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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건청 시인

 암각화를 위하여/이건청
 여기 와서 시력을 찾는다.
 여기 와서 청력을 회복한다.
 잘 보인다. 아주 잘 들린다.
 고추잠자리까지, 풀메뚜기까지
 다 보인다. 아주 잘 보인다.
 풍문이 아니라, 설화가 아니라
 만져진다, 손끝에 닿는다.
 6천여 년 전, 포경선을 타고
 바다로 나아간 사람들,
 작살을 던져 거경을 사냥한,
 방축을 만들어 가축을 기른,
 종교의례를 이끈,
 이 땅의 사람들이 살아 있는 숨결로
 온다, 와서 손을 잡는다
 피가 도는 손으로 손을 덥석 잡는다.
 우렁우렁한 목소리로 말한다
 어서오라고, 반갑다고
 가슴으로 끌어안는다.
 한반도 역사의 처음이
 선연한 햇살 속에 열린다.
 여기가 처음부터 복판이었다고,
 가슴 펴고 세계로 가는 출발지였다고,
 반구대 암각화가 일러 주고 있다.
 신령스런 벼랑이 일러주고 있다.
 눈이 밝아진다.
 귀가 맑아진다.
 잘 보인다. 아주 잘 들린다.

 

■ 시작노트
시적 직관과 상상력으로 '고래'를 만나려 하였고 '암각화'의 제작 당시 삶의 풍경을 복원해 보려 하였다. 반구대 암각화는 6천 여 년 전 사람들이 만들기 시작한 이래 오랜 세월을 두고 새겨졌다고 한다. 바라기는, 이 시편들이 이 땅에 살았던 석기·청동기인들과 체온을 나눌 수 있는 작은 소통의 길이라도 열어 줄 수 있었으면 하는 것이고, 나아가 '암각화'와 '고래'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데도 일조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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