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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국가안전기획부 불법도청 테이프를 입수하여 보도한 혐의로 기소된 안상호 문화방송 기자에게 징역6월에 자격정지 1년의 원심을 확정하였다. 이 테이프에는 1997년 연말 대선을 앞두고 이학수 당시 삼성그룹 비서실장과 홍석현 중앙일보 회장이 만나, 돈을 건넬 특정 후보와 검찰 고위간부들의 이름, 액수 등을 논의하는 대화내용이 녹음되어 있다고 한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사인의 핵심적 쟁점은 "위 보도행위가 정당행위로서 위법성이 조각될 수 있는 경우인가?"였던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해 대법원 다수의견(8명)은 "불법으로 감청·녹음되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이를 보도하는 것은 원칙적으로 위법하다"고 하면서 이러한 보도 행위가 정당행위로서 인정되기 위해서는 "생명·신체·재산·기타 공익에 중대한 침해가 발생할 가능성이 뚜렸해야 한다"라는 기준 하에서 그 행위에 대한 불법성을 인정하였다. 이러한 대법원의 다수의견은 통신비밀보호법 제8조 1항의 긴급통신제한조치 규정에 근거한 것으로 이해된다. 동법은 통신비밀 침해행위를 전면적으로 금지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동조 등에 의해 그 예외를 인정하고 있다.

 그러나 동법에는 제8조 이외에 제5조에도 그 광범위한 예외를 규정하고 있다(너무나 많아서 예외란 표현이 무색할 정도다). 제5조에는 "범죄수사를 위한 통신제한조치의 허가요건"이라는 표제 하에 "통신제한조치는 다음 각호의 범죄를 계획 또는 실행하고 있거나 실행하였다고 의심할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고 다른 방법으로는 그 범죄의 실행을 저지하거나 범인의 체포 또는 증거의 수집이 어려운 경우에 한하여 허가할 수 있다"고 규정하면서, 그 대상범죄들 중에 공무원의 직무에 관한 죄인 형법 제129조 수뢰죄를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동 규정은 뇌물사건의 경우에는 예외적으로 통신의 비밀이라는 사적 법익의 침해를 허용하고 있다.

 이러한 통비법의 구조에 의할 때, 필자는 본 사건에 대한 대법원의 태도에 대해 심각한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왜냐하면 대법원이 동법 제5조 규정에 따라 대상행위의 정당성 여부를 판단하였다면 보다 완화된 요건 하에 대상 보도행위의 정당성이 인정될 수도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법원은 법원의 허가 없이 침해행위를 하려면 제8조처럼 엄격한 요건이 적용되어야 한다고 판시하고 있다. 사건의 행위자가 언론기자이고 이러한 기자의 보도에 의한 통신침해 행위는 법원의 허가대상이 될 수 없다는 점에서 대법원의 고민과 법적용에 대해 어느 정도 수긍할 수도 있다.

   그러나 언론보도의 통신비밀 침해 허용여부는 통신의 비밀과 언론의 자유라는 법익간의 이익교량이라는 관점에서 세밀하고도 정밀하게 결정될 문제이지, 법원의 허가대상이 될 수 있는가에 따라 결정될 문제가 아니다. 법원의 허가라는 요건은 허용 여부가 결정된 후에 허용정도를 결정할 때, 고려되어야 할 요소로 이해되어야 한다. 이러한 점에서 대법원의 동법 제5조 적용 여부에 대한 고려 없는 동법 제8조 적용에 대해서는 매우 심각한 우려를 금할 수 없다. 다소 논리의 비약이 개입될 수 있음을 인정하면서도, 그리고 분명히 의도적이 아닐 것이라고 확신하면서 "언론에 대한 사법(司法)통제의 위험성"이 연상되는 것은 기우일까?

 동법 제5조의 유추적용은 사인인 기자에게 법원의 허가라는 요건을 어떻게 적용할 것인가라는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이러한 허가요건의 언론기자에 대한 적용은 언론에 대한 법원의 사전검열이 될 것이므로 이는 절대 용납될 수 없다. 그러나 이것은 해결 불가능한 문제가 아니다. 허가요건은 제5조를 유추적용하여 언론의 보도행위에 의한 통신비밀 침해의 허용범위를 산정함에 있어 그 범위를 제한하는 요소로 고려하면 족하기 때문이다.

 사생활의 비밀과 통신의 비밀은 헌법에 규정되어 있는 매우 중대한 개인적 법익이다. 그러나 언론의 자유, 표현의 자유, 양심의 자유 등도 자유민주질서의 근간을 유지하는데 필수불가결한 요소이다. 따라서 개인적 법익 보호를 볼모로 권력에 의한 언론통제는 어떠한 경우에도 용납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하물며 그것이 민주적 헌정질서를 교란할 위험성이 매우 높은 사실과 관련되어 있을 개연성이 매우 높은 보도에 대해서라면 더욱 그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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