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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구대암각화에 대한 기사와 칼럼을 쓰면서 가끔 엉뚱한 상상에 빠질 때가 있다. 만약에 반구대암각화가 서울근처 북한강 어디쯤에 있었다면 어땠을까. 귀신고래가 출현한다는 캘리포니아 해안절벽 어디쯤에 존재했다면 지금쯤 어떤 모습일까 하는 생각 따위가 그것이다. 결론은 엄청난 자괴감을 불러온다. 북한강 어디쯤이라 해도 지금의 반구대암각화와는 완전히 다른 대접을 받았을 것이고, 캘리포니아 해안 어디라면 아마도 그곳은 미국의 국빈 대접을 받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에는 김황식 국무총리가 반구대 암각화에 온다고 한다. 국무총리만 두 번째 방문이다. 국회의장과 담당부처 장관이 다녀갔고, 정치인 학자들이 무수히 물에 잠긴 반구대암각화를 보고 갔다. 혀를 끌끌 차고, 심각한 표정을 짓긴 했으나 해법에 직면하면 꼬리를 뺐다. "이번에는, 정말 이번에는…"이라고 기대하는 쪽은 실세들의 방문이 그래서 양치기 소년같다. 하지만 어쩌라. 북한강 어디쯤이나 캘리포니아 어디쯤에 있는 것도 아니고 역동의 산업수도 한쪽 끄트머리에 위치한 업보이니 언제나 믿어볼 수밖에 도리가 없다.

 그래도 반구대암각화가 국회에서 공론화되고 국무총리와 장관이 어물쩍 넘어가지 않고 분명한 답변을 한 것은 다행이다. 담당부처인 정병국 장관의 대답은 보다 진일보하다. 정 장관은 국회답변을 통해 반구대암각화에 대한 청사진을 밝혔다. 그는 "보존대책을 조속히 세우는 것뿐만 아니라 역사적·인문학적 가치를 제대로 세워서 관광자원화가 될 수 있도록 하겠다"면서 "프랑스 라스코 동굴 등의 사례를 참조해 종합적인 대책을 수립하겠다"고 말했다. 양치기 소년이 아니라면 정말 반가운 이야기다. 그가 제발 오래오래 장관직을 수행하고 양들을 방목하는 목장주변에는 가지 말기를 바랄 뿐이다.

 정 장관이 언급한 라스코 동굴도 처음부터 온전하게 보존된 선사유적은 아니었다. 세계 최고의 선사벽화시리즈로 알려진 라스코 동굴 벽화는 울산 반구대암각화보다 30년 빠른 1940년 9월, 프랑스 남서부 도르도뉴 지방의 몽티냐크 마을에서 발견됐다. 대체로 유물이나 유적이 그렇듯 라스코동굴벽화도 우연한 발견과 방치, 그리고 훼손의 과정을 밟았다. 동화속 지하세계나 과거로 통하는 통로쯤으로 여긴 이 마을 어린 소년들의 호기심이 1만7,000년 전 선사인의 벽화를 세상에 알린 셈이다.

 흔히 프랑스하면 세느강을 연상하지만 사실은 라스코 동굴이 있는 베제르 계곡을 휘감아 도는 도르도뉴 강에 비하면 세느강은 경관면에서 랭킹에도 들지 못한다. 베제르 계곡에서는 호모 사피엔스의 직계 조상으로 추정되는 크로마뇽인의 뼈가 나왔을 뿐 아니라, 선사시대 군락의 흔적이 147개소나 남아 있고, 2000여 점에 달하는 벽화와 암각화가 있는 25개의 동굴이 발견되었다. 라스코 동굴벽화 발견이후 이 일대에 대한 종합적인 학술조사와 연구자들의 계속된 발굴로 찾아낸 과거의 흔적이다. 이런 갖가지 흔적들을 증좌로 도르도뉴강은  선사시대 인류 역사 연구는 물론 미술사에도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문제는 프랑스인들의 무지였다. 놀라운 인류의 유산을 세상에 알리고 나아가 짭짤한 관광 수입을 올리려는 이들은 이곳을 1948년 관광명소로 개발했다. 물론 계단을 만들고 전기를 가설하기 위해 굴을 파헤쳤고 예상대로 엄청난 수입과 예상하지 못한 엄청난 훼손이 이어졌다. 동굴은 금방 관광객들의 발길에 짓밟혀 유물이 훼손되고 벽화가 부식되기 시작했다. 뒤늦게 프랑스 정부는 1963년 동굴을 폐쇄하고, 200m 떨어진 곳에 복제동굴인 라스코 2를 만들어 일반인에게 공개하고 있다. 정병국 장관 이야기처럼 종합대책을 통해 명품 관광지가 된 라스코에는 지금, 연간 25만명의 관광객이 몰려 작은 마을이 전체 현을 먹여 살리고도 남는 수입을 올리고 있다.

 반구대암각화는 동굴벽화가 아니다. 더구나 라스코나 알타미라처럼 육상동물만 그려져 있는 벽화도 아니다. 바로 고래다. 세계 최고의 고래그림이 그것도 하나씩 찾아가면 한나절 꼬박 7,000년 세월로 거슬러야 하는 진귀한 바위그림이다. 이 한반도가 고래의 놀이터였음을 돌에 새겨 보여준 엄청난 증좌다. 조선조 고서인 신승동국여지승람 등에 한반도 주변 바다가 경해(鯨海·고래 바다)로 표기돼 있는 것이 우연한 일이 아니라는 말이다. 무엇보다 반구대 암각화는 바위에 새겨진 단순한 그림이 아니라는 사실이 중요하다. 반구대암각화의 조형미는 세계 어느 곳에 비교해도 탁월하다. 바위에 고래를 배치한 여유로운 공간미나 오묘하게 선묘된 음양각의 처리는 물론, 그림에 이야기를 담은 놀라운 기록이다.

 지난해 9월 사르코지 프랑스대통령이 국민적 비난에도 불구하고 라스코 동굴의 원형을 보러간 것은 인위적인 모형에서 느낄 수 없는 선사인과의 교감 때문이다. 김 총리는 바로 그 순간을 체험해야 한다. 반구대암각화 암면에 서서 7,000년 세월의 무수한 이야기와 손등을 찧어가며 한땀한땀 고래를 새긴 선사인의 숨결을 느껴볼 필요가 있다. 아는 만큼 보이고 보고 느껴야 보존의 중요성에 눈을 뜰 수 있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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