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입화산 정상부의 소나무 군락지, 남쪽 사면은 산불 때문에 키작은 소나무가 대부분이지만, 정상부에는 화마를 피한 소나무 군락이 그대로 남아있어 산길의 정취를 더한다.

한낮의 기온이 영상 10도를 넘긴 지난 22일 오전 시간이 한가한(?) 지인들을 중구 태화동 중앙고 근처로 불렀다. 녹색에너지 시민연대에서 활동 중인 송병철(45) 울산지식산업로봇진흥회장과 본보에서 사진부장으로 근무했던 송재훈(44)씨다. 평일 산행제의에 약간 당혹한 듯 했지만, 평소 도심 산에 대한 관심이 많았던 이들이라 동행에 흔쾌히 나섰다.

#산악자전거 마니아들의 성지

이날 산행지로 정한 곳은 중구 입화산 '참살이 숲길'이다. 중구청이 최근 20㎞가량의 산악자전거 종주코스를 만든 곳으로, 산악자전거 마니아들이 '성지'(?)라 부를 정도로 선호하는 곳이라고 한다. 최근에는 입화산을 중심으로 배리끝, 동천강 등으로 이어지는 '중구 둘레길'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출발지는 중앙고 뒤편 북부순환도로 변 '산장'표지판이 있는 쪽으로 잡았다. '참살이 숲길'코스는 이곳에서 동쪽으로 100곒가령 더 가야하지만, 혁신도시 공사장의 소음을 피하기 위해 이길을 택했다. 초입은 가파르다. 감기 뒤 끝이 남았는지 호흡이 가빠지자 토악질 같은 기침이 시작된다. 기침이 잦아질 즈음 시골에서 흔히 볼수 있는 저수지가 있다. 겨울가뭄에 바닥을 드러낸 저수지는 한때 중앙고 근처의 태화들에서 농사짓는 이들에게는 없어서는 안 될 농업용수였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용도 폐기된 상태다. 저수지 밑 어디에도 물이 필요한 농사를 짓는 곳은 없다.

 태화동은 이미 주택으로 빽빽하다. 조금 더 올라가면 차밭이 나온다. 규모는 크지 않지만 북부 순환로에서 불과 수십 미터 거리에 차밭이 있다는 것이 놀랍다. 하지만 조금만 생각하면 놀랄 일도 아니다. 태화동과 인접한 다운동은 동네 이름 그대로 '차 마을'이다. 개발이 진행되면서 차 밭은 대부분 흔적 없이 사라졌다고 하지만, 이곳처럼 소규모로 남아있는 곳이 더러 있다고 한다. 찻잎은 아직 오르지 않았다. 보통 곡우를 전후해 첫 잎을 딴다고 하니, 어쩜 어린 잎을 속살 속에 감추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잘 덖은 차에서 나는 알싸한 향이 코끝을 감돈다.

 차 밭을 지나면서 이번에는 눈이 호사를 한다. 남산 12봉과 그 앞을 흐르는 태화강이 손에 잡힐 듯 눈앞에 펼쳐진다. 주상복합건물들로 가득한 도심도 가까이 보인다.

#생채기로 남은 잘려진 길의 흔적

봉우리를 넘어 자전거도로 표지판을 따라가니 대나무 숲길이다. 자전거가 다니기엔 가팔라 보였지만 키 큰 소나무와 대나무가 알맞게 어우러진 숲길이 매력적이다. 하지만 대나무 숲길은 짧다. 원래 군락지 규모가 작은 탓도 있지만 정밀화학센터~우정신도시 간 도로 개설 작업 때문에 길은 잘렸다. 잘려진 길에는 "도로 공사 중이어서 등산로가 폐쇄되었다"는 안내판 하나가 달랑 걸려있다. "그럼, 어쩌라고?" "집으로 다시 돌아가란 말인가?" 김이 빠졌다.

 목적지로 한 입화산이 북쪽으로 손에 잡힐 듯 가까운데, 일행은 질퍽한 도로 공사장 흙길을 지나 정밀화학센터로 들어갔다. 등산화에 묻은 흙을 털어내던 송 회장이 "또 하나의 생태 재앙의 현장"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정밀화학을 지나 우정 혁신도시로 이어지는 이 도로로 인해 방금 올랐던 야산이 생태적으로 완전히 고립되어 버렸다고 했다. 실제로 입화산을 오르며 다시 보니 북부순환로와 접한 '함월고~다운동 집입로'까지의 야산이 섬이 되어 버렸다. 이 야산에 기대 살던 많은 생명들이 삶의 터전을 잃어버릴 수밖에 없을 듯 보였다.

   
▲ 입화산 정상의 길 안내 표지.

#중턱서 펼쳐지는 울산 파노라마

정밀화학센터에서 입화산으로 오르는 산길은 3색길이다. 초입은 잘 자란 소나무 군락이지만, 이곳을 지나면 최근에 난 산불 때문인지 키 작은 묘목 수준의 소나무뿐이다. 여름엔 걷기 힘든 길이지만, 겨울과 봄, 가을 걷기는 안성맞춤이다. 앞 산 보다 눈 맛이 훨씬 좋아진다. 중턱까지만 올라가도 울산시가지는 물론 울산을 에워싸고 있는 준령들이 파노라마처럼 눈앞에 펼쳐진다. 남쪽에서부터 대운산과 원효산, 천성산, 남암산, 문수산이 보이고, 그 너머로 영취산과 신불산, 간월산, 능동산, 가지산 봉우리들이 보인다. '도심 산'에서 '먼 산'들을 보는 맛이, 외곽의 높은 산에서 도심을 바라보는 것보다 훨씬 좋았다.

 중턱에서 중구 옛길에 대한 데이터를 모으고 있던 입화산 숲해설사 문재호(56), 김운영(여.38)씨를 만났다. 입화산의 매력이 무엇이냐고 묻자 이들은 "굳이 멀리가지 않아도 산행의 맛을 제대로 느낄 수 있는 이쁜 산"이라고 했다.
 문씨는 "입화산은 중구 옛길의 중심으로 손색이 없다. 비록 해발 130곒밖에 안되는 낮은 산이지만 서쪽으로 배리끝, 동쪽으로는 동천까지 연결되어 있다"면서 "산책로 곳곳에 송림과 측백나무 숲 등이 있어 아이들의 자연 생태학습장으로도 최적의 장소"라고 설명했다.

 김씨는 "해설사로 본격적으로 활동하면서 새삼 입화산의 맛에 빠져들게 되었다"면서도 "하지만 혁신도시 등이 건설되면서 곳곳이 파 헤쳐지면서 옛 모습을 찾을 수 없게 된 점이 무척 아쉽다"고 말했다.

#뒤틀린 소나무 군락지 장관

산 정상에 가까워지자 산불의 화를 피한 소나무 군락지가 나왔다. 척박한 땅에서 자란 것을 웅변이라도 하듯 뒤틀린 생김새가 인상적이다. 10여분쯤 소나무 군락지를 지나자 입화산 정상이다. 정상에 서자 울산의 한 가운데에 선 느낌이다. 이제껏 보이지 않았던 북구 지역도 한눈에 들어온다. 서쪽으로 시선을 돌리니 박제상 설화를 간직한 국수봉이 손에 잡힐 듯 들어온다. 아직 잔설이 남은 울산을 둘러싼 영남알프스의 봉우리들은 더욱 선명해 진다.

   
▲ 태화동쪽 초입의 대나무 숲길.


 평일인데도 정상에 사람이 적지 않다. 저녁 영업에 들어가기 전 거의 매일 입화산에 오른다는 김재성씨(46)씨는 "울산의 주산인 함월산과 입화산의 훼손은 역사적으로나, 환경적으로나 재앙에 가깝다"면서 중장비 굉음을 내고 있는 혁신도시 건설 현장과 성안동 주택지를 손으로 가리켰다.
 내려오는 길은 다운목장을 거쳐 정밀화학센터로 가는 길을 잡았다. 지금은 목축을 하지 않고 터만 남은 다운목장에는 노란색 열매를 단 이름 모를 풀이 지천이다. 초지는 달이 바뀌면 온통 초록빛으로 바뀔 것이다. 도심에서 넓은 들판을 볼 수 있는 것도 행운이다. 완만한 들판 길을 따라 내려오는 내내 발 밑 골짜기에서 이름 모를 산새들이 지저귄다.

 산행은 정밀화학센터 진입로, 북부순환도로를 따라 첫 출발지에서 마무리했다. 12시 30분. 2시간 남짓, 겨우내 움츠렸던 몸을 풀어준 맛난 산행이었다.  글·사진=강정원기자 mikang@ulsanpress.net

송림·초지·야생화 군락 어울린 환상 코스
[중구 입화산 자전거길과 참살이 숲길]

'입화산 참살이 숲길'은 건강에 대한 관심과 참살이(well-being) 문화의 확산 등으로 도시형 생태녹지공간에 대한 수요 증가 추세에 발맞추어 중구청이 입화산 일대 등산로를 정비하고, 새로운 길을 만들 원활한 산행은 물론 자연 생태교육과 건강까지 챙기도록 꾸민 숲길이다.
 지난 2009년 6월부터 지난해 8월까지 모두 13km로 조성된 이 길에는 정자 1곳과 벤치 18개, 평상 5개, 피크닉테이블 6개, 숲해설판 등의 시설이 들어서 산행을 돕고있다. 특히 원추리 등 모두 6종 2만4,000본의 야생화를 심어 시민들이 생태학습의 장으로도 활용할 수 있도록 했다. 
 입화산에 설치된 산악자전거코스는 모두 20km 가량으로 다운터널 입구에서 다운목장초지~입화산~길촌~유곡동~울산정밀화학연구단지~다운중·고교~다운터널을 순환하는 코스다.
 이 코스는 자연 송림과 목장초지가 어우러진 아름다운 경관을 자랑해 전국 산악자전거 마니아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중구는 이밖에 입화산 산106번지 일원 2만8,796㎡에 자전거 테마공원을 계획하고 있다.  자전거 테마공원에는 교육ㆍ문화ㆍ역사관과 자전거 이색체험관 등 연면적 2,000㎡ 건물과 MTB(산악자전거) 코스, 레일바이크가 들어설 예정이다.

저작권자 © 울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