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어느 날부터
 역한 세월의 이끼가 슬어 나락에 빠진 늪
 융숭한 나날이 퇴적되어
 바닥은 비닐과 음료수 캔으로 뒤덮이고
 밤마다 속이 쓰려 토악질을 해댔다
 바람에 저며진 파문이 무료하게
 끓어오른 거품들을 밀어냈다 끌어당기곤 했다
 
 어디선가 흘러든 시큼한 폐수로
 환부는 더 층층이 썩어들고
 애초에 무엇이었는지 모르게
 플라스틱처럼 딱딱한 얼굴로 성형된 늪
 그 다 죽은 늪이
 바람 잔잔하던 날
 마지막 힘을 다해 몸부림치게 시작했다
 검은 침묵을 깨고 눈을 떴다
 
 오래도록 꾹 참아 왔던 말을 내뱉듯
 시커먼 가슴팍
 그 흉한 구멍 안에서 백련白蓮 한 송이 꺼내보였다
 온통 검은 바닥에
 슬몃 찍힌 흰 점 하나로 늪은 온통 빛나기 시작했다
 
 검은 웅덩이가 아니라 청정한 연못이었음을
 그곳에 남 몰래 쓰레기를 갖다버리던 사람들은
 그제야 남 몰래 깨끗한 비밀 하나를 알았다

■ 시작노트
나는 어디에서 왔는가. 나는 누구를 통해서 이 지구에 왔는가. 나는 왜 여기에 왔는가. 나는 어디로 가는가. 고통 속에 피었더라도 비바람에 꺽였더라도 꽃의 이름은 지워지지 않는다.

저작권자 © 울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