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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래는 참 묘하다. 대부분이 그림으로 먼저 만나는 고래는 사실성 보다는 상징성이 강해 어린 날 묘한 친근감으로 다가 온다. 그 친근감이 자신보다 수십배가 넘는 덩치로 다가오면 고래는 어느듯 친숙한 대상에서 외경의 대상으로 바뀌고, 대자연의 상징적 대리물로 자리한다. 그래서 고래는 꿈을 쫓는 자들에게 희망봉이고 꿈꾸는 자에게는 등대가 된다. 바로 그 고래가 울산의 아이콘이다. 

 이번 주말 울산은 7,000년 전 반구대암각화에서 깊은 잠에 빠진 고래부터 고래바다 수면을 넘실대는 고래까지 이 땅의 모든 고래가 태화강을 타고 흐르며 한바탕 축제를 벌인다. 단 하나 뿐인 고래축제다. 그 고래축제를 앞두고 고래와 관련한 두 가지 뉴스를 접했다. 하나는 영화 인디아나 존스의 실재 인물로 유명한 로이 앤드류스의 흉상이 울산에 만들어졌다는 것이고 나머지는 울산대에서 설립한 반구대암각화 보존연구소의 현장방문이다.

 앤드류스의 흉상은 그가 장생포를 탐험하며 이곳을 회귀하는 고래에 '한국계 귀신고래'라는 이름을 붙인 공로 때문에 세웠다. 귀신고래는 울산 앞바다를 돌아 쿠릴열도와 알래스카를 거쳐 멕시코의 바하 캘리포니아까지 유영한다. 그 유영의 전 과정을 탐험하고 한국계 귀신고래라는 이름을 붙인 앤드류스의 공로는 고래도시 울산의 자랑이 될 만하다. 여기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갈 부분은 귀신고래의 반대쪽 회귀지점인 멕시코 바하 캘리포니아 해안이다. 이곳  리에브레 석호 지역은 반구대암각화가 있는 울산만과 태화강 지역의 지형과 유사하다. 특히 이곳에는 반구대암각화와 닮은 고래잡이 암각화가 남아 있다. 학자들은 이곳의 암각화가 약 3,500년전에 그려진 것으로 보고 있는데 하늘로 향해 있는 문양이나 새끼를 밴 고래그림이 반구대암각화 고래그림과 너무나 닮아 있다.

 다른 한 가지 뉴스는 반구대암각화의 훼손에 대한 이야기다. 반구대암각화의 영구 보존을 위해 설립된 울산대학교 부설 반구대암각화보존연구소 자문위원들이 현장을 찾아 사연댐 수위조절을 다시 한 번 촉구하고 나섰다. 그 자리에서 자문위원들은 반구대암각화가 사연댐 건설 이후 20% 훼손됐다며 조속하고 즉각적인 보존대책을 요구했다. 자문위원들의 이같은 목소리는 어쩌면 당연한 것이고 보존대책의 가장 현실적인 이야기다. 하지만 울산시는 발끈했다. 이미 다 아는 사실이고 수위조절 대책까지 세워놓은 마당에 느닷없이 훼손 이야기를 다시 꺼내는 부분이 마뜩찮다는 이야기다.

 하기야 '20% 훼손' 주장은 지난해 10월 서울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동북아역사재단 주최로 열린 '한국 암각화 발견 40주년 기념 국제학술회의'에서 나온 이야기다. 이 자리에서 허권 한국 유네스코 평화센터 원장은 "반구대암각화 암면 보존방안을 위한 학술연구 결과, 사연댐으로 인한 지속적인 침수와 노출로 전체 표면의 23.8%가 손상된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이 학술연구는 공주대 산학협력단이 울산시의 의뢰로 2009년 9월부터 1년간 진행한 현지 조사결과였다.

 다 아는 이야기에 울산시가 용역을 의뢰한 결과치를 다시 한 번 되풀이 하는 훼손주장이 불쾌할 수도 있다. 문제는 수위조절을 통한 보존을 이야기 해놓고 다시 장마철을 맞을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내년에는 달라지겠지 기대하는 세월이 벌써 수년째 이어지다보니 아슬하게 버티고 있는 고래들의 표피가 덜렁거린다는 이야기다. 자문위원들이 하고 싶은 이야기는 수위조절을 왜 빨리 하지 않느냐가 아니라 덜렁거리는 고래의 표피가 올 여름 장마에 느닷없이 벗겨질지 모른다는 걱정이 핵심이다.

 울산은 그렇다. 앤드류스의 흉상 정도는 뚝딱거리며 그럴듯하게 보여줄 수 있는 도시이지만 7,000년 세월을 버티고 있는 암각화의 고래 따위는 너덜거리든 말든 튼튼하고 견고한 접착제를 주문해 뒀으니 기다려야 한다는 말만 하면 그만이다. 그러니 축제는 요란하되 내용이 빈 깡통이다. 환타지 소설의 아류 따위를 무대에 올리고 거푸집을 지어 선사체험을 한다고 야단이다. 그럴듯한 모양의 나무고래에 분칠을 하고 체험객을 맞는다는 발상은 애교로 봐준다 해도 고래바다 한바퀴 돌고나면 한입 가득 고래고기로 포만감을 느껴보라는 시식행사는 가관이다.

 반구대암각화에 비하면 유치하기 짝이없는 노르웨이 알타 암각화는 6,000년 전 청동기시대 바이킹 이전에 살았던 사미족이 새긴 것으로 알려져 있다. 노르웨이 사람들은 자신들의 정부가 공을 들여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한 이 암각화를 근거로 인류의 포경역사가 자신들의 선조에 의해 시작됐다 떠벌이고 있다. 하지만 고래와 인류가 가장 먼저 교감하고 그 교감의 증거를 남긴 것이 울산이라는 사실을 세계 석학들은 알고 있다.

 고래를 연구하고 고래문화를 인류문화의 여명기로 보는 세계의 석학들은 반구대암각화에 주목하고 있지만 우리는 번쩍이는 조명과 분칠한 조형물에 주목한다. 고래축제가 흉상이나 쳐다보고 빈고래집에서 혓바닥이나 날름거리는 따위로 흘러간다면 아마도 이번 여름 큰 물 한번 지면 암각화 암면에 겨우 붙어 덜렁거리는 고래표피는 흔적도 없이 사라질지 모른다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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