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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과 김시습
2011년 11월 09일 (수) 21:22:03 김종경 kimj@ulsanpress.net
   

다섯 살 때 세종 임금 앞에서 뛰어난 재주를 보여 '오세 신동(五歲 神童)'으로 천하에 이름을 날린 김시습(金時習). 그의 나이 열아홉 되던 해 수양대군(세조)이 조카 단종을 몰아내고 왕위를 찬탈한 계유정난(癸酉靖難, 1453년)이 일어나 바람처럼 구름처럼 전국을 떠돌지 않았다면 울산과 인연을 맺지 않았으리라.
 김시습은 약관의 나이에 방랑길에 나서 전국을 10년을 떠돌다가, 서른을 갓 넘겨 경주 남산의 금오산(金鰲山) 용장사(茸長寺)에서 7년간을 칩거했다. 지금은 절은 사라지고 그 터에 보물 제187호 석불좌상과 보물 제186호 삼층석탑이 남아 있다. 거처는 금오산실(金鰲山室)이라 했다.


 때 마침 금오산에서 과거공부를 하던 울산의 선비 양희지(楊熙止)와 조우했다. 양희지가 문과에 합격하기 3년여 전 신묘년[성종 2년(1471년)]이었다고 한다. 양희지는 학성이씨 시조 이예(李藝)의 손녀 사위. 양희지의 행장(行狀)에 두 사람이 만나 대화를 나눈 사실이 나온다.
 "신묘년에 금오산에서 독서를 하다가 김동봉(金東峯, 김시습)을 만나 열흘 가량 함께 지냈다. 동봉은 꼭 매일 명수(明水)를 갖추고 예불을 하고, 예불이 끝나면 시를 짓고, 시를 짓고 나면 다시 곡을 하며 시고(詩稿)를 불태워 버렸다. 공(양희지)이 '명교(名敎)중에도 악지(樂地)가 있거늘 어찌해서 이와 같이 괴로워 하십니까? 이제 바야흐로 주상께서 밝고 훌륭하셔서 선(善)을 좋아하고, 선비를 사랑하시니 열경(悅卿, 김시습)도 나아가서 벼슬하는 것이 좋겠습니다'라고 말하니, 동봉(東峯)은 흐느끼며 '그대는 세상에 나가 힘쓰오. 광인이 어찌 벼슬에 맞겠소.'라고 했다"고 기록돼 있다.


 김시습은 금오산에서 머물며 마음을 추스르던 감회를 '용장사에 머물며[居茸長寺經室有懷]'란 시에서 읊었다. "용장산은 깊고 으슥하여/ 사람이 오는 것을 볼 수 없구나./ 가랑비는 시냇가 대숲 사이로 흘러가고/ 살랑대는 바람은 들판 매화가 막아주네./ 작은 창 아래 사슴과 함께 잠들고/ 마른 의자에 앉으니 내 몸이 재와 같구나./ 어느새 처마 아래/ 뜨락의 꽃이 졌다가 또 피네."
 금오산 생활이 맞았는가 보다. 모처럼 지친 심신에 평온이 찾아왔다. 인적 드문 금오산 계곡. 사슴을 벗 삼은 휴식과 적요한 산사생활. 시간의 흐름조차 잊었으리라. 공연히 마음을 심란케 하는 비바람을 막아주는 처연하게 핀 들매화도 벗이 됐다. 추호의 동요도 용납하지 않으려는 곧은 마음을 분명 매화에 담았으리라. '매월당(梅月堂)'이란 호가 태어났다.


 숨어서 지낸다고 명성이야 묻힐 리가 있으랴. 어느 날 낯선 손님이 찾아왔다. 세조 10년(1464년) 경 사신으로 온 '준(俊)'이란 일본 승려가 태풍으로 울산의 염포왜관에 발이 묶이자 만나러 온 것. 차를 대접하고 다도에 대한 이야기를 주고받으면서 오랜 친구처럼 화기애애한 시간을 보냈다. '준'은 고국에 돌아갈 때까지 여러 차례 용장사에 왔다.
 '준 장로와 이야기하며(與日東僧俊長老話)'란 시가 남아 있다. "고향을 멀리 떠나니 뜻이 쓸쓸도 하여/ 옛 부처 산꽃 속에서 고적함을 보내누나./ 쇠 다관에 차를 달여 손님 앞에 내놓고/ 화로에 불을 더해 향을 사르네./ 봄 깊으니 해월(海月)이 쑥대 문에 비치고/ 비 멎은 산 사슴이 약초 싹을 밟는구나./ 선의 경지나 나그네 정 모두 아담하나니,/ 밤새 오순도순 이야기 할만 하여라."


 금오산에 머물면서 가끔 인근 고을을 주유했다. 울산에도 들러 염포왜관도 찾았다. '섬 오랑캐의 거처'란 뜻의 '도이거(島夷居)'란 시를 지었다. 송수환이 지은 '울산의 역사와 문화'에 소개돼 있다. "바닷가에서 살아가려고/ 띠풀집 수십 채가 모였네./ 성품은 조급한데 고깃배는 작고/ 풍속도 다르고 말투도 건방지네./ 하늘 끝에 고향을 두고/ 푸른 바닷가에 자리잡아/ 왕화(王化)에 귀의해서 투항해오니/ 왕께서 불쌍하다며 이쁘다 여기시네."


 울산에 들렀을 때 태화루에도 올랐다. 태화루의 풍광을 노래했다. 울산문화원 연합회가 펴낸 '태화루 시문집'에 실려 있다. "높은 누각에서는 멀리 대마도가 보이고/ 끝이 없는 바다는 밤낮으로 물결치네./ 드넓은 하늘에는 구름 한 점 없는데/ 환한 숲에는 마침 귤나무가 우거졌네./ 난간에 기대어 멀리 서쪽 고향 바라보니/ 동녘에서 기둥에 시 쓰며 세월만 보냈구나./ 삼한 땅 두루 다니다 울산까지 왔더니/ 내 마음 아는 이, 한 마리 갈매기 뿐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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