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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77년부터 종적을 감춘 한국계 귀신고래. 사진은 사할린 앞바다에서 촬영된 한국계 귀신고래.

우리 나라의 유일한 고래문화특구 장생포에 들어가는 길목에는 귀신고래의 조형물을 볼 수 있다. 전 세계 100여 종(種)의 고래 가운데 한국이라는 이름이 붙은 단 한 종류의 고래가 귀신고래이므로, 고래도시 울산의 상징이 되기에는 한치의 부족함이 없다. 안타깝게도 그 귀신고래를 우리 바다에서는 볼 수가 없다.

귀신고래란 이름은 암초가 많은 연근해에서 귀신같이 출몰한다고 하여 붙여졌다. 두 종이 있다. 북태평양 양안(兩岸)에 서식한다. 동부 군집(群集)은 러시아 오오츠크 바다에서 알래스카와 캐나다, 미국, 멕시코 연해로 오가는 것으로 '캘리포니아계 귀신고래(Californian Gray Whale)'이다. 서부 군집은 우리 나라와 일본, 중국 남쪽 바다를 오가는 것으로 '한국계 귀신고래(Korean Gray Whale)'이다.


한국이라는 이름은 미국의 탐험가 '로이 채프먼 앤드루스(Roy Chapman Andrews·1884~1960)'가 붙였다. 미국 위스콘신주에서 태어난 그는 27세인 1910년 공룡 화석을 조사하기 위해 중앙아시아와 고비사막 등지를 찾았다. 1912년에 '악마의 물고기(Devil's Fish)'를 추적하다가 한국에 고래가 많다는 이야기를 듣고 일본의 포경선을 타고 포경기지이던 장생포에 와서 1년여간 머물렀다.

미국에 돌아가 1914년 태평양의 고래라는 제목의 논문을 통해 장생포 앞 바다에 회유하는 고래를 한국계 귀신고래라는 이름을 붙여 세상에 처음으로 알렸다. 그의 장생포 방문 100년을 기념하여 울산광역시 남구청이 지난 5월 25일 장생포 고래생태체험관 앞 광장에 1.8m 짜리 그의 흉상을 세웠다.

우리 정부는 1962년 12월 3일 강원도와 경상북도, 울산광역시 연해 일원을 천연기념물 제126호 울산 귀신고래 회유해면으로 지정했다. 한국계 귀신고래가 뛰노는 바다를 천연기념물로 지정한 것으로서, 그 바다에 귀신고래가 없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 한국계 귀신고래의 생식과 보존에 온갖 정성을 쏟아야 한다.

귀신고래는 해마다 11월경에 러시아 오호츠크 바다에서 우리 동해를 거쳐 남중국해에서 새끼를 낳은 뒤, 다음해 5-6월경 북상한다. 그 때쯤이면 우리 나라 동해 연안에서 쉽게 발견되던 한국계 귀신고래는 우리 바다에서는 이제 찾아 볼 수가 없다. 18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 걸쳐 열강이 우리 바다에 들어와 귀신고래를 마구 잡은 결과이다.

한심한 것은 천연기념물로 지정한 뒤에도 한동안 귀신고래를 잡았다는 사실이다. 수산대학교 교수를 지낸 우리 나라 1세대 고래연구가 전찬일 선생이 포경어업협동조합에서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1963년부터 66년까지 4년간 14마리의 귀신고래를 잡았다고 한다. 1970년대에 들어와서는 귀신고래를 잡았다는 이야기만 나돌았을 뿐, 자료는 남아 있지 않다.

1970년대 초반에 우리 나라의 연구기관이나 학자가 아닌 외국의 학자가 한국계 귀신고래의 생존에 관심을 나타냈다. 미국의 생물학자 보우인(Steven L. Bowen)이 1970-1971년과 1971-1972년 어기(漁期)에 포항에서 제주도에 이르는 지역을 찾아 귀신고래의 회유를 조사했다. 1972년 가을에 발표한 논문에서 '한국 귀신고래의 자원(資源)은 분명히 없어졌다'고 밝혔다.

1977년 1월 3일에 당시 포경선 대양호 선주 겸 포수 박기목(朴奇睦)씨가 방어진 앞 5마일 바다에서 귀신고래 2마리가 남하하는 것을 목격했다고 증언했다. 그 뒤부터 지금까지 34년째 우리 바다에서 귀신고래의 종적을 찾을 수가 없다. 월간잡지 마당이 1981년 11월호에서 귀신고래의 사진을 찍어오면 100만원의 현상금을 준다고 했다. 국립수산연구원 고래연구소는 2008년 1,000만원의 상금을 걸고 귀신고래의 발견에 나섰다.

한국계 귀신고래는 러시아 사할린 북동 바다에서 목숨을 이어가고 있다. 2007년 9월에 169마리가 살고 있는 것이 우리 나라와 러시아의 공동조사에서 확인됐다. 1996년부터 2006년까지 발견된 158마리에 2007년에 새로 발견된 11마리를 합친 것이다. 캘리포니아계 귀신고래 역시 한때 멸종 위기에까지 처했으나, 캐나다와 미국, 멕시코 정부가 보존활동에 힘입어 지금은 3만여 마리로 크게 늘어나, 관광자원으로서 커다란 각광을 받고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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