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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품속에 숨은 내면의 이미지를 찾아보세요" 최정현 작가가 착한 미소를 지으며 작품을 설명하고 있다.

그의 고물에는 생명이 살아 숨 쉰다.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쓰레기에 생명이라니 모순이 되는 이야기지만, 그의 작품들을 보고 있으면 자신도 모르게 대화를 걸게 된다.
 키보드로 만든 뱀, 다리미로 만든 펠리컨, 소화기로 만든 펭귄, 폐타이어로 만든 청설모 등 필요가 없어 무심코 버린 폐고물이 나름대로의 뜻이 담긴 이름을 가지고 태어나 세상을 향해 소리친다.
 시사 만화가이자 생활만화가, 그리고 조형예술가로서 자신만의 독특한 예술세계를 독보적으로 선보이고 있는 일명 '반쪽이' 최정현 씨의 작품 이야기다.

 지난 2006년부터 '반쪽이의 고물자연사박물관'이라는 이름으로 서울, 안산, 광주 등에서 11회째 전시를 펼쳐 보여 왔던 최 작가가 이번에는 '반쪽이의 상상력 박물관 전'으로 울산을 찾았다. 그냥 찾을 것인가. 작가와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시간도 세 차례나 가지며, 울산 시민들의 창의력을 일깨워 주고 있다. 작가와의 대화 마지막 날이었던 지난 10월 29일, 전시장을 찾은 관객들 사이에서 착한 웃음을 짓고 있는 최정현 씨를 만났다.

#죽어 있던 생명 되살려 이미지 부여

옷걸이로 만든 안경, 나비, 별 등의 작품들을 만들어 시민들에게 나눠주고 있는 최정현 작가 앞에 한 꼬마 팬이 전시 팜플렛 한 장을 들고 섰다. 마치 좋아하는 연예인을 본 양 사인을 해주길 간절히 기다리는 열혈 팬의 모습이다.
 작가는 자신을 똑 닮은 만화 캐릭터를 그리고 이름을 새겨 꼬마 팬에게 선물했다. 그리고 이어지는 사인 요청들. 마다하지 않고 일일이 그림을 그려주는 그의 얼굴에는 시종일관 웃음으로 가득했다.

 "제 얼굴이 좋아 보이는 이유는 '여유'가 있기 때문이에요. 하루종일 집에서 만화 그리고, 고물만 만지고 있으니 여유가 있을 수 밖에 없죠"
 웃음이 넘치는 이유를 재치 있는 대답으로 대신하며 '삶의 여유'를 강조한 최 작가는 결국 모든 사물에는 '죽음'이 있기에 그럴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가 산업폐기물을 이용한 조형예술작품에 애착을 두는 이유도 같은 맥락이다.

 "'죽음'이라는 것은 욕심을 버리지 못해 끙끙 앓고 있는 모든 사람들을 다 놓게 만들잖아요. 결국에는 아무것도 가질 수 없는 인생이기에, 욕심을 가질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요. 그게 바로 여유와 이어지죠. 그러면 내가 미처 알지 못했던 내면의 또 다른 모습을 발견할 수 있어요. 제 작품들도 마찬가지에요. 제 작품들은 죽어 있는 생명을 다시 되살린 작품들이잖아요. 거기에는 다 사연이 있어요. 작품 속에 숨어 있는 내면의 이미지 찾기. 그게 제 작품의 감상 포인트입니다"
 

▲ '반쪽이의 상상력 박물관 전'은 소화기로 만든 펭귄, 키보드로 만든 코브라 등 사회를 돌아보게 하는 작품들로 채워졌다.


#'키네틱 아트'보다 사람들 마음 움직이게 하고파

최 작가는 고물로 그냥 아무 의미 없는 작품을 만들지 않는다. 사람의 손길이 오고갔던 고물을 가지고 새로운 역사를 만든다.
 작품 '국회의사당'의 지붕은 답답한 현실을 빗대어 화장실에서 사용하던 고무 '뚫어뻥'으로 씌우고, 기둥은 탁상공론을 떠올리게 하는 연필로 세워져 있다. 컴퓨터 키보드 알을 끼워 만든 수류탄은 '네티즌2'다. 또 고무 슬리퍼로 만든 '카멜레온'이나 팥알로 만든 '아마존의 가위개미' 등은 자연의 메시지를 전해 작품 그 자체로 흥미롭다.

 워낙 다양한 입체조형물을 만들다보니 움직이는 미술인 '키네틱 아트'에는 왜 도전하지 않느냐라는 질문도 주위에서 많이 받는다. 최 작가는 동력을 사용하는 '키네틱 아트'는 움직임에 집중할 뿐, 작품 그 자체로만 깊이 있는 감상을 하기 어렵기 때문에 도전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앞서 말했듯이, 제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내면의 이미지'예요. 키네틱 아트는 사람들의 눈길을 끌기는 쉽지만, 그저 물체가 움직이는 것에만 주목을 받게 되죠. 저는 그런 작품은 하고 싶지 않아요. 작품을 보면서 '아! 이런 뜻을 가지고 있구나' 하고 깨달을 수 있게끔 이야기를 가지고 있는 작품들을 만들고 싶어요. 비록 제 작품은 움직이지는 않지만,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게 합니다"
 그는 앞으로도 관람객의 반응에 따라, 이해하기 쉽고 좋은 작품을 만들어 대중들과 소통을 하는 작가로 거듭나고 싶다는 소망을 내비치기도 했다.
 
#유인물에 실명대신 달걀반쪽 그려넣으면서 별명붙어

이번 전시에는 대부분 고물로 만든 재활용작품들로 채워졌지만, 전시장 입구에는 그의 대표작인 '반쪽이의 육아일기' 시리즈가 차례로 놓여있었다. 만화가로서의 최정현 작가임을 보여주는 상징이다.
 '반쪽이의 육아일기'는 1998년 12월 지인의 권유로 '여성신문'에서 연재하기 시작했다. 때마침 딸 아이를 낳은 터라 자연스럽게 아이디어가 연결됐다.

 남자가 육아일기를 그렸다는 점이 처음에는 창피했으나 반응이 좋아 계속 그려나가게 됐고, 최 작가는 30여년간 계속 연재 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어느 날 아내가 만화에서 자기는 빼달라는 요구를 했고, 사춘기에 접어든 딸 예린이도 더 이상 자기를 드러 내고 싶지 않다고 강력하게 이의를 제기했기에 자연스레 완결편을 내게 됐다. 주인공이 사라진 만큼 만화를 연재할 의미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최 작가가 '반쪽이'라는 꼬리표를 달게 된 것은 대학시절 사회문제에 눈을 뜨고 뜻을 같이 하던 사람들과 유인물을 만들면서부터다. 최 작가는 삽화를 유인물에 그렸었는데, 그  때가 1980년대 초반이다. 시대가 시대인 만큼 실명을 쓸 수가 없어 이름 대신 달걀 반쪽을 삽화 아래 그려 넣은 것이다. '달걀 반쪽'은 분단의 아픔을 뜻한다.
 "5공화국 시절에는 검열이 엄격했던 터라 몰래 숨어서 그렸어야 했어요. 이름을 밝힐 수가 없어 계란 반쪽을 그렸는데, 그 때부터 친구들과 선배들이 '반쪽이'라고 부르더라구요. 그때 그 시절 불렸던 별명이 아직까지 제 애칭으로 불리고 있습니다"
 
#경제력 뒷받침된 울산 '근본'되찾을 여유 생겨

이번 전시를 통해 처음 울산을 찾으면서, 그는 '울산도 근본을 찾아 되돌아가려 하고 있구나' 하고 생각했다.
 울산 하면 떠오르는 것은 당연 '공업도시'이기에 울산의 이미지는 바쁘고, 차갑고, 딱딱하기만 했다. 하지만 이제는 어느 정도 경제적 성장을 이룬 울산이기에, 근본을 되찾을 여유가 생겼다는 것이다. 최 작가는 울산의 내면의 이미지를 서양의 사례에 빗대면서 설명했다.

 "서양인들은 식사를 할 때도, 포크나 나이프 등 날카롭고 공격적인 도구를 들고 밥을 먹지 않습니까. 경제성장이 시급했던 때는 자연과 인간에 대한 발전은 뒤로 미룰 수 밖에 없었어요. 차츰 먹고 살만 하니까 인간으로서의 생활을 되돌아보게 된거죠. 이제는 전 세계에서 '웰빙!' 하고 외치잖아요. 울산도 마찬가지에요. 과거 공업도시를 표방하며 눈부신 경제성장을 이뤘고, 지금은 문화생활을 여유롭게 즐기고, 녹색도시 울산을 추구하고 있어요. 근본으로 되돌아가자는 시대가 온거죠. 특히 울산은 경제적 뒷받침이 탄탄하게 다져져 있기에 자연으로 돌아가 뿌리를 되찾는 일은 더 쉽게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해요. 디지털과 아날로그의 융합으로 살기 좋은 울산을 만들 수 있을겁니다" 

#아이들 교육은 체험환경 만들어주는게 중요

'반쪽이의 육아일기'를 연재했던 그인 만큼 아이에 대한 교육관은 그 누구보다도 확고했다.
 입시위주의 교육에서 벗어나 상상의 나래를 마음껏 펼칠 수 있도록 어릴 때부터 생각을 열어두게 하는 것이다.
 "기발한 생각은 특별한 사람에게서만 나오는 게 아닙니다. 어릴 때부터 사람마다 제각각 재밌는 생각, 트여있는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어요. 창의적인 생각은 '화석 작용'과 비슷해요. 한 사물 위에 땅이 쌓이고 쌓여 굳어버리는 것처럼, 생각도 주입식 교육으로 쌓여가 굳어버리게 되죠. 한창 생각하고 궁금해야 할 시기에 여러 지식으로 쌓여버리니까 결국 나중에는 생각을 하려해도 할 수가 없어요. 항상 생각을 열어두게끔 '체험'을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게 중요해요"

 그런 점에서 그의 전시 '반쪽이의 상상력 박물관'은 교육에도 큰 효과가 있다. 교육은 누구나 받을 권리가 있듯, 이 전시도 그렇다. 아이뿐만 아니라 어른들의 상상력을 일깨우고 시대를 되돌아보게 한다.
 이 전시는 오는 6일까지라 기한이 얼마 남지 않았지만, 교육의 기회는 또 다시 찾아온다. 내년 3월 즈음 울산과학관에서도 작품을 선보일 예정이기 때문이다.
 굳어가는 두뇌를 말랑말랑 유연하게 되돌리고 싶다면, 이번 주말에는 보고, 생각하고, 체험할 수 있는 '반쪽이의 상상력 박물관 전'나들이에 나서 보자. 상상으로 만들어졌지만 결코 허구가 아닌 시대가 관객을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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