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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질의 역사는 인류의 역사와 함께해 왔다. 상대적으로 약자에 있는 쪽이 강자의 아킬레스건을 건드려 이득을 취하는 방법으로 인질극만큼 효과적인 게 없으니 그럴 만도 하다. 인질은 정당성 여부를 떠나 힘의 비교논리 속에서 계속되었고 앞으로도 끊이지 않을 인류의 비극이다. 특히 목숨을 담보로 금전적인 이득을 챙기려는 행위는 어린아이를 유괴해 돈을 뜯는 파렴치한과 다를 게 없다. 그래서 이번 탈레반 인질사건은 두고두고 구설수에 오를 수밖에 없는지도 모른다. 적어도 정부가 범죄집단과 뒷거래를 했다는 문제는 사실여부를 떠나 이 정부의 낙제외교의 한 전형으로 역사에 기록될 문제다.
 인질 이야기의 원형은 역시 구토설화다. 용궁의 유혹을 이기지 못한 토끼가 용왕 앞에서 배를 가르는 대신 생각해낸 꾀는 용왕이 원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간파했기에 나올 수 있었다. 구토설화를 이어주는 연개소문과 김춘추의 '보장왕 속이기' 역시 토끼의 꾀를 차용한 전형이다. 땅을 원하는 보장왕에게 땅을 주겠노라고 말하면 되는 것을 불가하다며 인질이 된 춘추에게 연개소문은 선도해를 시켜 토끼의 간을 꺼내준 셈이다.
 '독수리 발톱작전'으로 잘 알려진 이란 미국 대사관 인질극은 1980년대 냉전 말기의 세계 정세를 흔들었던 미국 레이건 대통령의 대외 정책에 큰 영향을 미친 사건이었다. '테러집단과 협상불가'라는 미국의 대외정책도 이 사건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게 중론이다. 호메이니의 반란 이후 팔레비 2세의 시신 인도문제로 불거진 미국과 이란의 갈등은 이란대학생들의 테헤란 미 대사관을 점령 사태로 이어져 52명이 인질로 잡힌다. 미국은 이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두차례 군사작전을 감행했으나 실패했다. 인질극의 현장에 가보지도 못하고 적진에서 탈주하는 미 정예특공부대의 독수리발톱작전은 발톱만 뽑힌 채 물러났고, 무려 444일이 지난 후에야 인질은 외교적 해결로 풀려나게 된다.
 미국이 납치단체와 뒷거래를 하지 않는다는 것의 진실은 아무도 모른다. 이란 사건처럼 외교문제로 비화된 경우 사실상 뒷거래 자체가 어렵지만 지난 2005년 이라크에서 발생한 '기독교평화구축팀' 납치사건처럼 뒷거래 무산 이후 군사작전 감행이라는 조치만 봐도 테러집단과 무협상 원칙이라는 말은 대외용임을 알 수 있다. 문제는 미국이 일관되게 유지해온 테러집단과 중동외교의 분리입장이다. 중동문제가 자신들의 침략주의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사실을 미국정부가 부인하는 것은 자국민들의 목숨이 담보된 인질극에서 잘 드러난다. 외교는 중동의 친미정권과 구축해가고 반미를 앞세운 세력은 테러집단으로 몰아 철저하게 응징한다는 원칙이 그것이다.
 인질로 잡혔던 23명의 한국인 가운데 21명이 무사히 돌아왔다. 2명이 무장단체의 세과시용 희생양이 된 채 '200억 몸값 설'무거운 배낭을 짊어지고 귀국한 이들에게 국민들의 시선은 곱지만은 않은 것 같다. 문제를 결과로 평가하려는 태도는 오늘을 사는 우리가 가장 경계해야할 시각이다. 몸값설이나 테러범과의 '밀회'라는 좋지 못한 선례를 남긴 것은 인질이 아니라 정부다. 토끼가 세치 혀로 목숨을 구한 상대는 거북이가 아니라 용왕이었듯 문제의 본질은 귀환자 21명의 행동이 아니라 테러집단의 '봉'이 된 우리 정부의 미성숙한 중동외교라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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