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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민호 시인

오후 2시 1127번 버스가 울산에서 부산으로 내 달린다. 바람의 입을 헤집고 종착지를 부른다. 따스한 햇볕이 환하게 펼쳐진다. 파마머리 아주머니 가방을 껴안은 중년의 사내 볼 주름 깊은 할머니께 고소한 졸음을 청한다. 앞좌석에 앉은 여학생이 부신 눈을 비비며 통화 중이다. 드러난 치아에서 햇빛냄새가 났다. 보철이 빛을 튕겨냈다. 계약직 채용 공고문 위로 시선이 굴러갔다 입술을 중얼거렸다. 면접 불안이 뿌리를 뻗어 끝없이 나를 옭아맸다.

모를 심기 전 아버지는 골다공증 앓는 논두렁에 새 옷을 입혔다. 논두렁 잃으면 한해 농사가 시름에 잠긴다고 구멍이 숭숭 뚫린 등판에 모를 심었다. 차가운 기억이 일순간 스쳤다. 정류장에서 문이 열리자 학생이 내리고 찬바람이 공고문을 밟고 승차했다. 버스는 다시 일상으로 속력을 냈다. 창문 틈으로 바람이 더 세차게 비집고 들어왔다. 사람들은 깊은 한기 속에서도 꿈을 꾸는지 몸을 움츠렸다. 뿌리 없는 바퀴가 불안한 생각을 끝없이 오물거렸다.

■ 시작노트
싹을 틔우기 위해 종일 땀 흘린 곳을  다시 찾아 싹을 틔우지 않은 빈자리를 보면서 생명력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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