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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를 사랑하는 사람은 인문과 지리에 대한 애정의 넓이와 깊이가 남다르다. 문화재는 과거 인류가 남긴 흔적이자 과학으로는 도저히 규명할 수 없는 과거로의 여행을 가능하게 하는 문화 타임머신이기도 하다. 문제는 문화재에 대한 애정이 아무리 높은 가치를 가진다 하더라도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생존권과 맞부딪힌다면 사정이 복잡해진다. 개발과 보존의 문제가 충돌하는 곳에는 언제나 이해관계가 곰팡이처럼 숨어 있다. 그 충돌지점에서 자라는 종균이 송이버섯일 수도 있고 사악한 독버섯일 수도 있다. 바로 그 첨예한 충돌이 울산을 두고 벌어지고 있다.

 반구대암각화 이야기다. 어제 국회에서 문화재를 너무나 사랑하는 한 단체에서 울산과 울산시민, 울산시장을 무차별 공격했다. 울산시가 실제로는 부족하지도 않은 식수 문제를 빌미로 반구대암각화 보존을 방치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그 단체에서는 한걸음 더 나아가 "울산시민들이 왜 낙동강 물을 더러워서 못 먹겠다고 난리를 치는지 모르겠다"며 낙동강 물을 더 받아 오면 되는 일인데 마치 울산이 생떼를 쓰는 것처럼 주장했다. 이쯤 되면 막가자는 이야기다. 그 단체의 기자회견 내용을 찬찬히 읽어보면 울산시가 낙동강과 태화강이라는 식수원을 주변에 두고 풍부한 수원을 가지고 있으면서 겉으로는 물이 없다고 꼼수를 쓴다는 식이다. 물론 그 단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더 있는 듯 했다. 이른바 토목공사의 대명사인 이명박 대통령이 울산시의 유로변경안을 지지하고 나선 것을 반박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울산시가 '무지몽매'한 대통령에게 꼼수를 부려 700억 짜리 대형 토목공사를 따내려고 한다는 주장이 목적어인 것처럼 들린다.

 최근 울산시가 발행한 홍보책자에 '울산의 미래는 대한민국의 미래다'라는 문구가 있다. 조국 근대화를 이름으로 울산의 산하에 삽질을 시작한지 50년이 흘렀다. 신라천년의 국제무역항으로 저 멀리 아라비아 상인부터 인도, 수나라, 왜국에 이르는 세계 각국의 상선이 '신비로운 기운이 흐르는 땅'으로 기억했던 천혜의 해안이 만신창이가 됐다. 해안은 아무것도 아니다. 평화롭던 마을은 송두리째 날아가고 잠기고 할큄을 당했다. 어떤 곳은 공장부지로, 어떤 곳은 공장에서 쏟아지는 폐수와 시커먼 연기로 참변을 겪었다. 거대한 공업입국을 위해 태화강 상류의 물길이 막히고 오래고 먼 역사는 물속에 잠겼다. 그 세월이 50년이다. 아무도 그곳에 공장을, 말뚝을, 댐을 만들자고 외치지 않았다. 다만, 국가의 미래를 위해, 대한민국의 내일을 위해, 그렇게 해야 한다니까 그렇게 했을 뿐이다.

 50년이 지나자 이제 울산은 공업입국의 전진기지도, 조국근대화의 선봉도 아니다. 용도 폐기된 과거가 됐다. 토사구팽이 정치에만 있는 줄 알았는데 도시도 그런 모양이다. 50년간 잘 써먹었으니 이제 이놈저놈이 막 건드린다. 욕지거리도하고 침도 뱉고, 아뿔사 이젠 툭툭 머리까지 쥐어박고 있다. 울산이 그렇다. 한해 15조원이나 국가에 세금으로 내는 울산이지만 정부는 고작 6,000억 원 정도를 던져주며 살아보라고 한다. 제기랄, 아니 이쯤 되면 육두문자 몇 개쯤은 튀어나올 만하다. 정부가 울산을 이정도로 생각하니 더 이상 할 말은 없지만 시민들이 먹는 물을 가지고 함부로 지껄이는 소리는 참기가 거북하다.

 반구대암각화는 이미 세계인들이 주목하고 있는 인류의 족적이다. 반구대암각화에는 선사 인류에게 고래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알려주는 DNA가 숨어 있다. 아직도 그 유전인자를 해체하고 살펴, 제대로 규명하는 작업을 하지 못하고 있지만 연구자들의 눈빛은 이미 선사시대 인류의 이동경로와 생활사 전반의 밑그림이 반구대암각화에서 스펙트럼처럼 쏟아지고 있음을 안다. 바로 그 신묘한 과거의 증좌가 울산에 있다는 것은 불행한 일이다. 한강 상류 어디쯤에 있었다면 지금쯤 댐 하나 들어내든, 물길을 바꾸든, 무슨 수를 쓰든 떡하니 전시관과 기념관까지 지어 세계문화유산에 올려 놓았을 테니 말이다. 억지스러운 이야기지만 최근의 논란은 그런 상상까지 하게 만든다. 보존의 문제와 물 문제라는 두 가지 난제가 기둥처럼 버티고 있는 반구대암각화는 지금 물 밑에 있다. 물에서 건져내는 일이 무엇보다 우선인데 대통령이 어떻고 낙동강물이 어떻고 시비를 건다. 학자들의 반대가 강경하다고 한다.  40년 전 사연댐 물길 속에서 고래문양을 발견한 이후 저마다 한번쯤은 탁본으로 연구로 지질조사로 고래 살점 한 점씩 뜯어간 이들이 제일 강경하단다. 물이 들어오지 못하게 하는 건 원형훼손이라며, 수위를 낮추는 건 원형훼손이 아니라는 논리다. 고래가 하품할 이야기다. 사연댐을 막아 물을 가둔 건 원형보존인지, 무엇이 원형인지를 정말 모르는지, 아니면 알면서 모른 체하고 문화재로 밥 먹고 사는 이들의 집단 이기주의에 깃발을 올리자는 것인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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