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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C 중엽 울산지역 고지도.

지도[(地圖), map]는 시대상을 속속들이 보여주는 산물이다. 지도의 정확성은 국가의 경제력과 문화 수준을 나타내는 지표라고 할 수 있다. 한 나라의 인적, 물적 자원이 풍부하다면 지도의 제작 수준 또한 당연히 높아질 수 밖에 없다. 그러므로 지도는 국력의 총화인 셈이다.

 지도는 사람이 펼치는 모든 영역에 걸쳐 영향을 미친다. 기본이라 할 수 있는 토지에 대한 각종 조사연구와 사업계획은 물론 행정과 교육, 군사, 여행, 레크리에이션 등 사람의 모든 생활에 필수 자료가 되고 있다. 지도를 펼치는 것만으로도 풍성한 상상의 나래를 활짝 펼칠 수 있게 한다. 지도의 무한한 힘을 알기에 충분하다.

 울산의 옛 모습을 알려 주는 고지도(古地圖)로는 18종류가 확인되고 있다. 모두가 조선 때에 만들어진 지도이다. 가장 이른 시기의 것은 조선 성종 2년(1471년)에 신숙주(申叔舟)가 지은 해동제국기(海東諸國記)에 붙여진 '울산 염포지도'. 염포지도는 해동제국기가 나온 3년 뒤 성종 5년(1474년) 3월에 만들어져 첨부됐다. 서울대학교 규장각에 소장돼 있다.

 다음으로는 숙종 4년(1678년)에 허목과 김석주가 만든 나라 안의 목장을 그린 '목장지도(牧場地圖)'에 울산의 방어진 목장지도가 들어 있다. 이 지도는 현종 4년(1663년)에 첫 간행된 목장지도를 보완한 것이다. 숙종(재위 1674-1720년)에서 영조(재위 1724-1776년) 사이에 만들어진 전국 군현(郡縣) 지도인 '여지도(與地圖)'에는 울산군과 언양현의 지도가 실려 있다.

 영조 33년(1757년)부터 영조 41년(1765년)까지 전국 295개 고을에서 펴낸 읍지(邑誌)와 17개 영지(營誌), 1개 진지(鎭誌)를 모아 '여지도서(與地圖書)'를 만들었다. 이 책에 울산의 경상도좌병영지(慶尙道左兵營誌)와 언양읍지(彦陽邑誌)가 실려 있는데, 지도를 포함하고 있다. 영조 때에 만들어진 '해동지도(海東地圖)'에도 울산부와 언양현의 지도가 실려 있다.

 영조 21년(1745년)에서 영조 43년(1767년) 사이에 만들어진 경상도 71개 고을의 지도와 영남총도로 이뤄진 '영남지도(嶺南地圖)'에 울산과 언양지도가 있다. 역시 영조 때에 만들어진 또 다른 '영남지도'에도 울산과 언양지도가 들어 있다. 울산지도의 크기는 107·84㎝, 언양지도는 108·89㎝. 순조 32년(1832년) 경에 경상도 71개 읍의 읍지(邑誌)를 모아 만든 '경상도읍지'에 울산과 언양지도가 있다. 경제분야도 반영돼 있어 사료가치가 높다.

 순조 32년(1832년)에서 고종 원년(1864년) 사이에 만들어진 '학성각면산천도로총도(鶴城各面山川道路總圖)'는 울산의 산천과 도로 등을 표시한 지도이다. 지은이는 알 수 없으며, 크기는 123·70㎝. 온북면과 온남면, 외현면, 내현면이라는 지명이 나타나 있고, 구강서원도 표시돼 있다. 순조 34년(1834년)에 김정호(金正浩)가 만든 '청구도(靑丘圖)'에도 울산과 언양지도가 실려 있고, 청구도의 이본(異本)인 '청구요람(靑丘要覽)'에도 역시 울산과 언양지도가 있다.

 고종 8년(1871년)에 전국적인 읍지편찬사업에 따라 경상도의 각 읍지와 역지(驛誌), 목장지(牧場誌), 진지(鎭誌)를 한데 모아 펴낸 경상도의 도지 '영남읍지(嶺南邑誌)'에도 울산과 언양지도가 있다. 고종 때 각 읍의 지도를 복사해서 만든 '경상도지도'에 울산목장지도와 언양현지도, 울산서생진지도가 실려 있다. 고종 36년(1899년)의 전국의 읍지 상송령(上送令)에 따라 울산군과 언양군이 만든 '읍지'에도 울산과 언양지도가 들어 있다.

 대구를 비롯한 경상도의 71개 읍과 전주를 비롯한 전라도의 52개 읍의 지도를 수록한 '각읍지도(各邑地圖)'에도 울산과 언양지도가 있다. 19세기에 만들어진 '영좌병영지도(嶺左兵營地圖)'는 울산에 있던 경상도좌병영을 그린 지도이다. 조선 후기의 병영의 규모와 구조 등을 알 수 있다. 한 개의 군을 지도 한 장에 그려 묶은 '조선지도(朝鮮地圖)'의 경상도 편에도 울산과 언양지도가 들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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