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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 북유럽이 핏빛으로 물들었다. 이른바 순혈주의를 내세운 희대의 살인마가 삽시간에 폭탄과 소총으로 수많은 어린 목숨을 앗아갔다. 사건 직후 세간의 화제는 단연 살인마에게 쏠렸지만 그보다 우려할 일은 지구촌 곳곳에서 나타나는 근본주의와 반 다문화운동의 발현이라 할 수 있다. 외국인 100만 시대를 맞은 우리 사회도 예외는 아니다. 이미 우리 사회 곳곳에서는 '코리안 드림'에 젖어 이 땅을 밟은 외국인 노동자들을 멸시하는 징후가 나타나고 있고 테러 수준의 범죄도 빈번히 나타나는 게 현실이다.
 이미 20여 년 전 미국의 하버드대 석학으로 손꼽히던 사무엘 헌팅턴은 '문명충돌론'을 제기했다. 그는 이데올로기의 충돌에 따른 세계의 반목과 갈등은 이미 그 시효가 끝났고 앞으로의 세계는 문명간의 충돌이 새로운 전장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가 자신의 이론을 증명하기 위해 제기한 예가 바로 이슬람 근본주의였다. 그의 이론은 그대로 적중하는 듯 했다. 불과 10년 뒤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은 상상을 초월하는 여객기 테러로 미국은 물론 지구촌을 패닉상태로 만들었다. 헌팅턴의 말대로 이슬람 근본주의의 발흥과 세 확장은 곧바로 세계의 혼란으로 이어지는 양상이었다.

 물론 헌팅턴의 이런 주장에 대해 반론도 즉각 제기됐다. 세계적인 미래학자 대니얼 벨은 헌팅턴의 생각은 문화를 정치로 착각한 데서 온 오류라고 비판했다. 그는 21세기가 경제적으로 아시아·태평양 시대가 될 것이란 점은 확실하지만, 교통 통신의 발달 등으로 인한 문화의 범세계화 경향 때문에 어느 한 나라-지역의 문화가 지배적인 문화가 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보았다.
 여러 이야기가 혼재하는 상황에서 이번에는 평화의 땅, 북유럽의 복지국가 노르웨이가 테러의 타깃이 됐다. 32살의 애송이 순혈주의자 브레이비크는 뜬금없이 십자군 시대의 '템플기사단' 복장을 하고 중무장한 채 자국인들을 향해 총질을 해댔다. 뭉크의 나라 노르웨이, 세계 2위의 부자 나라, 최고 수준의 복지국가인 '지상낙원'이 순식간에 '절규'의 도가니로 변해 버렸다.

 문제는 브레이비크의 반 사회적 범죄가 아니라 그 뿌리에서 움트고 있는 순혈주의, 그리고 근본주의의 확대에 있다. 우리 역시 예외가 아니다. 그동안 온라인을 중심으로 개별적 차원에서 움직이던 국내 반다문화주의 움직임은 최근 경기 악화 및 실업 문제가 심각해지면서 점점 규모가 커지고 조직화하는 양상이다. 초기 개별적으로 악플이나 선동성 글을 올리던 수준에서 최근에는 다문화를 반대하는 집단행동 및 집회 개최 등 하나의 세력으로 발전해가고 있다. 고용노동부 홈페이지에는 '이슬람 국가를 노동 송출 국가에서 제외시켜라'는 글이 도배된 상태고 다문화를 옹호하는 방송사 앞에서는 어김없이 집단 시위가 벌어지고 있다.
 아이러니한 일이지만 이번에 살인마로 돌변한 브레이비크는 이 같은 우리의 현실을 모른 채 '한국 찬양' 일색으로 자신의 근본주의 신념을 정당화했다. '2083년 유럽의 독립선언'이란 제목의 1,467쪽 분량의 문서에서 브레이비크는 한국의 사회 경제 교육 등 여러 분야를 시종일관 언급한 뒤 "한국과 일본은 우리(노르웨이 등 북유럽)가 본받아야 하는 모델"이라는 결론을 내리고 있다. 브레이비크는 "한국 등 아시아 대학은 의욕 있는 엔지니어와 과학자를 다수 배출하고 있다. 반면 서구 대학들은 서구의 사악함이나 가르치는 히피 공장으로 전락했다"며 "한국 등 동양 어린이를 이기는 것이 우리의 국가적 목표"라고 썼다. 또 "한국과 일본은 이민자의 유입 없이 잘 조직된 교육 체계만으로도 충분한 직업인을 배출했고 경제 발전을 이뤘다"며 유럽의 이민자 수용정책을 비판했다.

 그의 섬뜩한 신념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해 주고 있다. 템플기사단의 십자문양을 걸친 그의 근본주의가 비록 유럽과 이슬람의 뿌리 깊은 증오의 유전인자에서 기인했다 하더라도 우리 역시 다문화와 근본주의가 혼재한 오늘의 시대에서 자유롭지 못한 상황이다. 문제는 이민자들이 한 사회의 구성원으로 뿌리내리기까지의 과정이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부침이 있기 마련이지만 적어도 '희대의 괴물'이 사회를 향해 총질하는 극단적 상황은 막아야 한다. 그 해법은 역시 사회나 국가가 가진 포용력, 즉 유연성에 있다. 순혈주의나 근본주의나 극우나 극좌의 극단적 사고는 사회를 딱딱하게 만들어 결국 어느 지점에서 부러져 파열음을 내기 마련이라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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