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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고래를 찾는 자전거'의 메가폰을 잡은 김영로 감독이 신비로운 보물과 같은 도시 울산을 배경으로 꿈과 희망을 찾아 떠나는 두 남매의 가슴 찡한 여행을 담은 착한 영화에 많은 관심을 기대한다며 착한미소를 짓고 있다. 유은경기자 usyek@ulsanpress.net

수려한 산천과 바다, 공단, 고래까지
울산은 신비로운 보물과도 같은 도시

포경산업 전진기지 장생포 배경으로
韓日 포수간의 대결 그린 차기작 준비


그를 단박에 알아보지는 못했다. 강한 인상과 무거운 차림에 다소 난해한 어투를 예상했기 때문이다. 영화 연출자에 대해 안고 있던 나름의 고정관념에서였다. 오가는 스텝들 사이로 눈인사를 건네는 그의 첫 인상은 의외였다. 단정한 셔츠와 청바지 차림에 끈을 깨끗이 동여맨 운동화를 신은 그는 동심이 전해지는 미소를 띄었다. 자극적이지 않아 싱거운 듯 하지만, 그래서 제대로 담백하고 솔직하게 와 닿는 모습은 영화와 참 많이 닮았다고 느껴지던 그 순간이었다. '서정적인 울산의 재별견'도 그 였기에 가능했으리라는 짐작이 뇌리를 스쳤다.

 동화책 같은 감성으로 세상 어떤 고전보다 큰 울림을 주는 '고래를 찾는 자전거'의 뒷얘기를 듣기 위해 김영로(42) 감독과 지난 7일 울산시사회장 한 켠에 마주앉았다. 무한한 감수성과 신비로움을 지닌 울산을 영화속 화폭에 담아낼 수 있었던 것부터가 '행운'이었다며 그가 말을 뗐다.

#'오감만족' 100%촬영으로 마무리

김 감독의 '고래를 찾는 자전거'의 배경은 바다, 강, 시장, 공단, 골목, 동네 할 것 없이 온통 울산이다.
 불치병으로 시력을 잃어가는 여동생에게 마지막으로 고래를 보여주기 위해 남원에서 장생포로 자전거를 타고 오는 주인공들 뒤로 간절곶, 작정천, 가지산, 방어진, 온양을 비롯해 암각화박물관, 고래바다여행선, 십리대밭, 언양5일장 등이 그림처럼 펼쳐진다.

 시나리오 대로라면 주인공 은철 남매의 동네인 남원에서 초기 작업을 해야하지만, 이마저 장생포와 신화마을로 무대를 대신했다. 한 컷이라도 더 넣고 싶은 욕심이 났던 그는 영화를 100% 울산 촬영으로 마무리했다. 촬영지를 섭외하는 헌팅 과정에서 울산에 매료돼버린 탓이다. 사실 시나리오를 쓰기 전부터 울산을 염두에 두고는 있었지만 직접 찾아 오감으로 느낀 가치는 그 이상이었다.

 덕분에 영화속 어린 남매의 간절함은 울산의 감수성과 잘 버무려져 한편의 동화를 연상케한다.
 잠재해 있던 가치를 한눈에 알아봐준 그에게 울산도 호의적이었고, 촬영현장만 놓고 보면 그 어느 영화보다 순조로웠다.
 울산을 담은 것도, 고된 일정을 인정으로 견딜 수 있었던 것도 되짚어 보면 다시오지 않을 '행운'이었다.
 그는 "초기 헌팅 작업과 엔딩 장면 촬영을 위해 각각 올랐던 고래바다여행선에서 두번 다 고래를 목격했죠. 처음엔 눈 앞에서 자맥질하는 고래떼의 모습이 경이로웠고, 두 번째는 마지막까지 울산이 행운을 가져다주는 듯해 고마웠습니다"라며 당시의 감격을 회상했다.

#남구청, 재정·엑스트라 출연 등 전폭지원

김 감독은 '고래를 찾는 자전거'를 한마디로 '착한 영화'라 정의했다.
 자극적인 소재와 상업지상주의가 판을 치는 영화계에 마치 유기농과 같은 작품을 내놓고 싶다는 욕심이 메가폰을 잡은 동기였다.
 저예산 영화라는 쉽지 않은 행보에 선뜻 나선 것도 '웰메이드 영화'로 승부하겠다는 각오에서였다.
 그 만큼 과정은 혹독했지만 그럴수록 의지는 강해졌다.
 시나리오를 읽고 반신반의하던 남구청을 끈질기게 설득했고 결국 2억원이라는 예산 지원을 이끌어내는 수훈을 세웠다.

 크랭크인을 앞두고는 투자유치가 제대로 이루지지 않으면서 절대절명의 위기에 맞닥들이기도 했지만 사전 작업을 강행했던 그였다. 당시 제작사 측으로부터 철수하고 상경하라는 통보까지 받았지만 울산과 어렵게 맺은 인연을 접고싶지 않아 남구청 지원금 만으로 모험을 시작했다.
 얼마지 않아 그의 열정에 대한 주위의 격려가 이어졌다.
 대학 선배였던 배우 이문식은 주연에 어울리는 개런티 대신 그의 열의와 작품성만 보고 출연을 결정했다.

 남구청 직원들도 엑스트라 출연에 동참했다. 할머니의 초상을 치르는 은철 남매의 집으로부터 시작되는 영화의 첫 장면은 근무를 마치고 조문객으로 출연하기 위해 밤을 지새운 남구청 직원 30여명의 뒷심으로 탄생했다. 모 사무관은 실제 소주 2병을 마시는 투혼을 발휘하더니 다음 씬의 경찰 간부로 캐스팅되는 에피소드를 남겼다.
 촬영장이라면 으레 제공되는 간식거리는 커녕 협찬받은 생수가 그나마 목을 축일 수 있는 전부였지만 배우들은 고맙게도 버텨줬다.

 가상의 세트장을 갖출수 없는 대신 장생포와 신화마을 일대의 주민들이 기꺼이 비워준 집들로 오히려 살아있는 현장을 담을 수 있었다.
 그러던 중 헌팅 작업을 시작한지 6개월 만에 투자가 유치되면서 총 6억원의 재원이 확보됐고 지난해 7월 본격적인 촬영이 시작됐다.
 사정이 크게 여유롭지는 않았던 터라 40여명 스텝의 경비를 지출하기에도 빠듯했는데, 천만다행으로 하늘은 한 차례도 비를 뿌리지 않았고 이른바 '공치는 날'이 없이 무사히 촬영을 마쳤다.
 촬영에 들어가 한달 반만에 작품이 완성된 영화는 그렇게 소박한 기적들에 힘입어 1여년이 지난 오는 22일 세상에 나오게 됐다.

#입봉작에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온 열정 쏟아

이 영화는 김 감독의 입봉작이다. 그는 "마지막 작품일 수 있다"는 말로 첫 작품에 대한 강한 애착을 역설했다.
 어릴적 배창호 감독의 '고래사냥'을 본 이후부터 고래를 소재로 한 영화제작을 꿈꿔왔던 그였다.
 또 이란 영화 '내친구의 집은 어디인가'에서 단지 교사의 꾸지람을 들을 것이 걱정돼 먼 곳의 친구에게 노트를 전해주기 위해 여정을 떠나는 주인공에게서 큰 울림을 전달 받은 이후 '착한 로드무비'에 간절함을 키워왔던 터였다.

 이 모든 것이 결합된 작품을 만들어보겠다고 생각한 것은 대학 때다. 다니던 대학을 접고 한양대 연극 영화과에 입학한 그는 배창호 감독의 연출부로 들어가 '정'이라는 작품에서 스텝 생활을 처음 시작했다.
 이후 영화사를 몇차례 옮겼지만 투자와 얽혀있는 혹독한 매커니즘을 극복하지 못해 참여 작품들이 줄줄이 도중하차 했고, 그때 직접 메가폰을 잡아보겠다는 계획을 구체화했다.

 이후 예닐곱편의 시나리오를 썼고, 제작사와 계약을 체결하기도 했지만 세상의 빛을 본 것은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2008년 'CGV- 사랑은 배달 중' 단 한편이었다. 그것도 스크린이 아닌 TV용 영화였다.
 '고래를 찾는 자전거'의 시나리오를 쓴 것은 그로 부터 1년 뒤였다. 오랜 염원이 녹아있었던 때문이었을까. 탄탄한 구성을 인정받으며 영화진흥위원회의 한국영화 기획개발지원사업에 선정됐고 곧바로 제작사가 붙었다. 가족으로부터 시작되는 깨끗하고 순수함, 포경이 금지된 이후 신비로운 존재로 남겨진 고래에 대한 동경은 그의 예상대로 다수의 공감대를 이끌어 냈다.

 또 시나리오를 쓸때부터 염두에 두었던 박지빈 군을 은철역에 캐스팅하면서 '아이스케키' 이후 5년만에 스크린으로 복귀시켰고, 동생 은하역에는 오디션을 통해 이슬기라는 보석을 발굴해냈다.
 "저 자신을 온전히 쏟았고 배우들도 시나리오에 동화됐죠. 자전거 사고를 찍던 중에는 안타까운 상황에 도취되는 바람에 모니터를 하던 중 눈물이 '왈칵' 쏟아져 촬영이 중단되기도 했죠"라며 당시를 돌이켰다.
 이 과정은 저예산 영화의 사활이 걸린 배급 문제를 극복하고 전국 100여개 관을 확보하는 원동력이 됐다.

 이 모든 것이 울산이었기에 가능했다는 김 감독은 앞으로 배창호 감독의 휴머니즘과 이창동 감독의 사회성을 결합한 영화를 울산에서 다시 한번 만들고 싶다고. 또 과거 포경전지기지였던 장생포를 중심으로 한일간 포수대결을 다룬 차기작을 구상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김 감독은 "수려한 산천과 바다, 산업문명의 상징인 공단, 신비로운 고래까지 갖춘 울산은 한 곳도 빠짐 없이 담고 싶은 보물과도 같은 도시"라며 "이 영화가 울산의 신성장동력인 이야기산업의 초석이 돼, 그동안 얻은 만큼 보답할 수 있는 계기가 되면 더 없이좋을 것"이라며 특유의 착한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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