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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국가나 도시의 정체성을 살피려면 두 가지 아이콘이 필요하다. 바로 박물관과 도서관이다. 그래서 한 국가의 과거를 보려면 박물관에 가고, 그 나라의 미래를 보려면 도서관에 가 보라는 말도 유효하다. 정보사회의 획을 그은 빌 게이츠는 "오늘의 나를 만들어 준 것은 조국도 아니고 어머니도 아니고 내 고향 시애틀의 작은 도서관이다"고 밝혔다. 세상의 모든 이들이 아침마다 다른 세상을 기웃거리는 모든 창을 열게 만든 그는 여전히 "컴퓨터의 유용함은 인정하지만 그래도 책이 없는 세상은 존재할 수 없다"고 단언했다.


 도서관은 행복을 만드는 공간이다. 오래된 이야기지만 짧은 기간 미국 남부의 작은 도시에 머문 적이 있었다. 도시는 작고 아담했지만 시간이 멈춘 것 같은 여유가 넘실거리는 도시였다. 신호등이 없고 교통경찰이 없고 번쩍거리는 네온사인이 보이지 않는 그런 도시였다. 시골이 아닐까 생각하겠지만 인구가 7만이 넘는 행정구역상 시티였다. 그 도시에 머무는 동안 필자는 거의 매일같이 중앙공원과 도서관에서 한나절을 보냈다. 이방인인 나에게 미국의 작은 도시는 여권 하나만으로도 시립도서관의 출입 타드는 발급해 주었다. 그 카드 하나면 도서관은 온전히 내 것이 됐다.


 도서관은 오전과 오후의 풍경이 참 많이 다른 곳이다. 오전 시간은 대체로 지역주민들이 열람객의 대부분을 차지하기 때문에 도서관 직원들이 여유로운 시간을 보낸다. 하지만 오후가 되면 사정이 달라진다. 초등학교 일과시간이 끝나면 시림도서관은 그야말로 방과후 학교로 변한다. 강제로 시킨 것도 아니고 과제나 점수가 있는 것도 아닌데 아이들은 저마다의 관심사를 찾아 도서관 곳곳을 누빈다. 덩달아 직원들의 일과도 분주해진다. 여기저기 쏟아지는 질문공세와 이를 안내하는 그들의 친절이 먼발치에서 지켜보는 이방인의 눈엔 참 낯설고 부러운 광경이었다.
 그 작은 도시에서 보낸 짧은 시간이 필자에게 소중한 것은 미국이 가진 힘을 보았기 때문이다. 월가의 금융파워나 최첨단 무기가 미국의 힘이 아니라 대륙의 구석구석에 자리한 공공도서관이 바로 미국의 힘이었다. 필자는 그곳에서 행복했다. 오전시간 내내 내셔널지오그래픽의 다큐시리즈를 한국어 더빙으로 감상할 수 있었고 불후의 명작이라 할 만한 영화를 목록을 정해 볼 수 있는 호사 아닌 호사를 그곳에서 누렸다.


 공공도서관은 그런 곳이다. 도시의 품격을 더하는 장식품이 아니라 그 도시에 사는 사람들의 일상을 행복하게 만드는 음식과 같은 존재가 바로 도서관이다. 그래서 도서관은 아주 오래전 인류가 문명을 일으키고 문화를 빗질하던 시기부터 행복을 만드는 공간으로 자리해 왔다. 그 원형이 바로 고대 알렉산드리아에 있었던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이다. 인류 최초의 공공도서관인 이곳은 기원전 288년 프톨레마이오스 1세의 명에 따라 데미트리우스가 건립했지만 로마와 이슬람의 잇따른 침공에 시달리다 645년경 완전히 사라졌다.
 지금 이집트 알렉산드리아 동쪽 해안의 샤트비(El Shatby) 거리에 있는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은 세계인 모두가 함께하는 공공도서관으로 자리하고 있다. 이곳은 고대의 흔적이 하나도 남아 있지 않은 상황에서 유네스코가 지난 2002년 여러 나라의 도움을 받아 최첨단 도서관을 설립했다. 인류의 유산을 새롭게 부활하려는 노력은 알렉산드리아 대학에서 학생과 교수들의 노력으로 시작됐고 독재자 무바라크와 유네스코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았다. 지금 그곳의 벽면엔 우리의 한글이 자랑스럽게 새겨져 있고 우리글과 혼이 담긴 책도 상당수 소장돼 있다.


 도서관 문화를 학문의 대상이 아닌 열린공간으로 만드는 일등공신은 미국이었다. 미국 보스턴시는 매사추세츠 의회의 결의에 따라 1852년 모든 시민을 대상으로 하는 무료 시립도서관을 만들었다. 지금으로선 별일 아니지만 당시로선 서민들에게 복음과 같은 엄청난 충격이었다. 부자나 귀족이 아닌 일반인이 도서관을 출입하는 것은 상상도 못하던 시대였기 때문이다. 지금 보스톤도서관 건물 입구에 있는 미네르바 조각상은 'FREE TO ALL(모든 사람에게 무료)'이라는 글귀가 역사처럼 이를 상징하고 있다.


 부자도시 울산에서 최근 벌어지고 있는 공공도서관의 관리주체 다툼은 부끄럽다. 시비를 가리고 책임을 따지기 전에 무엇보다 얼굴이 확 달아 오르는 부끄러움을 느낀다. 이제 막 박물관 하나 가지게 된 자부심이 공업탑을 몇바퀴 돌다가 어지러워 두왕고개 너머로 쏜살같이 꽁무니를 뺀다. 시립도서관 하나 갖지 못한 시민들이 부자도시라는 말을 들으면 빈깡통 소리가 날까봐 몸을 움츠리는 꼴이다. 가져가라는 쪽이나 내놔라는 쪽 모두 소리만 요란하니 이런 일이 벌어진다. 부끄러움을 알고 하나씩 만들어가는 묵묵함이 부자도시 울산을 진정한 부자로 만드는 일인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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