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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평소에 지면을 통해서 알게 된 지역의 한 인사와 식사를 같이한 일이 있었다. 선대부터 울산이 고향인 그는 지역 문제에 대해 누구보다 애정을 가진 사람이었다. 우리는 몇 마디 주고받지 않았지만 상당부분 공통점을 가지고 있어 쉽게 친밀감을 느낄 수 있었다. 문제는 반구대암각화 이야기가 나오면서부터였다. 그는 반구대암각화에 대해 총리와 정치인들의 잇단 현장 방문을 꾀나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눈치였다. 한발 더 나아가 반구대암각화를 두고 그저 몇 천 년 전 문자가 없던 시대에 원시인들이 자기네 소망을 담아 새겨둔 것에 지나지 않는데 너무 과대 포장한다는 이야기까지 했다. 한마디로 너나없이 보존을 외치는 모양새가 공명심이나 명예욕과 연결된 지극히 천박해 보인다는 주장이었다.


 순간 나는 당황했다. 그에게 뭐라고 이야기를 해야 할지, 실제로 막막한 느낌마저 들었다. 그리고 며칠이 지난 뒤, 울산을 처음 찾았다는 서울지역 대학교수와 반구대암각화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그는 앞서 이야기 한 그 인사와는 너무나 상반된 주장을 펼쳤다. 그의 주장을 요약하면 한마디로 '무조건 보존'이었다. 그는 울산시가 식수를 볼모로 세계 유일의 고래암각화를 수장시키고 있다며, 결국 울산시가 국보를 구실로 반대급부를 노리는 포석이라는 극단적인 발언까지 쏟아냈다. 열렬한 문화유산 보호론자인 그에게서 받은 인상은 문화재 보존 운동가라는 느낌이 강했다. 한편으로는 그의 울산 방문이 다행스럽다는 생각도 들었다. 반구대암각화를 지면이나 그림으로만 본 그가 어떻게 운동가 수준의 극단론자가 됐는지 모를 일이지만 적어도 현장을 찾아 오늘의 반구대암각화를 제대로 보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앞서 언급한 두 사람의 이야기가 지금 반구대암각화가 처해 있는 상황을 대변하고 있다. 바로 그 중심에 가치의 문제와 물 문제라는 두 가지 오해가 기둥처럼 버티고 있다. 과대포장이라는 이야기는 가치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된 오해다. 모르면 공부를 해야 할 일이지만 모르면서 아는 척하는 인사들이 있다. 무시하고 넘어가면 그 뿐인데, 그런 인사가 지역문제를 이야기하는 자리에 감초처럼 옮겨 다니니 마냥 모른 채 하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반대급부 이야기는 반구대암각화에만 몰두한 오해다. 물 부족 국가인 대한민국에서 공업용수나 식수의 절대치가 부족한 울산을 고려하지 않으니 반대급부니 볼모니 하는 이야기가 나온다. 물론 울산시의 책임도 일정부분 있다. 식수를 주면 수위를 낮추겠다는 조건부식 해결책은 하책이다. 그 하책으로 세계문화유산의 보존을 이야기 하니 색안경을 끼는 인사가 생기기 마련이다.


 반구대암각화가 선사시대 사람들이 고래 사냥을 시작한 사실을 알려주고 있다고 영국의 BBC가 보도한 일이 있다. BBC는 반구대암각화에는 향유고래, 참고래, 혹등고래 등 큰 고래 46마리 이상이 그려져 있으며 선사 인류가 고래를 잡기 위해 작살과 부구, 낚싯줄을 사용한 증거를 제시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다니엘 로비노 박사는 "암각화에는 돌고래 및 고래의 그림과 함께 배위에서 작살과 낚싯줄을 사용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나타난다"면서 "이것은 고래잡이 광경"이라고 열광했다. 이 보도는 얼마 후 세계적인 인류학 잡지인 랑트로폴로지(L'Anthropologie)에 실리기도 했다.


 BBC가 특집 프로를 마련한 것은 반구대암각화의 희귀성 때문만은 아니다. 환태평양의 연안지역이 인류 역사의 중대한 이동루트였고 그 중심에 반구대암각화가 위치해 있다는 사실을 주목하고 있다. 북으로 알래스카에서부터 남으로 뉴질랜드에 이르는 인류의 고래문화 흔적을 추적한 결과다. 바로 반구대암각화는 귀신고래가 알래스카로 돌아가는 회귀점에 존재한다는 사실이 그들의 주목을 받았다. 특히 반구대암각화는 고래와 함께 배가 등장하는 그림이다. 이는 바로 고래와 인류의 이동을 증명하는 중요한 연결망이 된다. 뉴질랜드의 원주민인 마오리족에게는 파이케아 신화가 전해지고 있다. 고래 등을 타고 온 조상 이야기와 고래 자체가 그들의 조상이라는 이 신화는 고래와 인간의 상호 호환환생사상을 가진 원시고래잡이 문화에서 볼 수 있는 공통점이다. 마오리족 조상들은 '와카(waka)'라고 불리는 배를 타고 수많은 바다를 거쳐 오늘날 뉴질랜드인 아오테아로아의 땅에 정착하게 되었다고 한다. 유전자 분석을 연구한 학자들은 한반도와 알래스카, 폴로네시아와 뉴질랜드를 비롯해 아메리카 원주민 후손 등 환태평양 연안 민족들에게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유전인자가 바로 고래 문화를 가진 인류의 흔적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바로 이 같은 사실이 반구대암각화의 가치다. 물 문제가 당면한 걸림돌이지만 이는 정부차원에서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반구대암각화가 울산시민들의 전유물이 아니라 인류의 이동경로와 한반도 정착민의 뿌리를 찾는 결정적인 단서라는 점에서 그렇다. 보다 큰 문제를 보면 식수 문제의 해결책은 나오기 마련이다. 가치의 문제나 반대급부 이야기를 한 인사들이 빠져 있는 오해의 그물망에서 벗어나는 것도 본질을 제대로 볼 때 가능하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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