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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생포구에서 포경역사에 길이 남을 가장 큰 장수고래를 잡았다. 길이 23m, 높이 4m, 무게 65톤을 기록하였다. 모두가 놀라 들뜬 분위기였다. 한마디로 놀랄 정도다. (1974년)

우리 나라의 포경어업은 광복 이후부터 국제포경위원회(IWC)의 결정으로 포경이 중단된 1985년까지 우리 영해(領海)에서 고래를 잡는 근해(近海) 포경으로만 이뤄졌다. 한때 우리 영해 바깥에서 고래를 잡는 원양(遠洋) 포경이 시도됐으나, 끝내 지속되지 못했다.

 우리 나라 포경어업의 개척자이자 최초의 포경회사 조선포경주식회사를 만든 김옥창(金玉昌)씨는 일제강점기에 일본수산주식회사에 근무할 때 남빙양의 포경조업에 참여한 경험을 살려 단기간에 남극해와 북태평양의 포경에도 진출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1946년 9월 7일 조선포경주식회사를 설립하고 포경에 나섰으나, 여건이 갖춰지지 않아 원양 포경은 실현하기가 힘들었다. 20여년이 지난 1974년 초에 경림수산(京林水産)의 김윤국(金潤國)씨가 일본에서 300톤급 중고 트롤선을 도입하여 포경선으로 개조한 뒤에 일본 오가사와라(小笠原)군도 근해 어장에서 고래잡이에 나섰다.

 경림수산은 50여일간의 원양 조업에서 12마리의 고래를 잡았다. 우리 나라 근해에서는 잡지 못하던 향고래도 잡는 등 포경실적이 비교적 좋았다. 그러나 회사 경영의 실패로 원양 포경어업을 접을 수 밖에 없었다. 그로써 우리 포경어업의 원양 진출은 좌절됐고, 그 이후 다시 원양 포경을 시도한 포경업자는 나타나지 않았다.

 그것은 고래자원의 고갈로 세계의 원양 포경어업이 이미 사양길로 접어들었던 시기였으므로, 원양 포경어업의 전망이 불투명한 때문이었다. 그래서 우리 나라의 포경어업은 단 한 차례의 일회적인 원양 포경을 시도해보고는, 근해 포경이라는 한정된 울타리를 끝내 벗어나지 못한 채 1985년 말에 종막을 고했던 것이다.

 1950년대 중반까지 우리 나라의 포경업자는 12명에 19척의 포경선을 갖고 있었다. 그 중에 포경회사는 다섯 곳이었다. 포경업자들은 포경어업의 진흥과 권익을 보호하기 위한 조직체가 필요함을 깨닫고, 1959년 5월 27일에 우리 나라 최초의 포경어업 관련 수산단체인 '사단법인 한국포경협회(韓國捕鯨協會)'를 만들었다. 이 협회를 모체로 한국포경어업수산조합의 설립에 나섰다.

 포경협회가 만들어진 다음해 1960년 8월에 한국포경어업수산조합(韓國捕鯨漁業水産組合) 설립인가 신청서를 해무청(海務廳, 수산청의 전신)에 냈다. 서류미비로 우여곡절을 겪다가 1961년 초에 보완하여 다시 인가신청을 했다. 발기인은 강무송, 백상건, 이영조, 백만술, 김학천, 김대항씨였다. 설립이유로 고래자원 보호와 새 어장의 개척, 고래고기의 판로 확장과 그 부산물의 과학적인 가공처리, 출어자금의 적기 융자 알선과 적절한 사후관리, 낡은 어선의 대체와 개수, 과학적인 기술지도에 의한 포획기법과 어구의 개량을 밝혔다.

 1961년 2월 21일에 장생포에서 창립총회를 열어, 조합 규약을 통과시켰다. 조합장에는 동양포경의 백상건(白尙鍵)씨를 선임했다. 총회를 개최한 1주일 뒤 2월 28일에 해무청으로부터 설립인가를 받았다. 1962년 1월 20일에 우리 나라 최초의 수산단체법(水産團體法)인 수산업협동조합법이 공포됨에 따라 그해 3월 31일자로 한국포경어업수산조합은 해산되고, 4월 1일자로 명칭이 포경어업협동조합(捕鯨漁業協同組合)으로 바뀌었다. 사무소는 울산군 대현면 장생포리 177-2번지에 두었다. 조합장은 백상건씨가 그대로 맡았다.

 1976년 7월 9일에 개정된 수산업법 시행령에서 포경어업은 근해포경어업과 원양포경어업의 두 종류로 분류됐다. 그에 따라 근해포경어업을 경영하는 포경업자를 조합원으로 두고 있는 포경어업협동조합의 명칭은 자동적으로 바뀌게 됐다. 1977년 4월 29일자로 근해포경수산업협동조합(近海捕鯨水産業協同組合)이 됐다. 1982년 7월 영국 브라이튼에서 열린 제34차 국제포경위원회 총회에서 1986년부터 포경을 금지키로 함에 따라 근해포경수산업협동조합은 1985년 10월 14일 제121차 이사회를 열어 그해 포경 조업 마지막 날을 기해 해산할 것을 결의했다. 근해포경수산업협동조합은 1985년 10월 31일자로 23년간의 역사를 마감했다. 조합의 청산인(淸算人)은 평생을 포경업에 종사하며 조합장 직무대리로 있던 백용주(白龍珠)씨가 맡아 조합의 해산에 따른 마무리 작업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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