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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은정씨가 노래를 부르며 분위기를 북돋우고 있다.
#들어가기
"고래 잡으러 간다고?"
 초등학교(당시 국민학교) 저학년 시절이었으니까 90년대 초였다. 어른들은 그즈음 자주 고래를 잡아야지 위생상 좋다고 말했다. 남자라면 반드시 해야 한다고. 나이를 먹은 지금에서야 그때 그 말의 묘미를 이해한다. 포경(包莖)수술은 포경(捕鯨, 고래잡이)과 발음이 같다.
 헌데, 이 표현을 예전만큼 사용하지 않는다는 생각이다. 바다를 유영하는 고래가 사람들의 관심사에서 점점 멀어졌기 때문은 아닐까….
 과거 고래잡이 중심지였던 장생포가 그렇다. 굴뚝에서 나오는 연기가 떠오르는 곳, 장생포. 내게 그곳은 회색빛으로 가득한 장소였다.
 
#흥겨운 노래와 함께 고래 찾아 삼만리
"즐거우세요?" "네!"
 고래바다여행선에 올라탄 지 20여분. 선상은 이미 분위기가 고조됐다. 지역가수 송은정(29) 씨가 이번에 꺼내든 곡은 '여행을 떠나요'. "메아리 소리가 들려오는 계곡 속에 흐르는 물 찾아 그곳으로 여행을 떠나요. 메아리 소리가 들려오는 계곡 속에 흐르는 물 찾아 그곳으로 여행을 떠나요. 고래 찾아 여행을 떠나요!"


 햇살은 따스하고 바람은 시원하다. 저기 박수를 치는 아주머니는 노래가 구성진지 온 몸을 연신 흔드신다. 그를 따라서 박수를 치는데 남녀노소 구별이 없다.
 가족, 연인으로 가득한 여행선은 그의 노래대로 고래를 찾기 위해(정확하게 말하면 만나기 위해) 지금 항해 중이다. 물살은 계속해서 갈라진다.
 배를 타기 위해 장생포에 와서 사람과 사람이 만나 연출하는 풍경을 보자니, 이 지역도 사람 냄새 나는 곳이다 싶다. 마냥 회색빛인줄 알았는데….


 장생포의 쇠락은 고래잡이 금지조치와 그 맥을 같이 한다. 1899년 조선과 러시아 정부 간 협약 체결로 이 지역에 고래해체장이 설치되면서 시작된 고래잡이 역사. 1977년과 78년에는 해마다 1,000여 마리의 밍크고래를 포획할 정도로 황금어장이었단다.
 

   
▲ 고래바다여행선을 찾은 부녀가 승선하기 전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장생포 토박이에 듣는 고래 이야기
서울에서 온 허성진(12) 학생이 연신 망원경을 들여다본다. 고모가 사는 부산에 누나와 함께 내려왔다가 이곳에 들렀단다. 할머니, 고모, 누나와 같이 여행선을 타러 왔다는 성진이. 배를 타고 가다보면 고래가 뛰어오를 거 같단다.
 성진이는 벌써 마음에 맞는 녀석을 찾았다. 바로 유진혁 친구. 남부초등학교를 다닌다는 진혁이는 아빠, 엄마랑 함께 왔단다. 나이를 물어보니 10살. 2살이라는 나이 차가 상관없다는 듯 두 친구는 함께 배 위를 이리저리 돌아다닌다. 배 위에서 만났다는 두 친구에게 벌써 친해진 거냐고 물으니 둘은 동시에 "예!" 하고 소리친다.
 내부에는 사람이 거의 없다. 피곤해서(아니, 멀미를 하기 때문에) 눈을 붙인 사람들 3~4명만 있을 뿐이다. 흥에 취한 사람들이 가득한 상갑판에는 활기가 가득하다. 아마도 고래를 만날 수 있다는 기대감 때문이리라.


 고래는 사람이다. "고래가 10달 만에 새끼 낳는 것도 그렇고 사람 한가지라카이. 똑 사람 한가지라. 특기할만한 점은 우리도 애들 댕기고 다니는 것처럼 저것들도 새끼하고 같이 당긴다 아이가. 그라믄 새끼부터 잡아놓으면 애비 애미 고래 잡는 거는 누워서 떡먹기라" 정명규(74) 씨의 얘기는 귀를 솔깃하게 했다. "왜 그렇나 하믄 새끼를 살릴라꼬. 총에 맞았는데 살았는가 죽었는가는 모르제. 그라믄 새끼 보호할라고 계속 그 주위를 돌거든. 그라니 사람 한가지라"


 정 씨는 울산 토박이다. 아니, 장생포 토박이다. 그래서 고래에 대해 많이 안다. 경험이다.
 어렸을 적 정명규 씨는 공부하기가 힘들었다. 그 시절에는 공부하기가 어려웠단다. 20살 때부터 고기잡이를 했다는 정 씨. 그는 25년간 배를 탔다. 폐기물 소각로에서도 15년 정도 일을 했단다. 이후 이런 일 저런 일 하고, 집에서 쉬다가 이 여행선에 왔다고. 젊었을 적 배를 탄 경험 때문에 자신을 불렀을 것이라고 정 씨는 말한다.


 배가 오면 줄로 묶고, 페인트가 벗겨지면 도색하는 일 등을 하는 정 씨가 고래바다여행선을 탄 지도 3년. 지난해에는 고래를 접할 기회가 많았단다. 비율로 따지면 30%인데 좋은 편이었다고. 2,000~3,000마리의 고래가 이동하는 모습도 봤다고 그는 얘기한다. 올해는 15%도 안 된다고 말하는 정 씨. "고래가 신경이 되게 예민해. 놀다가도 저 멀리서 배 소리 나면 바다 절로 가버리거든. 지금은 한국 배만 아니라 온갖 배가 많다 아이가. 그니까 저 멀리 바다로 나가는기라. 시끄러우니까"
 
#선상에서 펼쳐지는 노래자랑
3시간이나 배를 타야 한다는 게 곤혹스럽다. 더 이상 속에서 나올 것도 없다. 배멀미, 이거 장난이 아니다. 눈을 붙였다 떴다 하기를 몇 번, 구토하기를 몇 번이다. 육지에 올라서고 싶다는 생각뿐이다.
 송은정 씨는 다시금 공연을 시작했다. 만선의 꿈을 이루지 못한 채 돌아오는 여행선. 분위기가 가라앉을 수도 있는 상황에서 은정 씨의 역할이 크다. 선상에서 진행되는 노래자랑. 송 씨는 어느새 '주말 나들이'로 분위기를 바꿔버린다. 선상은 또다시 활기가 가득하다.


 이곳 울산에서 가수와 배우를 겸해 활동하고 있는 송 씨. 구청에서 정해진 날짜에 오라고 하면 배에 올랐다는 그녀는 1년 정도 활동을 했다. 노래를 부르며 관객들과 함께 즐기는 게 좋다고 말하는 은정씨.
 비율로 따지자면 50%다. 즐기려는 그녀의 마음을 뺀 나머지는 관객의 호응이다. 관객의 호응이 적을 때는 노래하는 게 힘이 든단다. 여기는 호응이 좋은 편이라고. "배를 타는 게 매일 있을 수 있는 일은 아니잖아요. 고래바다여행선을 탄다고 해서 항상 고래를 볼 수 있는 것도 아니고요. 그래서 관람객들에게 여행 떠난다는 기분을 느끼게끔, 즐기러 간다는 생각을 하게끔 만들려 합니다"
 

   
▲ 서울에서 온 조영주씨 가족이 고래 조형물 포토존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고래박물관·고래생태체험관 구경도
저기 승진이가 보인다. 망원경을 통해 저 멀리 있는 바다를 보며 좋아하던 친구. 승진이도 멀미한다고 정신이 없었단다. 고래는 못 봤지만 배를 타서 좋았단다.
 선착장 옆에는 고래박물관과 고래생태체험관이 있다. 주말이어서 그런지 가족, 연인이 많아 보인다. 서울에서 왔다는 조영주(48) 씨 가족도 그중 하나다. 여행선을 타고 난 후 생태체험관으로 가는 길이었다는 조 씨. 휴가 중이라는 그는 여기 울산에서부터 여행을 시작한단다. "울산에 온 목적은 고래를 보는 거였어요. 고래가 많이 출몰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거든요. 고래를 좋아하는 아이들에게 보여주고자 이렇게 왔습니다"


 고래를 보지 못한 거는 아쉽지만 다음을 기약한다는 조 씨. 그는 들인 비용을 생각하면 여행선 승선이 상당히 괜찮았다고 말한다. "여행선 운항을 일반 회사에서 하는 게 아니라 남구청에서 하잖아요? 그게 상당히 신선했습니다. 제주도에 가서 잠수함도 타고 해봤지만 아무래도 민간에서 하는 것보다는 비용이 저렴하거든요. 3시간 동안 배를 타는데 한 사람당 2만원이니까요. 뿐만 아니라 가수를 섭외해서 3시간이라는 시간을 지루하지 않게 만들려 했는데, 들인 비용에 비하면 상당히 괜찮았다고 생각합니다. 고래까지 봤다면 갑절의 값어치를 했을 겁니다"
 아직은 전국적으로 고래바다여행선에 대한 홍보가 적은 거 같다고 말하는 조 씨. 그는 3시간 동안 배만 타는 게 아니라 가수와 함께 시간을 보낸다는 것도 알려졌으면 좋겠다고 얘기한다.
 
#나가기
포경 금지조치와 함께 쇠락한 장생포는 회색빛으로 변해버린 곳이었다. 고래와 함께 이곳 장생포도 사람들의 인식에서 멀어져만 갔다. 그러던 것이 최근 몇 년 사이에 푸른빛이 들기 시작했다. 우리네 인식에 들어온 것이다. 고래 덕분에 이곳 장생포는, 사람 사는 냄새가 나기 시작한다.
 영화를 꿈꾸는 장생포. 그때처럼 이번에도 고래를 내세웠다. 하지만 그 방법이 변했다. 이번에는 녀석과의 공존이다.
 고래박물관을 통해서도 좋다. 고래생태체험관을 통해서도 좋다. 그게 아니면 고래바다여행선이다. 어떤 방법이 되었든지 간에 고래는, 내 머릿속을 자유로이 유영한다. 이곳 장생포에 사람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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