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하병립 울산병원 신경과 과장

 말은 우리의 생각과 감정을 담는 그릇이다. 그러나 때로는 말로 쉽게 담아내지 못하는 것들도 있고, 어떤 말이 너무 널리 퍼져 그 외의 다른 것들은 잘 생각하지 못하게 되는 경우도 있다.
 육감(六感)이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오감(五感·시각, 청각, 촉각, 후각, 미각)을 제외한 무언가 본능적인 예지력 같은 것을 표현하는 데 쓰인다.  이런 실체가 없는 육감이 아닌 단 1초도 쉬지 않고 우리의 뇌에 자극을 주는 감각이 또 하나 있다. '오감'이라는 단어에 밀려 우리가 평소엔 생각하지 못하는 감각, 바로 '평형감각'이다. 
 평형감각과 관련되는 어지러움증에 대해 울산병원 신경과 하병립 과장에게 들어봤다.

#어지럼증의 원인과 종류

평형감각이 없다면 제대로 서고 걷기가 어렵다. 또 걷거나 차를 타고 이동하며 간판이나 스쳐가는 다른 차의 번호판을 읽는 것도 어려워질 것이다.
 평형감각도 종류가 있다. 신체나 머리가 회전하는 것을 느끼기도 하고, 올라가거나 내려가는 것 또는 수평적인 이동을 감지하기도 하며, 어느 한 쪽으로 기울어져 있는 것을 알기도 한다. 시각자극은 눈으로, 후각은 코를 통해 들어온다고 하면 평형감각의 많은 부분들은 귓 속 깊은 곳에 있는 '전정기관'을 통해 대뇌로 들어간다.

  의사의 입장에서는 '어지럽다'는 말도 '아프다'는 말 만큼이나 애매하다고 하병립 과장은 말한다.
 하 과장은 "어떤 환자들은 누워 있다가 일어설 때 머리에 무언가 멍한 느낌이 들거나 심하면 눈 앞이 어두워지며, 심지어 짧게 의식을 잃어버리기도 한다고 호소한다. 또 다른 환자는 몸이 공중에 붕 뜨거나 어느 한 쪽으로 이동하는 느낌이 들기도 하며 주변의 환경이나 자신이 빙글빙글 회전하는 착각이 든다고도 한다"며 "두 번째의 예들에 해당하는 것들이 전정기관이나 전정기관과 연결된 뇌의 이상 등이 있을 때 나타날 수 있는 경우에 가깝다"고 설명했다.

   
▲ 귀의 구조
 어지럼증은 여러 가지 약물이나 심장기능의 이상, 정상적인 생리현상에 의해서도 나타날 수 있다.
 말초 전정기관 어지럼증 중에서 가장 흔한 것 중의 하나는 '양성 체위성 돌발 현훈'이라는 것이다. 이는 전정기관 중 세반고리관이라는 튜브형의 구조물(내부는 림프액으로 채워져 있음) 속에 결석이 발생해 생기는 질환이다.
 어지럼증이 수 분간 지속되다 안정하면 점차 사라지고, 누운 자세에서 고개를 돌린다거나 할 때 다시 생기는 경우도 많다. 이것은 세반고리관 내부에서 머리의 위치에 따라 결석이 이동해 발생하는 현상이다. 수일 이내에 자연스럽게 호전되는 경우도 많지만 때로는 결석을 빼내는 '정복술'이라는 방법으로 현훈을 없애기도 한다.

인또 흔히 어지럼증을 나타나게 하는 것은 '메니에르병'이다. 이 병은 전정기관 또는 청각을 담당하는 '와우'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세반고리관처럼 전정와우기관(두 기관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은 속이 림프액으로 꽉 차있는 기관이다. 이 기관에 림프액의 양이 늘어 압력이 증가하게 되면 일시적으로 어지럼증 등이 발생할 수 있다. 이는 수 개월 간격으로 재발하는 경향이 있으며, 청력에 다소 영향을 줄 수 있다.

 증상이 심하고 다소 오래 갈 수 있는 것 중에 하나가 '전정신경염'이다. 이는 전정기관과 뇌를 연결하는 신경줄기에 염증이 발생하여 한 쪽의 전정기능이 심각한 손상을 받는 경우이다. 이 병의 경우는 증상이 너무 심해 많은 사람들이 즉시 응급실을 방문하고 있다.
 하 과장은 "이 병을 잘 아는 의사도 자신이 이 병에 걸린다면 '이렇게 내가 죽거나 뇌졸중이 오는 것인가'하고 생각할 수 있을 정도로 증상이 심하다"고 말했다.
 
#어지럼증의 치료

전정기관 중 세반고리관이라는 튜브형의 구조물(내부는 림프액으로 채워져 있음) 속에 결석이 발생해 생기는 질환인 '양성 체위성 돌발 현훈'은 정복술로 치료한다.
 정복술은 환자의 체위와 두위를 바꿔 결석이 세반고리관 내를 이동하도록 유도해 결석이 증상을 유발하지 않는 위치로 빠져나가도록 하는 방법이다.
 하병립 과장은 "간단해 보이지만 이 병을 이해하고 이 방법을 고안하는데 참으로 많은 시간이 걸려, 단순하다고 말하기 어렵다"고 전했다.
 많은 환자들이 수일에 걸친 약물 치료 후 증상이 호전되는 경과를 보인다. 그러나 어떤 환자는 급성 어지럼증은 호전되도 약한 정도의 어지럼증이 수 주 이상 남아있다고 호소하기도 한다.

   
▲ 양성 체위성 돌발 현훈 정복술
 어지럼증을 느낀 후 구토를 하게 되면 우리 신체에 어떤 이점이 있는 지 알려져 있지 않지만 인간의 몸은 뇌의 전정신경핵들과 구역질 중추가 상호 연결이 되도록 진화해 왔다. 차를 타고 가다 멀미를 하는 경험은 누구나 해봤을 것이다. 차 안에서 몸이 흔들리게 되면 그 흔들림이 전정기관을 계속해서 자극하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어지럼증을 유발하는 질환은 구역질이나 구토를 수반하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 어떤 사람들은 회전감 보다 이런 위장관 증세가 훨씬 더 괴롭게 느껴진다고 한다. 그래서 내과적인 검진을 받게 되는 경우도 많다.

 또 위장관 운동조절약제가 어지럼증에 효과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뇌졸중에 수반된 경우는 어지럼증 이외에 다른 신경학적인 증상이 동반되면 쉽게 의심해 볼 수 있다. 신체 일부의 근력이 감소하거나 이상감각이 동반되는 경우, 발음이 나빠질 때, 사물이 두 개로 보이기도 하는 등의 증상이 있을 경우 등이다.
 하 과장은 "환자를 관찰하고 이야기를 듣는 것 만으로는 구별이 어려울 때가 많다. 고혈압이나 흡연, 당뇨병 등의 심혈관계 질환의 위험인자가 있는 고령의 환자의 어지럼증은 가볍게 봐서는 안된다"고 경고한다.

 어지럼증 중 많은 부분은 부정맥이나 판막질환 등의 심장질환에서 기원하기도 한다. 때문에 경우에 따라 심장초음파나 심전도 검사 등이 반드시 필요하며, 의사의 판단에 따라 뇌혈관 질환 보다 심혈관계 이상에 대한 검진이 선행되기도 한다.  정리=이보람기자 usybr@ulsanpress.net

저작권자 © 울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