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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년 전 10여명으로 창단했을 때, 이만큼 성장하리라 어느 누가 예상할 수 있었을까. '지금, 여기'에 선 36명의 한사랑 실버 합창단은 순간 순간 마음을 다해 충실히 함께 했던 시간들이 쌓인 결과물이다.

여기 어르신 36명이 있다. 평균 연령 70세로 대부분 정년 퇴임했거나 자식들 다 키우고 난 뒤 손주들 재롱으로 무료한 일상을 보내도 될 나이다.
 그런 어르신들이 일을 냈다. 뜬금없이 합창을 배우기 시작한 것이다. 노래교실이 아니라, 서로 화음을 맞추고 일정 수준의 연습을 필요로 하는 '합창' 말이다. 인생 2막을 합창으로 연 것이다.

 처음에는 10여명 안팎의 중창단으로 시작했다가, 내친 김에 소프라노-메조소프라노-알토 파트로 구성된 합창단을 꾸렸다. 
 인생의 희로애락을 노래하는 이 어르신들은 '한사랑 실버 합창단'이다. 지난해 가을 제7회 거제 전국 합창경연대회에 참가, KBS 남자의 자격에 소개되면서 큰 반향을 불러일으킨 바로 그 실버 합창단이다.
 
#인생의 희로애락을 노래하는

15일 오후 울산노인복지관 대강당. 악보를 정리하고 목소리를 가다듬는 어르신들의 모습이 바쁘다. 전업주부를 비롯해 교사, 회사원, 자영업 사장 등 경력은 제 각각이지만 이들의 공통 관심사는 '합창'이다.
 울산노인복지관이 지역 노인 문화 활성화를 위해 운영하고 있는 '한사랑 실버 합창단' 단원들은 모두 36명으로 막내가 64세다. 최고령은 75세.
 이날 합창 연습곡은 '울산아가씨'로 시작해 아리랑 모음곡, 그리고 도니제티 오페라 돈 파스쿠알레의 아리아 '기사의 뜨거운 눈물(Quel guardo il cavaliere)'까지.

 "이제 메조소프라노 점점 약하게, 다음 알토가 들어오면서 점점 소리 크게"  지휘자 김은혜(34ㆍ울산시립합창단원)씨의 말이 떨어지자 단원들은 서로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며 저마다 하모니를 이루기 위해 열심이다. "어르신들의 삶에서 우러나오는 배려와 조화가 바로 우리 합창단의 힘이다"는 김은혜 지휘자의 말 그대로다.
 카리스마 있는 리더로 한사랑 실버 합창단을 이끌고 있는 천이화(66) 단장은 "1년 전 결성할 때만 해도 이 만큼 규모가 커질 줄 몰랐다"고 했다.

 한사랑 실버 합창단은 매주 화요일과 금요일 모여 그야말로 맹훈련을 하며 '지금, 여기'까지 왔다.
 "세월을 그냥 보내는 것이 아니라 의미있게 보내고 싶어서 몇몇 뜻이 맞는 친구들과 중창단을 꾸렸던 게 1년만에 이 만큼 성장했습니다. 그동안 텔레비전 출연, 창단 1주년 공연, 전국 경연대회 참가 등등 평생 해보지 못했던 경험으로 한 그 자체로 선물같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막내가 64세 최고령 언니 75세

공화식(75) 할머니는 TV 남자의 자격 출연 덕분에 '태화동의 스타'가 됐다. 공 할머니는 "동네과일 가게를 가든, 목욕탕이나 슈퍼를 가면 어쩜 그렇게 즐겁게 사느냐, 행복하겠다, 사인해달라는 말을 많이 듣는다. 이 나이에 스타 된 늙은이 있으면 나와 보라고 그래"라며 자신감 넘치는 웃음을 보였다.  
 하지만 열정과 도전 정신을 쏟았던 하루 하루와는 그 무엇도 비교할 수 없다고 했다. TV출연이나 연주회 보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내가 살아 있음을 느낀' 순간 순간들이 더 없이 소중하다는 것이다.  

 중고등학교에서 수학교사로 37년간 일하다 퇴임한 류금애(65) 어르신은 "높낮이를 살펴가며 노래를 부르면서 '아직 내가 쓸모 있구나' 하는 느낌을 받는다. 수학과 함께 한 삶과 180도 다른 생활의 변화를 노래 덕분에 수월하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고 전했다.

   
▲ 합창 연습시간은 눈빛 하나, 몸가짐 하나 흐트러짐 없이 마음을 다하는 어르신들 모습에 김은혜 지휘자가 오히려 프로인 자신을 되돌아 보는 순간이다.

#도전과 열정으로 나이를 잊은

가족에 대한 이야기도 나왔다. 한 어르신은 "10년 동안 남편 병간호 하느라 힘든 시간을 보냈는데, 합창단원으로 1년 활동하면서 삶을 견디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 힘이 생긴 것 같다"고 했다. 최근 남편이 세상을 떴지만 합창단 활동이 그 자리를 대신 채워주고 있다는 할머니도 있었다.
 이 같이 소박함에서 오는 진실된 모습과 나이를 잊고 무언가에 도전하는 어르신들의 열정은 상상을 초월했다.

 지난 1월 울산 사상 최고의 폭설이 내린 날이었음에도 단원 100%가 가족들의 만류를 뿌리치고 "합창 연습하러 가야한다"며 눈길을 1시간 넘게 걸어 연습에 참여했다고.
 또 어르신들은 거의 완벽한 하모니를 완성했을 때 기분은 이루 말할 수 없다고 입을 모았다. 연습 중에 한번씩 이런 순간은 맞는다는 천 단장은 "그 순간은 기뻐서 졸도하는 줄 알았다"고 말했다.
 유일하게 남자 단원으로 합창단 활동을 하다 최근 같은 성별의 또래 단원을 맞게 된 최현복(74) 할아버지는 무작정 노래와 합창이란 장르가 좋아서 할머니들 사이에서 꿋꿋하게 테너로서 역할을 해 왔다.

#"우리도 당당한 예술인"

최 할아버지는 "더 많은 남자 단원들이 가입해 혼성 합창단으로 떳떳하게 노래 부르고 싶다"는 욕심을 굳이 숨기지 않았다.
 무대에 처음 올랐을 때의 설렘을 잊지 못한다는 알토 나순숙(70) 어르신은 "집에 있을 때는 무료했는데, 무대에 올라가 공연을 하고 나면 우리도 당당한 예술인이라고 느껴지고 자부심을 갖는다"며 "합창단에서 그만두라고 할 때까지 계속 노래를 부를 것"이라 했다.

 어르신들의 노래를 대하는 태도를 통해 삶을 배운다는 김은혜 지휘자는 "실버 합창단원들은 황혼기를 인생의 종점이 가까운 정류장으로 여기기 보다는 삶의 정점을 이루는 한 좌표로 생각하는 분들"이라며 "합창단은 이 시대 어르신 문화의 자부심이고 자존심"이라고 정리했다.
 '인생의 희로애락을 노래하는 어르신들'은 오는 26일 태화강 둔치라는 야외 무대에 나선다. 하반기에는 두번째 정기연주회에 도전할 계획이다. 평균 나이 70세. 늦깎이 '합창단'의 인생 2막은 이제부터다.
 글=김미영기자 myidaho@ 사진=유은경기자 usyek@


"스스로를 낮출줄 아는 배려가 합창의 조화 만들어"
  [김은혜 지휘자가 말하는 한사랑실버합창단]

   
김은혜 지휘자는 어르신들의 남을 배려하는 마음이 합창의 가장 중요한 요소라며 이것이 한사랑실버합창단의 성공비결이라고 말했다.
한사랑 실버 합창단 노래 연습 2시간동안 어르신 단원들의 눈빛과 태도에 한치의 흐트러짐도 없다. 매번 열과 성을 다해 어르신들의 화음을 맞추고 노래 실력을 일깨워 주는 이가 있기 때문이다.
 다름 아닌 한사랑실버합창단 김은혜(34) 지휘자다.
 "지휘자가 너무 잘 이끌어줘요"라는 실버세대들의 칭찬이 인터뷰 내내 끊이지 않았다.
 "참여자들이 즐겁고 밀도있게 노래할 수 있게 지도하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한사랑 실버 합창단이 창단 1여년 만에 합창 대회에 여러 차례 나갈 정도로 실력을 갖춘 아마추어 합창단으로 성장한 한 축에 김은혜 지휘자가 있는 것이다.
 "단원들 스스로 재미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어려운 곡 연습해서 큰 대회 입상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어르신들과 눈높이를 맞추고 마음을 나눌 수 있는 합창단을 지향합니다."

 김 지휘자는 "합창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조화"라고 강조한다.
 "합창은 전체를 위해 자기를 죽이고 배려할 줄 알아야 좋은 소리가 납니다. 합창에서 만큼은 프로보다 아마추어가 훨씬 퀄리티가 높은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또 젊은이보다 나이 지긋한 어르신들이 스스로를 낮출 줄 알고 남을 위해 자신을 내려놓을 줄 알죠. 한사랑 실버 합창단의 성공비결이 바로 여기에 있는게 아닌가 합니다"

 김 지휘자는 "젊은 사람들에게서 느낄 수 없는 인생의 연륜을 실버 합창단의 하모니에서 느낄 수 있다"며 "어르신들도 충분히 바로크 음악과 같은 클래식을 소화할 수 있고 노래할 수 있으며, 거기에서 또 다른 감동을 느낄 수 있다"고 전했다.
 무엇보다 음악 앞에서 진실해지는 어르신들의 모습을 보면서 정작 프로인 자신이 부끄러움을 느꼈던 때가 한두번이 아니라고 했다.

 김 지휘자는 "합창단은 노인들의 행복바이러스이다"며 "우리 합창단의 활동으로 건전한 노인문화가 정착되고 노인들의 고상한 취미로 합창단이 활성화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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