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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 바느질 하신다
더딘 그믐밤을 촘촘히 기우시려는 듯
호롱불 쌍심지 길게 돋우시고 때론
바늘을 머리에 쓱쓱 문지르시면서
사랑채 구들엔 생솔 둥지 찍찍 타고
옷마실 개 짖는 소리 컹컹 가까워 오면
무학리 포지서에서 가야산으로 쏘나보다
띄엄띄엄 들리는 포성, 초저녁 나타났다던
얼굴 빨간 빨갱이 쫓나보다.
<중략>
그 밤 먼 포지서 개짓는 소리로 컹컹대던
포성과, 초저녁 산으로 숨었다던 산사람은 어찌 됐을까
까닭 모를 두려움, 할머니 몸 떠시던
뽕나무 검은 그림자도 학교 사택도
물속에 드러눕고
오오, 더는 꿰맬 수 없이 덧난 이 세월도.

■ 시작노트
기억의 시작인 다섯 살은 너무나 처절했다. 그때까지 전쟁이 끝나지 않았던지 무학리 포지서에선 때때로 가야산 쪽으로 펑펑 포를 쏘곤했다. 낮엔 이름모를 산새소리, 밤을 온통 들쑤시는 개구리 우는 소리에 작은 가슴이 서늘했던 기억들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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