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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에 대한 일본의 인식은 왜곡 수준을 넘어 광기마저 흐르고 있다. 민주당의 유력한 차기 총리 후보인 노다 요시히코는 일본의 패전일인 지난 15일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한 뒤 그곳에 합사된 A급 전범은 전쟁 범죄자가 아니다고 밝혔다. 대일본제국의 영광을 위해 목숨을 바친 조상들을 범죄자라 이야기하는 쪽을 용서하지 않겠다는 분위기다. 같은 날 대한민국 대통령은 "일본은 미래세대에게 올바른 역사교육을 해야 할 책임이 있다"고 일침을 가했다.
 일본의 정치지도자들이 잊을 만하면 들고 나오는 역사왜곡 망언 시리즈는 이제 책 한 권을 넘어 전집을 만들어도 될 만하다. 임나일본부설은 고전이 됐고 식민지 시대를 미화하는 발언 정도는 연설에 들어가는 말 정도로 일반화된 느낌이다. 문제는 이들이 가진 역사에 대한 의식이다. 물론 정치인들이야 어느 정도 정치적 계산을 깔고 입을 열기 마련이니 다분히 의도한 발언이라 할 수 있지만 상당수는 잘못된 역사인식이 삐뚤어진 발언으로 튀어나오는 게 현실이다.

 일본이 독도 문제를 건드리는 수위를 높일수록 우리의 불쾌지수도 올라간다. 미친개가 짖는다는 식의 냉소가 미친개의 광기만 부추겼다는 지적이 유효한 이유도 이 때문이다. 미친개를 다루는 방법은 몽둥이찜질이 제격이지만 시정잡배의 멱살잡이가 아니다 보니 몽둥이를 쓸 수도 없다. "왜놈의 목줄을 따버려라"든지 "해병대를 주둔하고 첨단무기를 배치하라"는 식의 대응은 화끈하다. 하지만 전쟁 직전이거나 전시에 준하는 적대적 관계가 아니라면 국경에 정예군을 배치하는 일은 싸움판을 키우는 꼴이 된다. 그 정도쯤은 알고 있기에 일본의 입이 촐싹거린다. 알고 간을 보는 일본이기에 두고보기에도 딱하고 그냥두기에도 딱한 일이다.
 문제는 우리의 역사에 대한 태도에 있다. 역사에 대한 우리의 인식수준은 일본을 욕하고 있을 장면이 아니다. 학교 교육에서 국사는 귀찮은 과목이 됐고, 대학입시에 제외해도 무방한 과목으로 전락한 이후 고등교육에서도 국사는 열외됐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자라나는 세대에게 우리의 역사는 외기 어려운 암기과목으로 자리했다. 한 방송사가 직접 학교를 찾아 학생들에게 질문을 하니 안중근 의사는 안과 의사가 아니냐는 답이 나오고 6·25가 미국이 일으킨 북침전쟁 쯤으로 알고 있는 어처구니없는 일까지 나타나고 있다.

 이 정도의 일을 다음세대의 역사에 대한 무관심으로 돌리기엔 기성세대의 책임이 너무나 크다. 비근한 예로 올해 새로 선보인 고교 '한국사' 검정교과서(6종)가 오류투성이인 사실 하나로도 기성세대의 잘못은 변명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 자기 나라의 역사를 기술하면서도 좌파와 우파가 나뉘는 것이 현실이고 이를 가르치는 교육 현장에서도 전교조니 뭐니 하며 색깔론이 불거지는 게 우리의 현실이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교과서라고 내놓은 책이 기본적인 사실관계와 다른 내용이 적지 않고, 표기법과 연도, 맞춤법이 틀린 것도 무더기로 드러났다. '기본'조차 제대로 안 된 역사교과서들이 검정을 통과하는 판에 남의 나라 교과서에 침을 뱉는 일은 딱하기까지 한 노릇이다.
 교과서 이야기가 나왔으니 한마디 하자면 국권을 빼앗긴 시절, 우리의 역사 교육을 교육의 첫째로 읽은 우당 이회영 선생의 한마디가 떠오른다. 우당은 일본 제국주의자들의 강제병합이 있자 곧바로 가산을 정리해 만주로 떠났다. 그가 만주에 세운 신흥강습소는 뒤에 신흥중학교와 신흥무관학교로 변신하며 독립투사를 길러내는 사관학교가 됐다. 우당은 "근본이 없는 백성은 짐승과 같다"며 만주 땅 허허벌판에서 역사책을 썼다. 일제가 말살한 고대사를 복원하고 고조선과 고구려의 후예로서 만주에 독립의 전진기지를 세우는 일은 너무나 당연한 것임을 후학들에게 가르쳤다. 그 정신은 바로 "장백산 밑 비단 같은 만리낙원은/ 반만년래 피로 지킨 옛집이어늘/ 남의 자식 놀이터로 내어 맡기고…" 로 시작하는 신흥무관학교 교가에 그대로 전해지고 있다.

 일제는 침략과 동시에 우리 정신을 말살하는데 모든 역량을 동원했다. 그 앞잡이가 조선사편수회였고 고등교육을 받은 조선의 지식인들이 일제의 충실한 개가 됐다. 조선 문화를 동경하면서 문화적 콤플렉스에 시달려온 일제가 이를 극복하는 방법으로 조선의 역사와 문화를 부정하고 그 선전돌격대를 세상과 악수하기를 즐기는 지식인으로 채운 결과였다. 바로 그 결과물이 1937년 전35권 2만 4,000쪽에 이르는 조선사로 출간됐고 이른바 식민사관의 결정판은 오늘에까지 그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문제는 독도에 해병대를 주둔하거나 동해를 한국해로 바꾸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남아 있는 식민사관의 뿌리를 도려내야 한다는 사실이다. 우리의 역사가 말 그대로 '광복' 될 때 우리는 일본의 망언에 분노보다는 조소를 던질 수 있다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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