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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중앙박물관 1층 고고관 도입부에는 반구대암각화 모형이 있다. 지금은 잘 모르겠지만 지난해까지만 해도 이곳에서는 '선사와 고대의 기록문화'라는 주제의 강연이 매주 열렸다. 지난해 200회 기념으로 당시 국립중앙박물관장이었던 최광식 현 문화부장관이 직접 큐레이터가 되어 한반도 선사문화에 대한 강의를 했다. 신라문화와 고구려문화의 전공자인 그는 반구대암각화를 배경으로 마이크를 잡고 우리문화의 뿌리에 대해 열정적인 강의를 토해냈다. 그의 강연에 오감을 곤두세운 청중들은 그의 한마디 한마디에 몰입했고 그 모습이 언론의 화제가 됐다.
 기록문화의 가치와 한반도 문화의 뿌리를 설명하는 그는 언제나 반구대암각화와 고구려 고분벽화, 신라 금석문 등을 우리 고대사의 기록문화로 이야기 한다. 문화의 뿌리의식이나 우리의 정체성 규명에 많은 열정을 쏟은 그가 국립중앙박물관장을 거쳐 문화재청장과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으로 올랐을 때 많은 이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이나 '중앙아시아 속의 고구려인 발자취'라는 저서를 읽지 않은 인사들이라도 그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자부심과 열정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문화재 보존과 역사의식은 그 나라 국민의 문화척도임을 강조해 왔다.

 그런 그가 어제 국회에서 반구대암각화 보존문제에 대해 몇 가지 의미심장한 발언을 했다. "반구대암각화 보존방안은 사연댐 수문을 낮추는 사업을 우선 추진하고, 물 문제를 장기과제로 추진하기로 한 방침에 변화가 없다"는 것이 핵심이다. 그는 또 "암각화의 지리적 입지는 그 자체도 중요한 문화재의 구성요소이기 때문에 인위적인 주변 환경의 변경은 중요한 문화유산을 해치는 행위"라고 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그는 "울산시가 새로 제시한 유로변경안은 이미 가능하지 않은 것으로 결론 난 것으로 울산시가 정부와의 합의를 무시하고 왜 정해진 사항을 되돌렸는지 모르겠다"고도 했다.
 그가 밝힌 핵심은 사연댐 물을 빼고 반구대암각화를 보존해야하고 울산시민의 식수문제는 차후 논의사항이라는 점이다. 세계적인 문화유산이 물에 잠겨 있으니 110만 울산시민의 식수가 우선이 될 수 없다는 이야기다. 반구대암각화의 문화사적 가치를 잘 아는 그이다 보니 보존이 무엇보다 우선이라는 논리도 수긍이 간다. 아니, 보존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사실은 수백번 이야기해도 옳은 주장이다. 지난 2003년 중국이 고구려와 발해를 중국 역사로 편입시키려 하는 '동북공정' 사태가 불거졌을 때 그 누구보다도 앞장서 중국 정부에 항의했던 인물이 바로 최 장관이다. 적어도 역사적 근거를 바탕으로 중국의 말도 안 되는 억지논리를 무력화시킨 그의 강단은 '살아 있는 을지문덕'이라는 닉네임이 아깝지 않을 정도다.

 그런 그가 반구대암각화 보존을 놓고는 갈팡질팡하는 모습이다. 문화재청장시절 울산을 찾은 그는 반구대암각화의 오늘을 가장 잘 목격했던 사람이다. 역사학을 전공한 그이니 당연히 오늘의 반구대암각화가 왜 물에 잠겨 있고 지금 물에서 당장 건져내지 못하는지를 잘 알고 있을 터이다. 그런 그가 울산시의 대체안을 무지의 소치쯤으로 내던져버리고 하찮은 대안으로 업신여기는 것은 참으로 딱한 일이다. 반구대암각화는 적어도 6,000년~7,000년 전부터 그 자리에 있었다. 그 때도 바위 주변엔 물길이 있었고 지금처럼 사위가 원시의 신비감이 감도는 그런 땅이었다. 그 곳에 댐을 쌓고 물을 가둔 것은 오늘을 살고 있는 우리가 한 행위다. 그가 말한 '인위적 환경 변경'은 이미 1960년대에 '조국근대화'의 이름으로 행해진 대역사가 그 시작이었다는 말이다.
 사연댐 건설이 오늘의 반구대암각화 보존문제에 덫이 되어버린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는 그가 국회에서 울산을 향해 그렇게 단호한 말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이 놀랍다. 적어도 역사의식이나 문화에 대한 식견이 없는 정치장관이 한 말이라면 '가소롭게' 여길 만도 한 일이지만 선사문화와 고대사를 전공한 그가, 누구보다 문화재를 아끼고 사랑하는 그가 국가와 정부의 책임을 안주머니에 감추고 울산시의 고육지책을 무참히 짓밟아버리는 발언을 한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실망스럽다.

 반구대 암각화는 바위에 새겨진 단순한 그림이 아니다. 아는 만큼 보이는 법이기에 선사시대 바위그림을 한번이라도 접해본 사람이라면 반구대암각화의 가치에 고개를 끄덕이기 마련이다. 더구나 반구대 암각화의 조형미는 시대를 통틀어서 가장 앞서 있다. 겨울 한철, 물에서 나온 바위 그림 앞에서 음양각의 선을 따라 시선을 쫓으면 그 오묘한 빛과 그림자의 조화가 선사인의 호흡처럼 살아 숨쉬고 있다는 탄성에 젖기도 한다. 바로 그 가치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다는 사실은 자명하다.
 하지만 그 모든 가치를 명분으로 무조건 물을 빼라고 고함지르는 일은 누구나 할 수 있다. 정부가 '조국 근대화'의 이름으로 물을 가두었으니 물을 빼는 것도 스스로 고민해야 하는 일이다. 그 고민은 뒤로 한 채 흰머리 휘날리며 "당장 물부터 빼시오!" 고함을 지르면 되돌아오는 것은 110만 시민의 저항이 있을 뿐이다. 원형훼손이 정부로부터 비롯된 사실을 알고나 한 이야기인지, 나는 최 장관에게 바로 그 사실을 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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