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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낙동강변의 매화는 만개했지만 영포마을은 이제 꽃잎을 피우려는 시간이다. 마을 산자락에 조성된 매화밭 사이로 등산객들이 한가로운 봄볕을 즐기며 하산하고 있다.

주말 배내골을 따라 흘러갔다. 간월산 넘어 굽이굽이 길들이 오랫동안 열렸고 봄은 아직 보이지 않았다. 연초록의 잎을 피워 낼 생명의 기운은 드러나지 않았고, 가끔씩 샛노란 산수유가 화사하게 피어 있을 뿐이었다.
 산을 내려가서야 시린 바람 사이로 부풀어 오른 꽃잎들이 보인다. 양산 원동이다. 원동은 매화가 아름다운 땅이다.

 원동 매화는 매봉산과 천태산을 끼고 영포마을에서 시작해 내포, 원리를 거쳐 낙동강변까지 이어진다.
 낙동강변의 매화가 영포마을보다 일주일정도 빨리 핀다. 강을 따라 올라온 봄의 기운이 산기슭의 꽃들을 피우고 하나 둘씩 영포마을까지 당도한다.
 꽃들 속에서 봄날은 오고 또 봄날은 간다. 매화가 날리고 벚꽃이 스러지면 유채가 뒤를 잇는다. 늘 이 무렵이다. 며칠 늦거나 이르다.

#영포마을이 원동매화의 중심


영포마을은 원동매화의 주류다. 20여년전 원동역 부근으로 시집갔던 딸이 역 관사에 있던 매화를 한 가지 꺾어 마을에 심은 것이 시초다. 향이 좋아 초창기에는 관상용으로 대부분 사용됐다. 외지에서 꽃꽂이용도로 사가는 것이 다였다.

 그러나 점차 매실의 효능이 알려지면서 재배면적이 늘어나 지금은 대부분이 매화농사를 짓는다. 
 영포의 매화는 재래종이 중심이다. 매화는 홍매, 청매 등의 꽃잎 색깔로 나누는가 하면 앵숙, 백가하, 남고등 교배와 개량으로도 나눠 그 종류만도 50여종이 이른다. 그러나 전문가가 아닌 다음에야 구별이 쉽지 않다.
 영포마을 장민호씨(73)는 "재래종이라 알이 잘지만 그 향이 으뜸이다"며 "이젠 입소문에 서울 등 대도시에 전화주문도 다 못 댈 정도"라 했다.

 영포마을은 계곡을 중심으로 양쪽 산비탈을 개간해 매화를 심었다. 마을을 따라 길게 펼쳐진 270만평의 밭마다 매화가 숲을 이룬다. 그러나 그 화려한 봄날을 준비하기까지 정직한 노동을 동반하는 힘겨운 시간들을 견뎌야 한다. 영포마을은 82가구 100여명이 산다. 그나마 젊은 사람들은 찾아보기 힘들다. 
 

   
▲ 영포마을 좌우로 산자락을 개간해 만든 매화밭에 고된 노동의 시간들이 걸려있다. 그 고된 삶은 꽃으로 피어 환하고 초록의 열매로 상큼하다. 만개가 되면 골짜기 사이로 연분홍의 바다가 펼쳐진다.


#오늘부터 3일간 원동매화축제


매화는 춘분 무렵 비료 살포를 시작으로 한해의 농사가 시작된다. 기력을 보충시킨 후 가지치기를 시작한다. 가지치기는 나무의 균형을 잡는 일이다. 20년을 견뎌온 나무는 열매가 실하지 못하다. 올해 나온 새 가지에서 싱싱한(?) 열매를 구하는 일이다. 가지치기는 바람의 통로를 열고 햇살의 여울을 터준다. 그래서 가지치기는 땅의 기운이 새 가지로 모이게 길을 여는 것이다. 정리된 가지위에 꽃망울이 맺히고 꽃이 지면 열매가 열린다.

 매실은 5월에서 6월까지 수확을 한다. 부족한 일손은 품을 주고 사람을 산다. 여기서 수확된 매실은 대략 700여톤. 약 20일간 300여명의 사람들이 산자락을 오르내린다.
 이때 영포마을의 도로가에는 전국에서 온 차량들이 즐비하다. 그날 딴 매실을 출하하는 행렬이다. 예전 꽃가지를 사가기 위해 줄지어 섰던 차들이 이젠 열매를 위해 도열한다. 꽃을 버리고 열매를 취한 셈이다. 그러나 꽃은 버려도 버린 게 아니다.

 꽃은 열매를 맺기 전부터 사람을 불러 모은다. 꽃이 만개할 때쯤 마을은 온통 연분홍의 바다로 변한다. 그 연분홍의 시간에 지난해까지 축제를 열었다. 그러나 올해는 공식적인 축제는 구제역으로 열지 않는다. 다만 작목반 주최 매화축제가 영포마을에서 25일부터 3일간 열린다. 먹거리부터 볼거리까지 다양한 행사를 준비 중이다.
 
   
▲ 천년의 시간을 지낸온 신흥사. 통도사 말사로 초기에는 110동의 건물이 있었다고 전해지나 현재는 모두 불타버리고 대광전만 남아 낡고 오래된 시간을 기억하고 있다.


#천년의 시간을 건너온 신흥사


원동에는 매화만 있는 것이 아니다. 천년의 시간을 건너온 절집 신흥사가 있다. 신흥사는 영포마을 맞은편 천축산에 자리 잡았다. 매화 밭으로 둘러싸인 길을 오르면 웅장한 일주문이 나타난다. 일주문을 지나 100m 쯤 계곡을 따라 가다보면 왼편으로 제법 넓게 터를 잡은 당우들이 보인다.

 신흥사는 통도사의 말사로 301년(신라 기림왕 4) 신본(信本)이 창건했다고 하나 이때는 우리나라에 불교가 들어오기 전이므로 역사적 사실로 받아들기에는 무리다. 그러나 초창기에는 건물이 110동에 이를 정도로 대찰이었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조선에 들어서면서 억불숭유의 정책에 밀려 대가람은 종이를 만드는 곳으로 쇠락했다. 임진왜란 때 승병의 근거지로 이용됐으나 대광전을 제외한 모든 건물이 불타는 대가를 치러야 했다. 그 후 오랜 시간 방치되다 거듭된 중창불사로 오늘날 모습을 갖췄다.

 유일하게 남은 대광전은 보물로 지정됐다. 국내에서는 유일한 사원벽화인 관음삼존화가 그 가치를 인정받았다. 벽화는 30여종에 달하며 대체로 신라초기부터 고려 때까지 그려진 것으로 추정된다. 벽화속의 관세음보살은 물병 대신 물고기를 들고 있는 독특함이 돋보인다.
 정면 3칸, 측면 3칸의 맞배지붕으로 고려후기의 건축양식을 보이고 있으나 1988년 수리할 당시 '순치십사년(順治十四年)'이라는 상량문의 기록으로 미뤄 1657년(효종 8)에 중창했음을 알 수 있다.

 절집 마당은 잔자갈로 저절로 발걸음을 조심스럽게 만든다. 오랜 시간을 견디어 온 대광전 기둥은 갈라져 세월의 흔적이 진하다. 그 위로 빛바랜 낡은 단청이 견고하게 올려져있다. 가끔, 바람이 불고 풍경이 잠을 깨우듯 마당을 가로지른다. 산신각에 올라서면 넓게 펼쳐진 풍광이 시원함을 선사한다.
 
   
▲ 30여m절벽을 미끄러져 내려오는 수도암의 폭포. 골짜기를 거슬러 오르는 호젓한 산길이 주는 맛이 솔솔하다.

#30m 절벽을 미끄러지는 폭포

영포마을을 지나 낙동강변으로 달리다 보면 내포마을 왼편으로 원동자연휴양림이 보인다. 휴양림을 끼고 들어가면 국내 최장 폭포가 있는 수암사와 자연생태늘밭마을로 길이 보인다.
 길은 좁아 차량이 교행하기 힘들 정도다. 구불구불한 길을 10여분 오르면 늘밭마을과 수암사 가는 갈림길이 나타난다. 오른편으로 길을 잡으면 5분만에 절집 주차장에 도착한다. 길을 앞서거니 뒷서거니 따라온 계곡의 물이 산수유와 어울려 환하게 빛난다. 공기는 맑고 몸은 가벼워진다. 주차장에서 5분정도 산길을 오르면 수암사다.

 거대한 암반밑에 자리한 절집은 작고 초라하지만 수도하는 곳이라 청정한 기운이 감돈다. 자연적인 소리이외에 아무런 소리도 없는 고요함속에 풍경소리만이 이곳이 절집을 알려준다. 약사전 왼편으로 길데 누운듯한 암반위로 쉴새없이 물이 흐른다.
 떨어지는 것이 아닌 미끄러지듯 내리는 물은 부드럽고 조용하다. 보통의 폭포가 남성적이고 직설적이라면 이곳의 폭포는 여성적이고 은유적이다. 웅장하기 보다는 수려하고 강하지 않고 연약한 듯하다.
 계곡을 가로지르는 철재 교각과 어울리지 않는 몇몇 부속건물들이 눈에 거슬리지만 폭포의 유려함에 상쇄된다. 산보하듯 걷는 걸음에 마음도 몸도 한결 가뿐해진다.
 
#낙동강변 순매원은 이미 절정

수암사를 내려온 걸음은 낙동강변으로 이어진다. 영포마을이 25일부터 축제로 절정을 선사한다면 낙동강변 순매원은 이미 절정으로 치달았다. 철도를 낀 S라인의 절경에 이미 많은 사람들이 발걸음을 했다.
 사람들은 매화나무 아래서 점심을 먹거나 거닐거나 쑥이며 봄나물을 뜯기도 한다. 꽃그늘 아래서 사람들도 연분홍으로 물든다. 사람들은 그 속에서 분홍빛 웃음으로 행복한 듯하다.

 시린 바람 너머로 꽃잎이 부푼다. 강변의 봄이 산비탈을 타고 오른다. 바람 속에 꽃의 향기가 스민다. 바람은 소리 없이 마을과 산사이 매화로 채운다. 계곡으로 바람이 내려오면 원동의 봄은 연분홍으로 흩날린다. 원동의 봄은 그래서 오랫동안 환하다. 글·사진=김정규기자 kjk@ulsanpress.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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