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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등대를 감상하고 있는 유재원 씨 가족. 경기도 안산에서 내려온 유 씨 가족은 송림과 대왕암이 어우러진 울기등대 일대 경치가 굉장히 좋다고 말했다. 유 씨 가족은 이번 등대체험 행사를 통해 울산과 특별한 인연을 맺었다.
#들어가기
"15일 0시에 불을 밝혀라"
 1950년 9월 14일. 첩보활동을 펼쳐오던 켈로(KLO:미 극동군사령부 주한연락처) 부대원들은 무전기를 통해 작전명령을 받는다. 북한군이 낙동강까지 진격한 상황. 국면의 전환이 필요했다.
 인천항의 길목인 팔미도는 북한군이 점령하고 있었다. 부대원들은 팔미도를 탈환하고 등대에 불을 밝혔다.
 9월 15일 새벽, 팔미도 등대의 안내를 받으며 261척의 연합국 함정이 인천항으로 들어왔다. 인천상륙작전이다.
 1903년 6월 1일 세워진 우리나라 최초의 등대, 팔미도 등대. 불을 밝혀야 했던 이유는 단 하나, 일본제국의 편의를 위해서였다. 보다 안전하게 입항하기 위해서는, 보다 원활하게 수탈하기 위해서는 불빛이 필요했다. 그렇게 우리나라 등대의 역사는 시작됐다.
 울기등대도 이즈음 빛을 발했다. 1906년 3월 24일이었다. 그리고 시간은 흘렀다.
 
#울산항만청 1박 2일 등대체험 운영
"해면이 평활하나 작은 파도가 일면, 물결의 높이가 1m입니다. 파도가 약간 치고 흰 거품이 이는 물결이 살짝살짝 보이면 파고가 1.5m구요" 울기등대 주임 김진형(36) 씨가 연신 설명을 한다. 기상관측을 하는 것으로 등대체험 일정이 시작된 터였다.
 울산지방해양항만청에서 지난 2000년부터 여름철과 겨울철에 실시해온 1박 2일간의 등대체험 행사는 인기가 높다. 올해도 60팀 모집에 456팀이 신청을 했다. 울기등대는 평균 5.9대 1(30팀 선정에 179팀 신청), 간절곶등대는 9.2대 1(30팀 선정에 277팀 신청)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오늘(29일)부터 이틀에 걸쳐 등대체험을 하기로 선정된 유재원(경기도 안산시 고잔동ㆍ40)씨 가족이 김진형 씨의 얘기에 귀를 기울인다. 소휘(11), 도휘(6)의 눈빛이 초롱초롱하다.
 김 씨의 설명이 이어진다. "기상관측을 하면 눈앞에 있는 바다를 보고 하는 게 아닙니다. 먼 바다를 보고 합니다. 그래서 제가 바다를 쳐다보겠습니다. 같이 가보시죠" 모두들 바다가 보이는 창 앞에 섰다. "흰 거품이 이는 물결이 어쩌다가 보이실 겁니다. 앞 바다는 잔잔한데 말이죠. 또 앞 바다랑 저기 먼 바다의 색이 다르잖아요. 이것은 저기 먼 바다에 파도가 조금 친다는 겁니다. 이런 것들을 종합했을 때 파고가 1.5m라고 봐야 합니다. 그래서 제가 3으로 기록하겠습니다. 3이면 1.5m"


 전문해설표를 참조해서 기상을 관측하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말 그대로 '아날로그'다. 관찰자의 눈에 상당량 의존하는 듯하다. '디지털로 통하는 세상에 아직도 아날로그냐'고 생각할 수 있지만, 이곳은 여전히 아날로그로 통하는 곳이다. '등대'이지 않은가.
 등대의 불빛에 의지해 항해를 하는 시대는 지났다. 최첨단 위성항법장치는 정확하게 항로를 찾아준다. 허나, 등대에서 내뿜는 불빛은 안도감을 준다. 함께 있다는, 그리고 길을 잃지 않도록 내 곁을 지켜준다는 느낌. "최첨단 위성항법장치를 가지고 있어도 등대에서 불을 비추지 않으면 선원들이 전화를 해옵니다. 왜 불을 켜지 않느냐고 말이죠"라고 말하는 김진형 주임. 그의 말이 맞다.
 다음 일정은 4D영상 관람. 안경을 쓰고 좌석에 앉으니 이리저리 흔들리기도 하고 물이 뿜어져 나오기도 한다.


 항로표지. 영상에 등장하는 녀석들이 이에 대해 체계적으로 설명을 한다. 선박이 안전하게 운항할 수 있도록 만든 시설, 등대도 그중 하나다.
 눈에 띄는 점은 시설을 아무렇게나 설치할 수 없다는 것이다. 국제기준에 맞게 설치하고 관리해야 한다. 파란불이 켜져 있으면 움직이고 빨간불이 켜지면 멈춰야 하는, 서로간의 '약속'이다.
 울기등대는 10초에 한번 섬백광의 빛을 내뿜는다. 간절곶등대는 15초에 한번 섬백광의 빛을 발한다. 10초에 한 번씩 빛이 깜빡이는 것을 본다면 '지금 난 울산광역시 동구 일산 바다 어딘가를 지나고 있다'고 생각하면 된다. 등대는 변덕을 부리지 않고 부지런히 빛을 발한다.
 
#체험 후 즐기는 동구 앞바다
2시간 남짓 김 씨와 유재원 씨 가족을 따라 동력실, 무신호기 등을 구경하니 어느덧 자유시간이다. 내일 퇴실 할 때까지 자유로이 시간을 보내면 되는 것이다. 숙소에 머물러 휴식을 취해도 좋지만 유 씨 가족은 대왕암 구경을 택했다. "여름휴가를 보내는 것과 관련해 바닷가 쪽이 좋을 거 같아서 인터넷 검색을 하고 있었어요. 우연히 울산지방해양항만청에서 등대체험을 한다는 광고를 봤죠. 신청자가 많을 거라고 생각하면서도 신청을 했는데 운 좋게 선정되었어요. 아이들에게 좋은 체험을 시켜주자는 취지에서 이렇게 내려왔습니다" 가족만을 위한 특별한 시간이 될 거라 생각하고 유 씨는 휴가 일정에 '울산 구경'을 포함했다.


 유 씨는 울산과 맺어질만한 인연이 없었다. 이모님이 울산에 사신다고 하지만 애경사가 있을 때 한 번씩 내려와 볼일만 보고 바삐 올라갈 뿐. 그러던 중 이번 기회에 가족 모두가 편한 마음으로 울산 나들이를 온 것이다. "TV에서 자동차를 수출하는 모습을 많이 봤었어요. 그런데 이곳에 오면서 선박에 실리기 전 대기하고 있는 자동차를 실제로 본 거죠. '아! 자동차를 저렇게 배에 실어 수출하는 구나' 하고 생각하며 아이들과 함께 지켜봤습니다. 설명도 해주면서 말이죠"


▲ 대왕암공원 송림.
 대왕암을 구경하며 중간중간 사진을 찍는 유 씨 가족. 의젓한 모습의 형과는 달리 도휘는 장난기 넘치는 모습이다. 제 세상인양 구는 모습이 귀여울 따름이다.
 "우와! 여기 고양이가 살고 있어요" 도휘의 눈에 고양이가 들어온 모양이다. 대왕암에 터를 잡은 듯 보이는 고양이들. 어미와 아비, 그리고 새끼들까지 합해서 대 여섯 마리는 되는 듯하다.
 사람들을 보고도 'A급' 경계를 펴지 않는 녀석들. 오히려 느긋하기까지 하다. 그래서인지 이들 고양이 가족은 대왕암을 들리는 이들의 관심을 독차지하고 있다. 사람들을 피할 수 없는 상황이리라. 주위가 온통 암석이니 자칫 잘못하면 바다에 빠지기 때문이리라. 아니다! 대왕암을 지키는 주인일지도 모른다.
 
#타지역 관광객 위한 프로그램 내실화
대왕암을 둘러보니 어느덧 저녁이다. 저녁을 먹고 가족간 오붓한 시간을 가진다고는 하나 필자가 보기에 무언가 아쉬운 점이 있다. 10년이 넘도록 진행된 행사치고는, 수많은 사람들이 신청한 행사치고는 숙소를 제공한다는 점 이외에 별다른 혜택이 없어 보였다. 이뿐만이 아니다. 저 멀리 경기도 안산에서 '울산 구경' 온 유재원 씨 가족의 손에 울산을 안내하는 책자 하나 없었다. 울산을 찾아온 손님에게 반구대암각화를 소개할 수 있었을 텐데. 주전에서 강동으로 이어지는 해안가를 소개할 수도 있었을 텐데. 관계기관인 항만청과 지자체인 시청 간 소통만 이뤄졌더라면 해결될 문제인 것을. 1박 2일의 등대체험 일정을 2박 3일, 3박 4일간의 울산 투어로 연결시키지 못함이 아쉽기만 하다.


 유 씨도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등대 업무, 해양 행정 등을 이용자들이 접하게 함으로써 친밀감을 더 높이기 위해 관계기관이 고심 끝에 시행한 행사인 거 같은데 기왕 하는 거라면 더욱 내실화를 기했으면 좋겠다고 그는 얘기한다. "울산항과 관련한 다양한 시청각 자료를 마련해서 효율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장소가 이곳 등대인 거 같아요. 관계기관뿐만 아니라 시에서도 관심을 갖고 적극적으로 지원하거나 협조를 해야 한다고 봅니다. 저 멀리서 어려운 시간을 내어 온 사람들이 좋은 경험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하는 거죠"
 그는 송림과 대왕암이 어우러진 울기등대 일대 경치가 굉장히 좋다고 말했다. "제가 여러 군데를 다녀봤는데 여기가 참 좋아요. 이렇게 스토리텔링 할 수 있는 시설과 함께 모여 있는 데가 없어요. 이렇게 좋은 장이 마련되어 있는데 이 부분을 활용 안 한다는 것은 아까워요" 사람들에 의해 입소문이 나서 더 많은 이들이 방문했으면 좋겠다고 그는 바랐다.
 
#나가기
1903년 처음 세워진 등대. 이제는 등대체험 행사를 통해 등대지기의 생활을 들여다볼 수 있게 됐다. 각종 공연과 전시회가 열리는 문화공간으로도 탈바꿈했다. 야외결혼식장으로까지 활용된다고 하니 100여년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그 역할 또한 많이 변했다.
 각종 첨단장치가 선박의 운항을 책임진다고 하지만 등대가 선사하는 안도감을 대체할 수는 없다. 디지털시대 아날로그를 고수하는 등대. 어둠 속 저 멀리서 비춰지는 불빛은 소중하기만 하다.
 등대는 이미지가 아니다. 시간을 내어 한번 찾아가보자. 지금 이 시각 전국 937개 등대가 뱃길을 환히 밝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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