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선거가 코앞인데 난데없는 종북주의 조종사 이야기가 언론을 도배하고 있다. 굳이 선거가 아니라도 우리 사회는 온통 좌파와 우파, 종북세력과 보수세력의 팽팽한 긴장이 외줄타기 놀음을 한다. 해방 이후 70년이 다 되어 가도록 이 땅의 두뇌집단은 오른쪽과 왼쪽의 샅바싸움을 해왔지만 여전히 지겨운 기색이 없어 보인다. 수도 서울의 수장을 뽑는 이번 선거는 더욱 가관이다. 시장선거라는 타이틀에도 불구하고 속을 들여다보면 영락없는 이념투쟁이다.
 여론조사 공표 마지막 날까지 초접전, 박빙의 대결구도로 가고 있는 서울시장 선거는 관전자 입장에서는 참 흥미롭다. '자뻑'한 오세훈의 대타로 나선 나경원과 정당정치의 한계를 '커밍아웃'한 야당의 구세군 박원순의 한판대결이 갈수록 뻘판싸움으로 변질되고 있다. 하기야 굳이 뻘판 운운할 것도 없어 보인다. 미끈한 분칠로 대중 앞에 선 탤런트 의원이나 백신박사의 안주머니에 숨어 있다 털보수염을 밀고 뽀얀 얼굴 내민 희망일꾼 변호사의 한판승부는 어차피 두 사람의 싸움은 아니지 않나. 선수보다 감독과 코치, 스파링 파트너들이 설쳐야 하는 싸움이니 링보다 링 밖의 탁한 공기가 싸움의 주체가 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문제는 선거판을 휘감아 도는 잡스런 용어들이다. 눈만 뜨면 '니는 보수' '니는 좌파'하며 한 몸뚱이를 좌우로 찢어 수도 서울의 사방으로 질질 끌고 다니니 웬만하면 동서로 흐르는 한강조차 물줄기를 남북으로 바꿀 만도 하다. 딱하지만 우리사회는 아직도 좌우싸움이 한창이다. 연일 떠들어대는 좌우 논쟁에 조선조 최고관직을 좌의정과 우의정으로 나눈 삼봉의 관제가 원망스럽기도 했지만 어차피 연일 듣고 다녀야 한다면 스스로의 정체성도 좌우 어느 한 쪽으로 들어 붙이는 게 좋겠다는 생각까지 들 정도다.
 분명한 것은 지금 우리 사회는 보수로 대표되는 우파가 득세하는 세상이다. 하지만 선거만 하면 보수는 맥을 못춘다. 여론조사를 하면 분명 보수가 승리하는 분위기지만 막상 뚜껑을 열면 보수와 악수하던 표들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좌파의 뻘건 딱지가 화면을 덧칠한다. 그러니 보수우파들은 미칠 지경이다. '빨갱이 나라를 만들거냐'고 목청을 돋우고 고래고래 고함을 질러보고 싶지만 '어느 시절에 색깔타령이냐'며 돌아올 비난에 움찔하는 게 현실이다. 천안함과 연평도 사건을 붙들고 종북을 거론하며 안보의 방패를 높이세우면 슬그머니 '우리는 대한민국을 사랑하는 애국시민'이라며 하얀 국화 손에 쥐고 향을 피우니 미칠 지경이다.

 문제는 싸움판의 본질이다. 싸움의 본질은 지구력과 펀치력이다. 화려한 기교나 날카로운 칼날은 싸움판에서 유용한 도구가 아니다. 선거라는 싸움판이 몸과 몸이 부딪히는 사각의 링인데 상대가 홀딱 벗고 덤비는 판에 칼과 창을 들고 온갖 기교를 부리면 관중석에서 나오는 것은 야유와 비난이 있을 뿐이다. 바로 그 도구의 문제를 한나라당은 착각하고 있다. 좌파를 넘어 종북을 들고 창을 휘두르니 색깔에 민감한 20대와 30대는 짐을 싸서 왼쪽으로 자리를 옮긴다. 왜일까. 젊음은 왼쪽 유전자가 발달하는 시기다. 청년기의 뇌구조는 삐딱하다. 선사 이래 고대부터 지금까지 삐딱하지 않은 젊음은 없었다.
 젊은층에 보수가 인기 없는 것은 보수 자체의 정체성 문제가 아니라 청년기의 기질이 기존의 질서를 거부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진보나 좌파가 제도권 교육에서 충실하게 습득한 현대사의 개념을 송두리째 부정해도 심장이 뛴다.  예를 들면 "김일성은 자수성가형 민족영웅이다"(한홍구 성공회대 교수), "김일성은 이순신, 세종대왕 같은 위인이다(소설가 황석영)", "아리랑 공연은 어마어마한 가치의 세계(김용옥)", "김정은 후계구도는 북에선 그게 상식(박지원 민주당 전 원내대표)"이라는 좌파발언들이 새롭고 신선해 보이기까지 한다. 그런데 그런 관심은 청년기의 자연스러운 '지적 항체'라는 사실을 한나라당은 잊고 있다. 스스로도 20대와 30대를 보내며 자본주의의 모순과 군부독재의 해악에 고민한 적이 있었으면서도 그 때 그 시절은 까맣게 잊고 있다.

 오래된 말이지만 '나경원 구하기'에 나선 보수세력은 '20대에 사회주의에 심취하지 않는 젊음은 가슴이 없다'는 말을 다시 사전에서 꺼내봤으면 한다. 꺼내서 읽어보면 '좌파종북'을 공격의 타깃으로 나경원을 구하지 못한다는 사실에 가슴이 철렁할 만하다. '착한'시리즈로 오세훈을 주저앉힌 야당의 무기가 여전히 착한 격문에다 '정권심판'과 '도덕성'을 붙이고 다니는데도 좌파와 종북으로 거리행진을 한다면 청년층의 표는 포기해야 한다. 삐딱한 그들이 거부감을 가지는 것은 좌파나 종북이라는 용어가 아니라 갈수록 벌어지는 빈부의 격차와 고공행진하는 등록금, 그리고 시급으로 햄버거 하나 살 수 없는 현실의 모순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저작권자 © 울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