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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구 옥동 '법조거리'는 울산지방법원·검찰청 입구사거리에서 법대로를 따라 청사까지 변호사, 법무사, 노무사, 공증, 공탁, 녹음 등 관련 사무실이 길따라 건물따라 밀집해 시민들의 희노애락을 함께하고 있다. 유은경기자 usyek@


화려한 색으로 사람들을 유혹하는 번화가의 간판과는 달리 건물이 늘어선 방향을 따라 사람이름 석 자만 덩그러니 새겨진 멋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네모난 간판이 덕지덕지 붙어있는 곳. 우리나라 어느 지역이든 법원이 위치한 곳이라면 볼 수 있는 풍경이다. 어디든 법원 주변의 모습은 비슷하다. ○○○변호사, △△△법무사, □□□노무사, 공증, 공탁, 녹음, 도장…. 길따라 건물따라 한 가득 소송과 관련된 사무실이 밀집돼 있다. 이들은 출입이 편리하다는 이유로 법원의 큰 길가, 뒤편 골목, 건너편 어디에나 자리잡고 있다. 남구 옥동에 위치한 울산지방법원 인근도 다름 아니다. 울산지방법원의 역사와도 궤를 같이하는 '옥동 법조거리'. 그 곳에는 온갖 억울한 사연과 우리네 희노애락이 오래된 가구 위 켜켜이 쌓인 먼지처럼 쌓여 있다.

#공업탑 로터리 내 5곳 개소

남구 옥동에 법원이 들어선 것은 지난 1982년 9월이다. 지금처럼 울산지방법원이 아닌 부산지방법원 울산지원이 신설된 것이다. 이후 울산시가 광역시로 승격되면서 1999년 3월 울산지방법원으로 승격했다. 울산지방검찰청 역시 82년 부산지방검찰청 울산지청으로 신설, 98년 지방검찰청으로 승격됐다.
 울산지원 개원 당시에는 몇 안되는 판사와 검사가 근무할 정도로 규모가 작았다. 현재 울산지방법원은 본원에 법원장 1명, 부장판사 5명, 판사 17명 등 총 23명의 법관이 근무하고 시·군법원인 양산법원을 관할하고 있다.

 당시에는 현재 '옥동 법조거리'가 형성된 곳에 건물이 들어서 있지 않아 비교적 왕래가 쉬운 공업탑 로터리 인근에 5명의 변호사가 사무실을 개소를 했다. 이후 속속 변호사들이 개업을 하며 변호사 사무실 수는 10여개 가까이 이르게 됐지만 당시 부산에만 200여명의 변호사가 사무실을 열었던 것과 비교하면 한참 적은 수였다. 지금은 초창기 개업을 했던 5명의 변호사는 다른 지역으로 옮겨가고 없다.

 차츰 울산지원 주위에 건물이 들어서며 변호사들도 법원 인근으로 모여들기 시작했고, 울산지방법원으로 승격하고 수요가 많아지면서 관련 사무실 역시 늘어나며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됐다. 현재 울산지방법원 주위에는 110명의 변호사들이 활동하고 있다.
 울산도 변호사가 많이 늘어나면서 사법시장 역시 포화상태에 이르러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 향후 로스쿨 출신 변호사까지 대거 배출되면 경쟁이 더 심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 법조거리는 변호사·법무사 사무실을 방문한 의뢰인의 차량등으로 큰 도로는 물론 골목골목 빽빽히 차들이 줄지어있다.

 

 

#시대에 따라 소송 내용도 변해

'옥동 법조거리'를 보면 시간의 흐름이 더딘 것 같은 느낌을 받기도 한다. 포화상태의 건물과 사무실 수, 업무의 성격상 개축 등이 어려운 상황 등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입법권, 행정권, 사법권 삼권 중 가장 소극적이고 변화가 느린 사법의 중심지이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법원이 온갖 사연을 가진 사람들이 최후의 장소로 찾는 곳인 만큼 '옥동 법조거리'에도 참다참다 황혼이혼을 결정한 부부의 이야기, 믿었던 친구에게 돈을 떼인 이야기, 어려운 상황을 견디지 못하고 범죄에 손을 댄 이야기 등 울산시민들의 구구절절한 사연이 담겨있다.

 시대의 변화에 따라 울산지역 변호사들이 의뢰를 받는 소송도 성격이 변하고 있다. 예전에는 '산업수도 울산'답게 지금보다 발달하지 못했던 안전장치 등으로 인한 절단사고로 인한 피해 보상을 요구하는 소송이 많았다. 또 다른 지역에 비해 산업재해 소송이 월등히 많기도 했다. 지금도 여전히 산업재해 소송은 이어지고 있지만 그 성격이 조금 바뀌었다. 최근에는 공해나 방사선 등으로 인한 사고 즉, 근무환경으로 인해 발병했다며 이에 대한 보상을 요구하는 소송이 많아졌다고 한다. 예전에는 인과관계에 대한 증명 등이 어려워 이와 관련한 소송이 없었지만 과학이 발전하고 연구기관 등에 의해 밝혀지면서 관련 소송도 늘어나고 있다.

 시대 변화에 따라 소송의 종류도 달라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한 가지 안타까운 사실은 울산지역도 이혼소송이나 파산, 개인회생 의뢰가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황혼이혼은 물론 아이 양육도 서로 미루는 것이 요즘 추세라고 한다.
 옥동 법조거리의 한 변호사는 "양측의 주장이 극과 극으로 다르기 때문에 가장 증명하기 어려운 것이 이혼소송이다. 둘 사이의 일이다보니 증인을 세우는 것도 힘든데 아이들까지 증인으로 내세우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비극'이라는 생각이 든다"고 전했다.

#2013년 하반기 새청사로 이전

청사가 지어진 지 20년이 넘었고, 각각 지방법원과 지방검찰청 승격 이후 대폭 늘어난 행정 수요를 처리할 수 있는 새 부지와 청사가 필요한 시점이 되자 법원행정처는 울산법조타운(울산지방법원·지방검찰청) 설립계획을 세웠다. 이에 따라 울산지법 신청사는 사업비 686억원이 투입해 현 청사 뒤편 3만6,360여㎡에, 울산지검 신청사는 사업비 741억원으로 법원 신청사 옆 3만4,200여㎡에 각각 내년 착공해 2013년 하반기 준공될 예정이다.

 지난 2009년에는 울산지법과 울산지검 신청사로 들어가는 길이 650m, 너비 20m에 이르는 진입로인 '법대로(法大路)' 기념비가 세워졌다. 법대로라는 명칭은 김학의 검사장의 제안으로 주민공람 등을 거쳐 정해졌고, 취지문은 울산지검 강길주 형사1부장의 부인인 인기 방송작가 김순옥씨가 초안을 만들었다.

 

   
▲ 2013년 모습을 드러낼 울산법조타운 부지 앞에는 지난 2009년 법조타운 진입로를 '법대로'로 결정한 취지문을 새긴 기념비가 세워졌다.


#정의롭고 평화로운 사회 소망

법대로 취지문에는 '대한민국 산업수도 울산에 법을 수호하려는 아름다운 마음이 뿌리를 내려 오늘 여기에 법의 큰 길을 활짝 여니 이 길을 따라 세계 속의 울산으로 나아가리라. 양심이 법을 지키고 법이 사람을 지키는 정의롭고 평화로운 사회를 소망하며 올곧은 울산시민들의 숭고한 뜻을 모아 이곳을 법대로(法大路)로 부르기로 한다'는 내용이 적혀 있다.
 신청사가 들어서면 법원이나 검찰청 자체는 늘어난 행정수요를 처리할 만큼 넓고 깨끗하겠지만 소송 준비를 위해 방문하는 옥동 법조거리는 더욱 복잡해질 전망이다.

 지금도 법조거리는 변호사 사무실이나 법무사 사무실을 방문한 의뢰인의 차량 등으로 큰 도로 양측은 물론 골목골목 빽빽히 차들이 줄지어 서 주차장을 방불케 한다. '법대로'라기보다는 '차대로'를 연상케 할 정도다. 늘어나는 소송수요에 맞춰 신청사 설립을 결정할 정도니 법조거리를 찾는 수요 역시 늘어나고 있다는 것을 유추할 수 있다. 신청사 인근 등에 공영주차장도 같이 조성해 주차난까지 해결한다면 울산의 새로운 법조타운과 함께 옥동의 법조거리 역시 새롭게 변화할 것으로 보인다. 이보람기자 usybr@

 

"서로 양보해 화해·조정으로 해결되는 소송 많아지길"
  거리에서 만난 사람 1988년 개업 한만우 변호사

 

 

   
 

"울산시민들에게 서로 양보하는 풍토가 자리잡아 화해나 조정으로 해결되는 소송이 더 많아졌으면 합니다"
 지난 1988년 울산에 변호사 사무실을 개업한 한만우(62·사진) 변호사는 당시 울산지역에서 10번째로 문을 연 초창기 멤버다. 공업탑로터리에서 옥동 법원 인근으로 자리를 옮긴 뒤 자리를 지키고 있는 터줏대감이기도 하다.
 한 변호사는 이해관계를 최종적으로 정리하기 위해 찾는 곳이 법원이기 때문에 의뢰인을 상대하는 것은 항상 긴장을 유발하는 등 어려운 점이 많다고 말했다. "변호사라는 직업이 상담사로서의 역할도 하고 있기 때문에 의뢰인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 상당한 정신적 체력을 요구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저한테는 그저 여러 사건 중의 하나일 지 몰라도 의뢰인에게는 자신의 인생을 뒤바꾸어 놓는 중대한 사건일 수 있기 때문에 사건진행 등에 항상 긴장을 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는 긴 시간 변호사로 일해오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사건으로 도로공사를 상대로 한 소송을 꼽았다.
 당시 갓 결혼식을 올린 신혼부부가 김해공항을 가던 중 양산시 석계 인근 도로에서 지나가는 개를 피하려는 차량에 치여 즉사한 사건이었다. 대법원까지 올라간 사건은 도로공사의 패소로 결론지어졌다.
 "가장 행복한 순간이라 할 수도 있는 때에 생을 마감한 신혼부부를 생각하니 너무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더 열심히 소송을 진행했던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는 좁은 사법시장이 로스쿨 출신 변호사들의 대거 배출로 인해 경쟁이 심화되는 것 등에 대한 걱정도 털어놨다.
 "기존의 소송업무에만 매달린다면 희망이 없겠지만 자신의 전문분야를 개척하는 등의 노력을 한다면 법조인 스스로의 경쟁력을 갖출 수 있다고 봅니다. 더불어 많은 경험과 노하우도 쌓아야 겠지요"
 한 변호사는 울산지역이 애향적 뿌리가 약하다보니 화해나 조정이 잘 이뤄지지 않는다면서 울산 시민들이 조금만 양보하는 마음을 가진다면 소송으로 인한 상처도 덜 받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양보하는 문화가 확산된다면 서로 상처도 덜 받게될 것이고 우리 사회도 밝아지겠죠. 더불어 과다한 소송도 줄일 수 있구요. 거기다 법 질서까지 잘 지킨다면 그것이 사법복지가 아닌가 싶네요" 이보람기자 usy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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