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덥고 입맛이 없을 때 사람들은 면을 찾습니다. 면요리는 긴 세월과 동서양을 넘나드는 문화를 자랑하는 만큼 각양각색의 맛과 모양으로 사람들의 입맛을 사로잡고 있지요. 그 중 자장면과 짬뽕은 우리에게 언제나 선택의 난제를 안겨주기도 합니다. 무더위는 한풀 꺾였지만 아직도 입맛은 없습니다. 냉면이나 밀면을 먹자니 이제는 으슬으슬 추울 것 같고. 얼큰하고 매콤한 짬뽕 한 그릇이 떠오릅니다. 짬뽕 생각을 하니 스트레스도 풀리고 입맛도 돋울 것 같은 생각에 침이 꼴깍 넘어갑니다. 찬란한 붉은색의 먹음직스러운 향연에 입안의 침샘이 자극되는 본능을 거부할 수 있는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겠지요. 불맛을 담은 뜨거운 웍(wok)속의 시간의 미학. 울산의 '짬뽕'을 찾아 떠나볼까요?

 해물·채소에 육수넣어 매콤하게 끓인 中요리
 고춧가루 대신 후추 넣는 음식…원래는'흰색'
 신생원 '삼선짬뽕' 담백한 맛 푸짐한 양 눈길
 해동 '볶음짬뽕' 얼큰하고 매운 맛 인기 만점

 

   
▲ 신생원의 '삼선짬뽕'

'짬뽕'. 가장 먼저 빨간 국물이 떠오르고 탱탱한 면발에 오징어, 새우 등 각종 해산물이 연달아 머리 속을 떠다닙니다. 짬뽕과 빨간색은 뗄레야 뗄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로 보이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모두 다 잘 알다시피 짬뽕은 해물 또는 고기와 다양한 채소를 기름에 볶아 닭이나 돼지뼈로 만든 육수를 넣고 매콤하게 끓인 다음 면을 말아먹는 중국요리 입니다. 중국말로는 차오마미안(chaomamian)이라고 부르죠. 우리가 부르는 짬뽕이라는 말은 일본의 챤폰(ちゃんぽん)에서 유래했습니다.

 이 요리는 원래 돼지고기, 표고버섯, 죽순, 파 등을 넣고 끓인 국물에 국수를 넣어 먹은 탕러우쓰(湯肉絲麵)에서 유래한 음식으로, 고춧가루를 넣지 않고 시원하게 끓여 후춧가루만 넣어 먹는 음식입니다. 그러니까 원래는 하얀색이라는 거죠.
 짬뽕의 유래는 둘로 나뉩니다. 하나는 19세기 말 일본 나가사키(長崎)의 푸젠성(福建省) 출신의 화교에 의해서 현지화한 음식이라는 '나가사키 유래설',

 또 다른 하나는 산둥성(山東省) 출신의 중국인들이 많이 거주하던 인천에서 한국인들의 식성에 맞도록 매운 맛을 더해 발전시켰다는 한국의 '인천 유래설' 입니다.
 일제 침략 이후 한·중·일이 동일한 정치·경제적 권역에 묶이면서 일본의 나가사키 지방과 한국의 제물포항은 같은 시기에 중국인들의 집단이주가 이루어졌습니다. 때문에 나가사키의 '챤폰(나가사키 짬뽕)'은 진한 육수 맛을 내 '라멘'과 비슷한 음식으로 일본에서 현지화 됐고, 우리나라에서는 한국식 변형을 거쳐 고춧가루나 고추기름을 써서 매콤한 맛을 낸 '짬뽕'으로 바뀌었습니다.
 
#햐얀 짬뽕 먹을 사람 '신생원'에 다 모여라
 

   
▲ 신생원 전경

원래 짬뽕은 하얗다는 걸 알고나니 하얀 짬뽕이 불현듯 먹고 싶어집니다. 그럴 때는 맛을 아는 사람만 찾는다는 남구 학성고등학교 맞은 편 '신생원'(☎273-5796)을 찾으면 됩니다.

    1997년부터 한 자리를 쭉 지켜온 이 곳에 오면 화교출신 강춘덕 할아버지가 정성을 담뿍 담아 만든 요리를 맛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메뉴판을 펼쳐봐도 '하얀짬뽕'이라는 글자를 찾을 수 없을 겁니다. 메뉴에 있는 '삼선짬뽕'(7,000원)이 바로 그 하얀짬뽕입니다.

 삼선짬뽕을 시키고 조금 기다리니 뽀얀 국물이 담긴 짬뽕이 나왔습니다. 해삼도 큼직큼직, 소라에 새우, 오징어, 양송이, 표고, 새송이…. 해산물이 그득그득합니다. 일단 눈으로 푸짐함을 느끼게 됩니다.
 하얗다고 짬뽕이라면 가져야 할 얼큰한 맛이 없을 거라 생각한다면 오산입니다. 파와 마른 고추를 기름에 볶아 얼큰함과 매콤함은 그대로, 고춧가루를 뺀 덕에 담백함과 깊은 맛을 챙겼습니다.
 뽀얀 짬뽕국물은 느끼하지 않으면서도 담백하고 깊은 맛 뒤에 혀끝에 칼칼한 매운 맛을 남겨줍니다. 면도 보들보들한 것이 후루룩 잘도 넘어갑니다.

 넌지시 비결을 물어봅니다. '정성'이라는 답이 돌아옵니다. 하지만 그 한 단어에는 모든 것이 담겨있습니다. 미리 마른 고추와 파를 기름에 볶아놓아야 하고, 치댈수록 맛있어지는 탓에 밀가루 반죽에도 많은 시간과 정성이 들어갑니다. 볶는 시간은 잠깐이라도 준비과정에는 엄청난 정성이 들어갑니다. 그때그때 볶아주는 덕에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짬뽕 속 채소는 이 곳에서는 만날 수 없습니다.

 곁들여 조금 내어주신 탕수육(1만7,000원)도 바삭하고 고소합니다. 소스도 케찹이 들어가지 않은 원형을 갖고 있습니다. 고소함 위에 새콤달콤함이 덧입혀지니 질리지도 않고 계속 입으로 들어갑니다. 탕수육도 이 집의 소문난 메뉴입니다. 냉동육이 아닌 생고기를 사용해 냄새도 안나고 담백합니다.
 신생원 만의 재미있는 사실을 하나 알려드릴까요? 바로 학생메뉴판이 따로 있다는 겁니다. 학생에게는 자장면, 짬뽕, 볶음밥을 1,500원 할인한 3,500원에 판매하고 음료수를 무료로 주기도 합니다. 내 자식 같단 생각에 어쨋든 맛있고 푸짐하고 싸게 주고 싶은 강 할아버지의 마음입니다.

#매콤한 맛 제대로 즐기려면 남구 달동 '해동'

 

 

   
▲ 해동의 '볶음짬뽕'

'짬뽕은 빨개야 돼'라고 생각한다면, 눈물, 콧물, 땀흘리게 만드는 매운맛을 통해 카타르시스를 느끼고 싶다면 남구 달동의 '해동'(☎267-8733)의 '볶음짬뽕(6,000원)'을 추천합니다.

 '볶음짬뽕'이 나오면 선명한 붉은 색이 먼저 시선을 잡아끕니다. '제대로 매운 맛을 느낄 수 있겠구나'하는 생각이 스치고 지나갑니다. 야트막한 그릇 위로 푸짐하게 담긴 면과 해물은 보기만 해도 배가 불러옵니다.

 

 

    오래 끓여 찌그러진 오징어 대신에 탱탱한 오징어, 새끼갑오징어,쭈꾸미, 가리비, 오동통한 새우와 굴이 그득그득합니다. 볶음짬뽕이라 국물이 없을 줄 알았더니 진한 국물이 자박하게 담겨있어 국물도 즐길 수 있습니다. 보통 짬뽕보다는 더 매콤·얼큰하면서도 맛있는 매운맛이 입안을 가득 채우고, 면발에도 국물이 잘 베여 감칠 맛이 납니다.
 푸짐한 양을 다 비우고도 부족하다고 느껴진다면 사장님께 부탁해서 조금 더 먹을 수 있습니다. 국물에 공짜로 주는 공기밥을 말아 먹어도 되지요. 곱빼기 가격도 받지 않습니다. 손님들이 맛있게 먹는 모습이 보기 좋아 그렇게 하기로 했다네요.

 

 

   
▲ 해동 전경

 하지만 이런 해동에서 한 가지 주의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자장면, 콩국수, 냉면 외에는 두 그릇 이상만 주문을 받는다는 겁니다. 한 그릇만 만들어서는 제 맛이 나지 않기 때문이라고 하네요.

 

 

    제맛을 내지 못할 바에야 안 팔고 만다는 사장님의 철칙이 담겨 있습니다. 이는 하루에 딱 150그릇만 한정판매하는 것과도 일맥상통합니다. 신선한 재료로 준비된 만큼만 그때그때 만들어 음식의 질을 떨어뜨리고 싶지 않기 때문이랍니다.

    한 가지 팁을 더 알려드리자면 코스요리를 먹고 싶을 땐 적어도 하루 전에 예약을 해야한다는 겁니다. 이 역시 같은 이유입니다.
 동구에 사시는 분들이라면 '해동'이라는 이름이 더 익숙할지도 모르겠네요. 실은 남구로 이사온 지 두 달이 채 되지 않았습니다. 동구에서는 점심시간이면 현대중공업 작업복을 입은 아저씨들이 줄줄이 앉아 먹어 흡사 구내식당 같은 풍경을 만들어내기도 했습니다. 이보람기자 usybr@

저작권자 © 울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