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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냥꾼들 사이에서 오래된 격언 중의 하나가 "비틀거리는 오리에게 총알을 낭비하지 말라"라는 말이다. 이른바 레임덕이라는 말도 사냥꾼들의 격언과 무관하지는 않다. 하지만 역사상 수많은 지도자들은 자신의 임기가 끝나는 시점에 뒤뚱거리는 오리 꼴이 되지 않으려고 발버둥을 쳤다. 대체로 이 같은 지도자의 행동은 두 가지 형태를 보인다. 하나는 극도로 자신을 절제하면서 몸을 낮추는 것과 반대로 적극적인 언행을 통해 자신의 존재감을 부각하는 형태다. 이제 5개월여 정도 임기가 남아 있는 노무현 대통령은 전형적인 후자 스타일이다. 그는 연초부터 "참여정부는 레임덕이 없다"고 아예 대못을 박고 레임덕 차단에 나섰다. 그동안 말도 많고 말이 말을 낳아 말장난과 말잔치가 난무했지만 노 대통령의 의지와는 다르게 그 모든 언행이 레임덕을 의식한 과잉대응이라고 해석되기도 했다.


 아집과 독선이라는 꼬리표가 붙어 다니는 우리 대통령의 막말은 짜증을 넘어 한숨이 나오게 하지만 되짚어보면 대통령의 언행을 고집스럽게 편집해서 꼬투리를 잡는 언론의 행태도 반성할 부분이 있다. 다만 최근 탈레반 무장세력에 납치된 피랍자 석방과 관련한 국정원장의 부적절한 처신과 그를 옹호한 대통령의 발언은 언론보다 대통령 쪽이 문제를 더욱 확대시킨 책임이 있다. 발언의 내막은 전형적인 조직사회의 부하 감싸기 형태다. 과다노출과 자화자찬으로 궁지에 몰린 국정원장을 두고 노대통령은 국무회의 석상에서 "국가정보원이 목숨을 건 기여를 했다"며 "적절한 시기에 국정원을 방문해 격려하겠다"는 내용이다. 목숨을 담보한 부하의 직무수행을 칭찬하는 일은 인색할 필요가 없는 일이고 또 좋은 일이다. 그러나 대통령의 말에는 의례적인 칭찬이 아닌 내용에 대한 평가가 담겨 있어야 한다. 그래서 지도자의 말은 '권능'이 있다고 한다.


 지도자의 말이라면 처칠이 떠오른다. 화려한 연설과 재치 있는 언변으로 유명한 처칠은 사실 결점 투성이의 언어 열등생이었다. 그는 어린시절 지능발달이 늦은데다 이야기할 때 혀가 꼬부라지는 경향이 있어서 평소 말수가 적었다. 하지만 처칠은 자신의 결점을 그대로 방치하지 않고 끊임없이 결점을 고쳐나갔다. 즉석에서 말하는 것이 서툴렀던 그는 연설에 앞서 미리 원고를 써서 암기했고 유명한 연설가나 서적을 탐독하고 이를 자신의 문장으로 다듬는데 아낌없는 투자를 했다. 그 결과 처칠의 연설은 명연설로 그의 언행은 위트와 촌철살인이 담긴 기록으로 전해지고 있다. 처칠이 노년에 죽음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기자의 질문을 받고 잠깐 생각을 가다듬고 대답한 "술집의 문이 닫히면 떠나는 법이다"는 말은 두고두고 명언으로 남아 있다.


 곤경에 처했거나 궁지에 몰렸을 때 지도자의 말 한마디나 언행은 정치적일 수밖에 없다. 다만 그 정치적 언행은 준비과정이 없을 경우 언제나 부메랑이 되어 돌아오기 마련이다. 로버트 케네디가 일본 와세다 대학을 방문해 강연을 했을 때의 일이다. 케네디가 강연을 마치고 강단을 나서자 학생들은 욕설을 퍼부으며 "양키 고 홈"을 외쳤다. 그러자 케네디는 다시 강단으로 돌아와 마이크를 잡고 와세다 대학의 교가를 불렀고 야유하던 학생들은 어느새 숙연한 분위기로 돌아서 케네디와 함께 교가를 제창했다. 반미감정이 팽배했던 일본의 분위기를 잘 읽었던 케네디는 일본방문 일정에 맞춰 세심하게 와세다의 교가까지 챙겨 자신에게 맞서는 이들의 공감을 이끌어 위기를 넘겼다. 자화자찬하는 국정원장에게 곱지않은 시선을 보내는 것은 국민의 시각이다. 여론의 현주소를 모른 채 부하 감싸기에 열중하는 대통령의 언사가 뒤뚱거리는 오리보다 더 불안해서 하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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