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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이 부패 연좌제로 전국 뉴스의 초점이 됐다. 동료 공무원의 부패행위를 알고도 신고하지 않으면 함께 징계하는 초유의 연좌제를 울산시가 들고 나온 것이 뉴스의 핵심이다. 그야말로 부패의 뿌리가 아니라 그 뿌리를 감싼 흙까지 파버리겠다는 울산시의 획기적인 발상에 언론매체들이 화들짝 놀라 '울산발 부패 연좌제'로 명패를 달았다. 울산시의 이 지침은 동료의 부패행위를 알게 되면 반드시 신고하도록 의무화하고, 이를 지키지 않으면 '의무 불이행 책임'을 물어 해당 공무원을 징계하겠다는 발상이다. 물론 전국 지자체 가운데 처음 도입하는 지침이다.

 부패 고리 끊기의 포문은 울산시교육청이 먼저 열었다. 울산시교육청은 올해를 '반부패·청렴의 해'로 선언하고 관련 조례안을 제정하는 등 각종 대책을 마련, 시행에 들어갔다. 시교육청은 본청 국장과 과장급, 지역 교육장에 대해서도 외부인들이 포함된 청렴도 평가를 실시하기로 했다. 특히 금품 수수와 향응을 제공받는 공무원에 대해서는 신고하는 시민과 공무원에게 금품·향응 수수액의 10배에 달하는 보상금을 지급하는 포상제까지 도입했다. 가히 부패의 호적을 파버리겠다고 단단히 맘먹은 모양이다.

 부패지수 우등생인 대한민국이다 보니 부패와 관련한 제도 역시 월등한 게 우리의 자화상이다. 부패가 횡행하는 사회는 원칙이 무너진 사회다. 역사는 부패를 방치하면 사회는 고사하고 나라의 존폐마저 흔들린다고 적고 있다. 그래서 세상의 모든 국가 통치자들은 부패와의 전쟁을 완장처럼 달고 다니며 청렴을 명찰로 붙이기를 희망했다. 17세기 초 영국의 철학자로 대법관에 오른 프랜시스 베이컨은 소송당사자로부터 뇌물을 받은 것이 문제가 돼 졸지에 옷을 벗고 은퇴했다. 베이컨을 총애하던 국왕 제임스 1세도 법관의 뇌물수수 행위에 대해서는 어쩔 도리가 없었다.

 부패방지법의 역사는 오래고 긴 인류사와 함께하고 있지만 현대사회의 부패방지 원조는 역시 미국이다. 일등국가를 자처하는 미국이지만 오늘의 미국사회는 부패의 부산물 위에 지은 거대하고 화려한 산호 같다는 비유가 있을 만큼 부패는 그네들의 더러운 전통이다. 이를 깨기 위해 칼을 들고 나타난 백기사가 닉슨이다. 1970년 닉슨 행정부는 민주당이 장악한 의회와의 협조 속에 '사기 및 부패금지법'을 제정하는 데에 성공했다. 이 법은 매우 강력한 반부패법이어서 미국인권연합이 우려를 나타낼 정도였다. 물론 이 법에 대한 대중의 인기는 매우 높았다.

 닉슨의 부패연좌제는 위력이 대단했다. 법 시행 7년 만에 43명의 시장, 44명의 주 사법부 판사, 60명의 주 의회 의원, 260명의 경관들이 연방정부에 의해 뇌물죄로 기소됐고 대부분 유죄판결을 받았다. 부패금지법이 발단은 아니었지만 닉슨은 추상같은 반부패 완장을 찬 채 희대의 도청사건을 진두지휘하는 대담함을 보여 '워트게이트' 사건으로 임기를 채우지 못하는 비극적인 종말을 맞았다. 어떻게 보면 부정과 부패는 세상이 평화로울 때보다 혼란과 과도기, 전쟁이나 내란의 시기에 더욱 창궐했던 모양이다. 멀리 갈 것 없이 조선시대만 봐도 그렇다.

 조선시대의 예를 보면 탐관오리들은 반드시 흉년이 들었을 때 더 극성이었다. 삼정의 문란으로 잘 알려진 조선 후기의 부패상은 '가렴주구' '가정맹어호'라는 말이 아이들의 입에서 나올 정도로 관가의 폭정과 부패는 첩첩산중이었다. 우스운 일이지만 어린 시절, 우리가 고전으로 읽은 심청전이나 흥부전 같은 소설이 대량 출판되어 세상에 나돈 시기도 이 때였다. 어지러운 사회를 바로잡기 위해 이른바 선서와 양서라는 이름으로 책을 찍어 백성들을 교화하려는 정책이었지만 정작 교화가 필요한 것은 백성이 아니라 관리들이었다.

 조선 후기의 부패상은 공직자의 도덕적 해이가 가장 큰 원인이지만 실상은 그들에 대한 감찰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정부의 매너리즘이 그 뒷배였다. 지방 수령으로 나온 고위 공직자들은 대체로 머리보다 주머니만 두둑한 양반 졸부들의 후예였고 지방공직을 주유천하하듯 휴가나 유람쯤으로 여긴 것이 그들의 공직윤리였다. 당연히 백성을 살피는 일 따위는 관심이 없고 뭘 먹고 뭘로 아랫도리를 즐길 것인지에 골몰했다. 결국 공직의 위엄은 아랫 것들이 대신했고 당하관이나 아전들이 상전의 명찰을 달고 백성들을 괴롭혔다.

 부패를 추방하고 고리를 끊는 것은 투명한 사회를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 문제는 제도나 법을 통해 부패를 길들이겠다는 발상이다. 물론 제도와 법은 있어야 한다. 하지만 아무리 철통같은 방어시스템으로 부패를 막겠다고 해도 부패의 근원을 제대로 진단하지 못하면 조롱거리가 되기 마련이다. 철밥통깨기로 안타를 친 울산시가 부패연좌제로 2루타를 치고 다음엔 어떤 방망이로 사이클링 히트를 칠지 모를 일이지만 동료를 감시하고 고발하는 제도가 부패대책이라면 차라리 '부패 커밍아웃'부터 하는 것이 더 나을 듯싶어 하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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