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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복 차림의 50대 여성들이 사위를 살피며 탄성을 질렀다. "너무 좋다..." "사극 찍기에 딱인거 같다..." 연신 터지는 그들의 찬사는 다름 아닌 선사문화길 어귀에서 만난 실화다. 4명이었다. 열 발짝 남짓 뒤에서 걷고 있는 나를 힐끗 쳐다보던 한 여인이 "여기, 참 좋죠"라고 말을 걸었다. 서울 사람들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탄성과 설렘이 교차하는 그들의 걷기를 조금 더 지켜보기로 했다. 집청전 앞에서 잠시, 그들이 사진을 찍었다. 흔쾌히 촬영기사가 되어 준 나는 그들과 함께 반구대암각화로 향했다.
 오후, 사선으로 햇살이 가려지는 시간, 반구대암각화 가는 길은 예술이다. 햇살이 댓잎에 부서져 사그락 소리가 들리면 가물가물한 1억 년 전 백악기 공룡 몇 마리가 길게 하품하는 소리가 대곡천 물길 따라 퍼진다. 그 길을 가리키던 내 손끝이 파르르 떨렸다. 물빛이 짙은 풀빛이다. 녹색 물감을 잔뜩 풀어 놓은 대곡천이 이내 내 손과 눈, 가슴까지 질퍽한 녹빛으로 물들였다. 뒤따르던 사람들의 인상이 금세 일그러졌다. "청평에서도 예전에 물빛이 저런 걸 본적 있어..." 서울에서 온 이들이 자기들끼리 녹색으로 뒤덮인 대곡천을 보며 몇 마디 주고받았다. 그들은 대체로 서울 중심으로 생각한다. 서울은 어떤데 여기는 어떻다는 식이다.

 지난번 반구대를 찾았을 때보다 상황은 심각했다. 그동안 비다운 비가 오질 않았으니 부영양화는 더욱 가속화 됐을 테고 그만큼 색깔의 깊이는 더욱 까마득해졌다. 이른바 녹조현상이다. 물의 표면에 녹조가 덮이면 수중으로 향하는 햇빛이 차단되고 용존산소가 추가로 유입되지 않으면서 물의 용존산소량이 줄어들게 된다. 이렇게 되면 물고기와 수중생물이 죽고 악취가 나며, 그 수역의 생태계가 급속도로 파괴되기 마련이다.
 하천 상류지역의 녹조는 인간의 이기심에서 비롯된 자연의 재앙이다. 댐을 만들고 물을 가두니 흐름이 끊기게 된다. 흐름이 끊기면 당연히 고이고 엉킨 삼라만상이 불협화음을 내게 된다. 문제는 단순히 질퍽한 녹색의 곰팡이가 아니다. 그 종균이 바위에 붙어 겨우 신음 소리만 내고 있는 고래의 심장을 파헤치기에 녹색이 녹색으로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더욱 심각한 것은 알 수 없는 이끼류와 곰팡이 균들이 계절을 갈아가며 퇴적암 표면에 붙어 바위의 껍데기를 핥고 주물러 견고해 보이는 돌덩이를 흐물 거리게 한다는 점이다.

 자, 여기를 보세요. 나는 그들의 시선을 얼른 반구대암각화 안내판으로 돌렸다. 망원경을 더듬던 그들의 눈길이 표지판에 이르자 먼저 와 있던 관광객들도 금방 눈길을 나를 향해 돌렸다. 아마도 문화해설사이거나 그 비슷한 종류의 일을 하는 사람으로 여긴 모양이었다. 어쨌거나 "에이, 아직 물속에 있나보네…", 라거나 "왜 이렇게 놔두는 거지…"라며 물속에 잠긴 암각화를 향해 아쉬움을 토해내던 그들의 목소리는 사라졌다. 6,000년 전 이 땅에 살았던 사람들이 남긴 고래는 물속에 있지만 그들의 이야기가 다시 살아나 녹조를 헤치고 댓잎을 가르며 그들의 귓전을 울렸다.
 고래를 남긴 선사인들은 한반도의 동남쪽 끝자락을 삶의 터전으로 삼았다. 태화강 유역에서 가장 많이 발견되는 것은 청동기문화로 암각화를 그린 주인공들도 바로 이들과 연관되어 있다고 보는 것이 맞다. 바로 그들이 삶의 터전으로 삼은 태화강 상류 지역은 그 시기에는 바다였다. 동해를 회유하던 고래가 내륙으로 들어온 깊숙한 곳으로 머리를 틀면 무리를 지은 선사인들이 조직적으로 고래를 포획하고 그 사냥의 제물로 몇 날, 아니 몇 달을 풍요롭게 지냈던 곳이 바로 반구대암각화가 위치한 곳이다. 정자미역과 고래의 연관성부터 뉴질랜드에서 알래스카에 이르는 고래잡이 문화를 이야기하자 그들의 눈빛이 반짝거렸다. 바로 그 우리 조상의 흔적이 지금 바위그림으로 남아 물속에서 허우적이고 있다.

 "언제 볼 수 있나요?" "미리 알고 왔으면 좋았을텐데..." 탐방객들의 아쉬운 탄성이 쏟아졌다. 인류 최초의 고래잡이 증좌를 눈앞에 두고 바라볼 수 없다는 것은 심장을 뛰게 한다. 여기저기서 문화재당국과 높은 양반들을 욕하는 소리가 물수제비처럼 퍼졌다. 그래도 아쉬운지 탐방객 가운데 몇은 망원경에 고개를 숙였다. 어쩌랴 보이는 것만 보는 세상이니 보이지 않는 것을 보라고 고래고래 고함치는 일은 참 수고스러운 일이다. 그들을 향해, 그래도 아쉬우면 박물관에 가서 실물 모형이라도 만져보고 가시라고 말하는 내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없는 것을 찾아 숨은 그림찾기를 하는 그들의 눈빛이 안타까웠던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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