보금자리가 된다. 산업화 과정에서 오염의 상징이 되었던 태화강에 새들이 돌아온 것은 불과 10년 남짓이다. 시민들의 힘으로 살려낸 태화강에 새의 먹이가 되는 각종 양치류와 어류들이 늘어나고, 은신처가 되어 줄 갈대밭이 우거지면서 새들이 돌아왔다. 태화강은 예부터 새들이 겨울을 보내기에 안성맞춤인
울주군 언양은 천주교인들에게는 한국판 '카타콤베'다. '카타콤베'는 박해 받은 초기 기독교인들의 신앙과, 삶과 죽음을 경험할 수 있는 로마의 지하무덤이다. 언양에도 한국판 '카타콤베'라 할 수 있는 산중공소(公所)와 성당 등이 산재해 있다. 산중 공소는 19세기 천주교 박해를 피해 전국의 신자들이 언양으로 와서 은거와 예배장소로 활용했던 곳이다.
19세기 천주교 박해 피한 산중은신처 '공소'살티·간월·대재공소 등 영남알프스 곳곳 산재언양성당, 성지 정비·신앙유물전시관 개관 등천주교 부흥 이끈 중심지 역할 오롯이 해내#언양에도 한국판 '카타콤베'로마주변에 산재한 지하무덤 중 상카리노 카타콤베는 지하 4층 20미터 총길이 20킬로미터 총 4만 평의 지하무덤이
곳곳에서 낡고 허름한 마을을 주민들의 손으로 새단장 해 마을에 활기를 불어넣고 있다.이제는 주민들이 직접 참여해 벽화를 그리는 것이 대세가 될 정도.울산 남구의 신화마을, 동구 방어진 슬도 성끝마을 등 가까이에서 예술을 접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아지고 있다.최근에는 북구의 자연부락, 약수마을에도 벽화가 새겨졌다. 신화마을만큼의 길고 화려한 내용의 벽화는 아니
도시와 농촌이 공존하고 있는 울산 북구의 농촌마을에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뚜벅이동네공원사업의 일환으로 북구의 작은 부락인 약수와 냉천, 신기마을 등 지역 6개 마을을 대상으로 공원과 벽화, 텃밭 등 3개 분야를 중심으로 꾸미고 있는 것. 비록 600만원의 적은 예산이지만 지역민과 함께 살기 좋은 공동체를 만든다는 목적 하나로 동 주민센터와 마을 주민들
중구 중앙동과 성남동은 예부터 울산의 중심지이자 구도심의 상징이었다.그런 곳이 젊어지고 있다.문화 거리가 들어서며 도심의 색깔이 바뀌고 있다.중구는 90년대를 거치며 중심 상권이 쇠퇴기를 맞았다. 하지만 최근 몇년동안 '전통'과 '문화', '디자인'이 어우러진 거리가 조성되며 다시 부활의 꿈을 꾸고 있다.시계탑부터 울산 초등학교까지 연결되는 문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