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에 좀 더 심도 있게 접근해 보고자 정토회 불교대학에 입문한 지가 어느새 4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그간 이런저런 사정으로 미뤘던 인도 성지순례 참가를 이번에는 비로소 뜻을 이루었다. 16박 17일이라는 적지 않은 기간이라 마음먹기가 쉽지 않았지만, 최종 결정이 됐을 때는 무척 기쁘고 설빀다.기본교리 과정 부분은 인도를 가보지 않고서는 논할 수 없는 필수코스였다. 더군다나 평소에 따르는 지도법사 법륜스님과 전 일정을 함께 할 수 있는 기회라 더욱 의미가 깊었다.2차에 걸친 사전 안내 교육은 철저했다. 순례 기간
인터넷 뉴스를 검색하다가 '나를 버린 한국이… 따스한 온기에 가슴 뭉클'이라는 기사를 읽었다. 어린 시절 한국을 떠나야 했던 해외 입양인들이 우리 정부가 마스크를 지원한다는 소식에 보인 반응이다.펜데믹이 된 코로나19로 유럽 일부 국가에서는 마스크 구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소식을 듣고 정부가 팔을 걷어붙이고 나선 것이다.해외로 입양된 그 사람들은 어린 시절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우리나라를 떠나야 했던 사람들이다. 그들의 부모는 배라도 곯지 말라고, 좀 더 나은 환경에서 살아가라고 피눈물을 흘리며 절박한 심정
5월의 콩밭 더위는 여름 못지않다. 구순의 어머니는 여전히 밭머리에 있다. 온 몸은 연신 흘린 땀으로 옷은 축축했다. 예부터 동백 울타리로 둘러쳐진 큰댁 집터 자리는 더위 나기가 싶지 않은 곳이다. 하필 그곳에 당신은 노구를 끌고 와서 봄 콩 농사를 심었던 게다. 당신이 좋아하는 싸만코 아이스크림을 건냈다. 섬에 들어서기 전에 사서 단도리를 한다고 아이스백에 넣었는데도 물고기 모양은 온데간데없다. 허겁지겁 먹지 않으면 낭패를 볼게 뻔하다. 아니나 다를까 줄줄 흘러내리고 있다. 입으로 가는 것 보다 밭고랑에 흘리는 것이 더 많다. 조
순전히 지금 사는 우리 동네로 이사 오게 된 결정적 이유는 지번 때문이었다. 도심 속에 살면서 꿈꾸어 온 약간의 은둔과 낭만이 깃든 듯한 '산 26번지', 주소를 아는 순간 '이곳이다' 생각되었다. 나는 이 주소가 좋아 도로명주소로 바뀌고 나서도 한참동안 이 지번을 사용했다. 내비게이션이 있어도 우리 집을 찾아오기란 쉽지는 않은 모양이다. 대로를 달리다 동네 입구로 들어서면 갈레길이 여럿 있는데, 두어 번 왔던 사람들도 헤매기 일쑤다. 그래서 주차를 엉뚱한 곳에 해놓고는 남의 아파트 단지와 구분 짓는 담
깊은 밤 서재에 앉아 날짜와 요일, 그리고 날씨를 습관처럼 쓰고, 오늘의 흔적으로 하루치의 삶을 요약해 정리한다. 보고, 듣고, 경험한 것들이 횡대를 이룬다. 가만히 들여다보니 내 생각이란 놈의 자세가 제멋대로인 것을 알겠다. 매우 주관적이어서 친밀감만은 끝판 왕이다. 못난 모습, 안타까운 모습, 슬픈 모습, 간절한 모습을 품은 지층이 유난히 눈에 들어온다. 가끔은 여유롭고, 괜찮은 모습도 끼어 있다. 모두 관계의 산물이라는 것이 이제야 한눈에 들어온다. 하지만 지난 시간들에 대한 나의 생각은 그리 관대하지 못했다는 느낌을 받는다.
아름답다는 말 만큼 주관적인 것은 없다. 미의 기준은 동서고금, 국가와 민족, 시대와 문화, 철학과 가치관 등 수많은 요소에 따라 모두 다르게 인식된다. 그러나 공감적 상황에서는 서로 마음의 손 내밀어 꼭 쥐고 일치하기도 한다.손을 내민다는 것은 거리를 지운다는 것이다. 믿고 신뢰한다는 말이다. 한 번 두 번 손 내미는 것이 쌓이면 관계는 돌보다 강철 금강석보다 더 단단해진다. 그러나 서로 거리를 유지하는 건 긴장의 피곤한 연속일 뿐이다. 심지어 아예 더 벌리고 점점 멀어지는 건 무심해져 안중에도 없다는 의미다. 그런데 거리를 지우
코로나19 감염병으로 두 달 넘게 개학이 미루어지면서 백수 아닌 백수 생활을 하고 있다. 한동안 '집콕'을 하다가 '확찐자'가 되어가는 것 같아 울산대공원을 걷기로 했다. 공원이 멀지 않은 데도 일 년에 가는 날이 손꼽을 정도였는데, 이젠 출근하는 남편 차를 타고 이른 아침에 집을 나서 4, 50분 정도 공원을 걷는 것이 주요 일과이다. 보통 정문에서 시작해 남문을 지나 장미원과 윗갈티못을 거쳐 유실수원을 돌아 나오거나, 왼편으로 다리를 지나 메타세쿼이아 길을 거쳐 동문을 돌아 나오는 길이 산책 코스이다
봄 햇살이 부시게 내리고, 벚꽃 몇 잎이 아파트 창 너머 떠오르는 것이 보인다. 나비 같다. 망창을 열고 내려다보니 꽃 위에 꽃은 져서 눈처럼 날리고, 바람결에 꽃잎이 순간 날아오른다. 한참을 내려다보다 돌아서는데 낱말 하나가 가슴 속에 가만히 들어찬다. '속절없다' 올해처럼 이렇게 속절없이 봄이 왔다가는 해도 있구나 싶다. 구태하다고 외면했던 이 낱말이 이리도 적확히 들어맞는 때가 올 줄이야. 코로나19가 세상의 판도를 바꾸어 놓은 지 몇 달째다. 사회적 거리 두기 동참을 위해 집회 참석은 물론 두세 명 친구 모임도
감사 일기 써 보라는 친구의 권유가 있었다. 그날이 그날 같은 삶에 감사할 일이 무에 그리 많아 일기까지 쓰느냐고 했더니, 찾아보면 감사 거리가 한둘이 아니라고 했다. 삶이 따뜻해진다는 말에 시작했지만, 마음이 담기지 않아 생뚱맞기가 상놈 갓 쓴 격이었다.습관의 속성인가. 영혼 없는 언행이라도 매일 생활화하다 보니 지금은 제법 입에 붙었다. 요즘 들어 감사의 마음이 깊어진다. 불청객 괴질로 다들 힘든 시절의 강을 건너고 있기 때문이다. 삶의 현장에 감염자들이 섞여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하니 긴장감은 더하다. 생명을 잃은 사람들이 부지
늦잠을 즐기고 거실로 나왔다. 따사로운 햇살이 창가에 비춰 아늑했다. 건너편 산은 온통 연둣빛의 향연이었다. 모르는 사이 봄은 이미 지척에 와 있었다. 휴대전화 벨이 울렸다. 옆 동에 사는 30년 지기가 어디 바람이나 쐬러 가자고 했다. 난들 왜 안 가고 싶겠는가? 동요가 일었지만 "조금 참고 다음으로 미루자" 했다. 못내 아쉬워하는 그녀의 목소리가 전화기를 타고 흘러내렸다. '코로나19'라는 유례없는 신종 바이러스로 인해 온 세계가 숨을 죽인 지 두 달이 넘어가고 있다. 그 사이 '사회적 거리두기'라는
"갇혔대" 퇴근 후 저녁상을 차리고 있는데 어디선가 전화벨 소리 같은 게 들렸지만 남편의 휴대전화 소리라 생각하고 무심했다. 남편의 다급한 목소리가 주방을 향해 날아들었다. 나는 물 묻은 손을 대충 닦으며 현관으로 나갔다. 엘리베이터에 아래층 사람이 갇혔다고 했다. 조금전의 소리는 남편의 휴대전화 소리가 아니라 엘리베이터 비상벨 소리였다. 남편과 나는 황급히 계단을 뛰어 내려갔다. 마음이 급하니 겨우 4층짜리 건물 계단이 왜 이렇게 많은가 싶었다. 1층에 고정된 엘리베이터 안에는 3층에 사는 청년이 갇혀 있었다. 관리업체에 연락했으
오랜 것들과 이별하기가 쉽지 않다. 사람은 물론이거니와 특히 뭔가를 버리는 것에는 손이 떨린다. 나의 습성 중에 하나다. 더구나 책을 버리는 것에는 더더욱 인색하다. 그래서 나의 1년 계획에는 책 정리시간이 들어있다. 모순적인 말이긴 하지만 반 강제성을 뛴 자발적 행동이다. 그래야만 책이 쌓이는 것을 막을 수 있다. 한해 두어 차례 봄가을로 나눠서 정리를 한다. 한 권 한 권씩 꿈을 가지고 사 모은 것들이 짐이 되는 날이 늘어갔다. 다시 책 정리를 한다. 간서치는 못 되어도 흉내라도 내보려고 방 가득 책을 모았다. 결혼 전에는 박봉
내 딸은 계란 프라이 하나 제대로 붙여보지 않고 결혼을 했다. 막상 딸을 보내놓고 후회가 막급했다. 집안일을 좀 가르쳤더라면 살림고생이 덜할 텐데 싶었다. 사실 그게 가르친다고 다 될 일은 아니다. 자연스레 보고 배움도 크겠지만 요리 실력이나 살림살이 능력도 계발하기 나름 아닐까. 딸이 제 손으로 차린 식탁을 동영상으로 보내오며 말했다. "요리를 하다 보면 엄마가 해줬던 맛이 점점 길을 내 줘. 그 길 더듬더듬 가다 보면 딱, 그 맛이 나와!" 게다가 내가 한 번도 해주지 않았던 요리까지 더해서 왔다. 맛은 사위한테 물어보았다. 사
더디게 올라오던 봄이 우수를 지나자 개난초 잎을 쑥 밀어 올리며 초록 미소를 짓습니다. 무채색의 겨울 한철을 보내느라 우울하던 차에 반갑기 그지없습니다. 십여 년을 한 곳에 모여 살더니 식구가 많이도 늘었습니다. 화초는 대개 꽃을 보기 위해 심는 경우가 많지요. 하지만 개난초는 꽃도 좋지만 이른 봄의 빈 뜰에 대지의 녹색기운을 듬뿍 머금고 힘차게 올라와 봄을 치는 모습이 매력적입니다. 마침 봄철인데다 이사하기 좋은 날씨라 미룰 것 없이 새 터를 정하고 옮겨심기를 합니다. 어느새 보라색 아이리스도 묵은 잎 사이로 녹색기운이 번집니다.
다시 봄이다. 봄은 봄인데 작금은 신종 코로나19로 인해 전한 미인 낙안(落雁) 왕소군이 흉노 왕에게 가던 마음처럼 정말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동방규, ), 봄이 봄이 아니다.100년 전에도 조선 26대 마지막 국왕이자 대한제국 초대황제 고종 이재황께서 기미년 1월에 붕어, 3월 인산 즈음에도 봄날이었지만 봄이 아니었다. 그때 우리 선인들은 러·중·미·일 등 열강들 약육강식 이빨 앞에 주춤거리다 일본제국주의에 침탈당한 지 꼬박 10년이었고, 그 철권의 고통 벗어나려 투합한 삼천리 각 골 지사·의병들은 기미년 인산 직전 3
코로나19 바이러스 사태가 장기화 되면서 마스크 값이 천정부지로 솟구쳤다. 얼마 전에는 모 인터넷 쇼핑몰에서 좀 싸게 나온 마스크가 있기에 얼른 주문하고 결제까지 마쳤는데 얼마 뒤 업체 측에서 '품절'이라며 환불을 해주었다. 물론 그 마스크업체는 가격을 배로 올려 다시 주문을 받고 있다. 비슷한 상황이 몇 해 전 큰 관심을 끌었던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란 책에 나온다. 2004년 플로리다에 허리케인이 휩쓸고 갔을 때 2달러에 팔리던 얼음주머니가 10달러로 뛰고, 숙박시설 이용료나 집 수리비가 폭등했다고 한다
영화 속 배우의 대사처럼 그야말로 시의적절하다. 어쩌면 이렇게 혼란스러울 사태를 미리 알고 각본을 짠 것 마냥 한 편의 영화가 아픈 국민들을 위로하고 있다. 땅꼬마 같은 작은 나라에서 세계영화사에 빛나는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 날, '오스카상' 수상의 쾌거를 거두었다. 대한민국의 큰 자랑거리라 정녕 반갑다. 우리나라 문화의 일면을 세계로 방출한, 역사적으로 기릴 일이다.지난해 12월, 중국에서 발병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일명 '우한 폐렴'이라 불리는 바이러스가 불똥
기온이 뚝 떨어지더니 바람이 매섭다. 마른 가루같이 햇살 흩어지고 비닐조각 날리는 12월의 오후는 더 짧아졌다.우체국 앞 건널목, 바람이 모로 비껴 걷는 나를 밀치고 앞장 서 간다. 바람이 스쳐 간 건널목 끝 붕어빵집 앞에 사람이 몇 보인다. 추운 날의 공식 같은 붕어빵 간판이 잠시 쉬었다 가라, 손 좀 녹이고 가라 내게 손짓하는 것 같다. 먼저 온 사람 몇이 찬바람 속에 발을 동동거리며 붕어빵을 향해 서 있다. 나도 모르게 그 앞에 섰다. 옆에 선 이와 마주 보고 씩 웃는다. 조금은 멋쩍고 조금은 공감되는 추억을 간직한 이들만의
식자재마다 독특한 맛이 있다. 어떤 것은 신맛, 어떤 것은 단맛, 어떤 것은 쓴맛, 매운맛을 가장 잘 대변하는 것이 땡초다. 청양초가 점잖은 이름을 두고 땡초로 통하는 것은 분명한 이유가 있다. 사람의 특징에 별명이 따라붙듯, 별칭을 지어 부를 정도로 뭔가 별난 게 있다는 얘기다. 일반 고추와 땡초는 매운맛에서 차이가 난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자기만의 독특한 매운맛을 전제로 한다. 우리의 음식에는 짭조름, 칼칼한 맛이 생명이다. 한데 급변하는 세상만큼이나 음식 맛도 이전과 같지 않다. 나라 간의 문턱이 낮아져 외부와 교류가 잦아진
매일 아침 출근길에서 마주치는 두 사람이 있다. 그들과의 인연은 1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나는 집과 직장이 선암호수공원을 사이에 두고 있어 매일 걸어서 다닌다. 20여 분의 비교적 짧은 거리라 운동 삼아 걷기에 안성맞춤이다. 늘 푸르고 잔잔한 호수에는 대자연과 호흡하는 물 병아리, 청둥오리 떼들이 평화롭게 유영하여 일상에 지친 산책객들에게 심신의 휴식을 안겨 준다. 양옆에 즐비한 조팝나무에는 앙증맞은 박새들이 저마다 존재를 알리듯 분주하다. 기슭 야산에는 사시사철 푸른 소나무가 상쾌한 공기를 뿜어주어 청정 공원으로 자리매김한 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