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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에는 3,000여개의 언어가 있다고 한다. 그러나 그중에 문자를 가진 나라는 100여 국가이며 자국어를 가진 나라는 28국에 불과하다. 그러나 언어를 가진 28개국 또한 로마문자를 베껴 쓰거나 한자어를 변형해서 쓰는 경우가 강한데, 로마문자가 변형된 영어, 불어, 독어와 한자를 변형시킨 일본문자를 제외한다면 원형 문자는 6개 정도에 불과하다고 한다.
 최근 언론 매체를 통하여 인도네시아 원주민 찌아찌아족이라는 부족에게 한글이 보급되며, 남미 볼리비아의 원주민 아이마라 부족에게 한글을 보급하기 위한 프로젝트가 추진된다는 보도를 들었다. 한글의 우수성을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는 것이다.

 물론 한글이 세계적으로 우수성을 인정받기까지 그 과정이 순탄했던 것만은 아니다. 한글은 약 70년 전 역사 속으로 사라질 뻔한(?) 아찔한 위기도 겪었다. 1930년대에 들어와 일본은 소위 민족말살정책을 펼쳤다. 내선융화(內鮮融和)의 일환으로 황국신문선서, 창시개명을 요구하였고, 역사도 말살하고자 했다.
 일본은 이어 언어차원의 민족말살도 병행했다. 한글로 된 교과서를 모두 불태워 버렸고, 일본어 교육을 강화하여 일본 어로 된 교과서를 강제로 사용하게 했다. 한글에는 민족혼이 깃들어 있으니 말살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바로 이때 "한글은 목숨이다"고 외치며, 한글 지킴이 역할을 한 사람이 있었으니, 외솔 최현배 선생이었다.
 외솔 최현배(崔鉉培) 선생은 한글을 연구하고 가르치는데 많은 공을 쌓은 대표적 한글 학자이며 독립유공자이다. 경상남도 울산군 하산면에서 1894년 출생한 선생은 1910년부터 3년간 주시경의 조선어 강습원에서 한글과 문법을 배웠다. 이후 고등 보통학교 교사를 거쳐 일본 히로시마 대학에서 교육학을 전공하고 1926년 연희전문교수로 부임했다. '비행기'를 날틀이라고 부르는 데서 알 수 있듯이 최현배 선생은 고집스레 순 우리말 쓰기 운동을 펼쳤다. '한글'이 민족의 혼을 되살려 줄 것이라 굳게 믿었기 때문이었다.

 선생은 국문학자 주시경 선생이 1907년에 국문 정리와 국어 연구를 위해 설립한 '국문연구소'의 정통을 이어 순우리말 연구와 보급을 확산하기 위해서 이윤재 선생을 비롯한 다른 국문학자들과 조선어연구회를 발족한다(1921). 1926년에는 '갸갸날'을 선포하고(지금의 한글날), 1927년에는 기관지 한글을 발행하며 우리말 운동에 앞장선다. 조선어연구회를 확대 개편해 1931년 조선어학회를 창립하여 문맹 퇴치 운동도 전개한다.
 뿐만 아니라 한글 교재의 편찬, 발간을 통해서 전국적으로 한글을 보급하기 위해 힘썼다. 선생은 문법 체계를 확립하는 데도 주도적 역할을 했다. 한글 맞춤법 통일안(1933)과 조선어 표준말 모음(1936), 외래어 표기법 통일안제정(1940) 등 우리말 큰 사전 편찬 기초 준비를 담당했다.
 1943년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체포되어 죽을 고비를 넘기기도 하지만 광복 이후에도 한글 지킴이 역할을 지속했다. 문교부 교육행정 관리를 지냈으며, 한글학회 상무이사 이사장 역임했다. 이후에도 한글 관련 저작글을 편찬하며 국어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다 1970년에 작고했다. 선생은 1962년에는 건국공로훈장을, 1970년에는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수여받았다.

 나라를 빼앗기고 일제의 통치를 받는 동안 우리의 국어는 일본어였으며, 우리말은 국어가 아닌 조선어일 뿐이었다. 공식 언어로서 일본어의 사용이 강요되었고, 모든 교육이 일본어로 이뤄졌다. 한글은 가르치지도 않았다. 우리는 모국어를 잃음으로써 민족적 정체성을 잃을 뿐만 아니라 그 유대 또한 끊어질 뻔한 것이다.
 '민족말살정책'을 통해 국가의 모태가 되는 한국인이라는 민족까지 말살하려고 했던 때에 일제의 눈과 손을 피해 우리의 민족성을 보존 유지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여 민족을 지켰던 외솔 최현배 같은 선생님이 계시지 않았더라면, 우리는 한국인으로서 존재할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오는 19일에는 외솔 최현배 선생 동상 제막식 및 한글축제가 외솔 최현배 선생 기념관에서 열린다. 자녀들과 함께 외솔기념관을 찾아 선생의 한글사랑과 나라사랑정신을 되새겨보는 것도 뜻 깊은 시간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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