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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기정 선수가 베를린 올림픽에서 우승해 금메달을 목에 걸었던 1936년 여름, 울산 달리에는 도쿄제국대학 의학부 학생들이 중심이 된 농촌위생 조사단이 왔다.
 조선 출신 학생과 일본 학생이 함께 참가한 이 조사단은 7월 1일~8월 18일 무더운 날씨 속에서 마을 사람 전체를 대상으로 위생상태와 생활상을 조사하고 기록했다.

▲ 타작마당에서의 달리 농민들 모습.


 경제상황, 식량과 영양, 주택, 인구구성, 부인 건강, 육아, 체격과 발육, 질병 등에 걸쳐 자세히 조사했고 '조선의 농촌위생조사보고서-울산읍 달리의 사회위생학적 조사'(1940년 발행)를 펴냈다.
 이 조사기간동안에는 미야모토 케타로, 오가와 다 토오루, 무라카미 기요부미 등 '아틱 뮤지엄' 조사원 3명도 달리에 왔다.
 이들은 민속조사와 민속품 수집을 담당했고 농기구, 의복, 생활용구 등을 주로 수집했다.
 
#1936년 달리, 여성들의 초혼연령 17세

'조선의 농촌위생조사보고서-울산읍 달리의 사회위생학적 조사'에 따르면 당시 달리의 여성들은 17세면 통상 결혼을 했고 생활 조건이 저하함에 따라 초혼연령은 낮아졌다.
 계층별로 보면 상층 18.33세, 중층 17.15세, 하층 A급 16.83, 하층 B급 15.9세였는데 생활이 궁핍하기 때문에 딸을 일찍 시집보낸 것으로 보인다.
 이와반대로 남자의 초혼 연령은 급속하게 높아졌는데 빈곤해서 가정을 가질 수 없다는 것을 반영하는 것이다.

 또 달리 부인들의 90%는 출산 당일까지 가사, 농사일 등 노동을 했고 임신 후 회복기간이 1주 이내인 사람도 90.4%나 된 것으로 조사됐다.
 경제생활의 열악함은 발육기의 신장에도 영향을 미쳤다.
 20년 전에 태어난 달리 성년남자 신장은 일본 국내의 성년남자 보다 컸지만 발육기에 있는 아동들의 신장은 어떠한 연령 대에서도 예외없이 일본 국내 아동보다 낮았다.
 이것은 경제 생활의 열악함으로 인한 영양 불량을 반영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단은 체격조사 시에 성인의 체격이 좋은 것에 반해 아동이 열세의 체격을 갖고 있는 것을 보면서 매우 마음 아파했다고 전해진다.
 
▲ 1930년대 울산비행장.


#달리의 주요 마을행사, 나다리

'아틱 뮤지엄' 조사원으로 달리를 찾은 오가와 토오루의 보고서에 따르면 달리에서는 '세서연'이라고도 불리는 마을행사 '나다리'를 모내기 직후 펼쳤다.
 여름을 장식하는 농경행사인 '나다리'에는 마을 주민들이 20전에서 1원 가량의 돈 혹은 콩을 넣은 보리떡, 술 1되 등을 각자 지참한다. 각 호의 머슴들도 모여서 머슴들의 모내기 고생을 위로하는 의미의 연회라고도 한다. 성년에 이르게 된 젊은 이들도 이 때 술을 지참해 잔치에 나오는데 이것은 성년이 되었다는 것을 인정하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이후에 농청이나 품앗이에 나서더라도 한 사람의 어른으로 취급된다.
 이에 대응해 논매기가 끝날 무렵에는 '등풍연', 혹은 '장원예'라는 이름의 떠들썩한 마을 행사가 있었다. 8월 중순에 제3회 공동 논매기가 끝날 무렵, 큰 농가에서는 그 집 논의 논매기를 마치는 날, 소를 끌고 한 집단을 맞이한다. 그 집의 머슴이 얼굴에 진흙을 바르고 머리와 몸에 포플러 잎을 붙이고 소 등에 타면, 일동은 농기를 흔들고 종, 징, 나발 등을 한꺼번에 올리면서 농가에 들어와 마당 중앙에 농기를 세우고, 그 주위에서 춤을 춘다.

 술과 음식이 제공되고 떠들썩한 놀이는 밤까지 계속된다. 이것은 벼농사의 풍년을 비는 것이라 한다.
 이밖에도 음력 6월 첫 용날에는 떡을 찧어 논두렁에 바치는 풍습이 있었고 제당, 물모갑의 돌무덤, 동내산의 노송, 큰새미를 무당으로 해 제사를 모시는 동제도 있었다.
 
#비행장이 보이는 마을, 달리

달리 마을 동쪽에는 비행장이 있었다. 울산에 비행장은 1928년 12월 2일 개방했다. 위치는 삼산평야 일대로 현재 현대백화점 부근에서 달동 문화공원과 남구청 앞 네거리까지 걸쳐있었다.
 면적은 약 20만㎡에, 활주로 길이는 600m였으며 운행도선은 도쿄-오사카-후쿠오카-울산-서울-평양-대련으로 이어졌다.
 울산비행장은 1935년 제2기 공사를 벌여 약 13만㎡를 더 확장했지만 1936년부터 시작된 '조선항공 2기 확충계획'에 따른 대구비행장 설치공사가 시작되면서 폐쇄위기를 맞았다.

 1938년 10월 울산비행장은 폐쇄됐고 불시 착륙장으로만 이용되다 태평양 전쟁이 일어나면서 울산비행장은 1942년부터 일본군 비행훈련장으로 사용됐다.
 현재 달동 경로당 남서쪽에 타작마당이 있었는데 이 곳에서 동네 주민들은 보리 등의 곡식을 말리기도 했고 도리깨를 이용해 타작을 했다.
 마을의 수호신을 모시는 제당은 마을 중앙의 높은 언덕의 아래쪽에 있었는데 1967년 토지 구획정리를 하면서 제당은 서당산(현재 달동주공아파트 일원) 당산나무 아래로 옮겼는데 1980년대 중반 사라졌다.
 이밖에 현재 달동 경로당이 위치해 있던 곳에는 동사가 있었다. 동사는 마을사람들이 모여서 회의를 하던 곳이며 공동작업터였다.

#달리에서 달동으로

광복후 달리에는 일본에서 귀국한 사람들이 주로 정착하게 돼 새로운 마을을 이루었고 1950년 한국 전쟁 시기에 달리는 큰 피해가 없었다고 하지만 전쟁의 영향을 받았다. 울산농업학교 육군 제23병원이 설치돼 부상당한 병사를 치료했다.
 이 시기에 술과 과자류, 간단한 약 따위를 파는 점방이 3곳 있었고 1948년 이발소가, 1950년대 말에는 중국집이 개업했다.

 1962년 울산이 시로 승격되고 같은 해에 특정공업지구로 지정되면서 울산은 빠르게 변화되기 시작했다. 울산이 시로 승격되면서 달리는 달동으로 지명이 바뀌었고 달동은 1967년부터 시작된 토지구획정리를 하면서부터 변화하기 시작했다.
 제1차 구획정리는 1967년부터 1972년까지 시행됐고 이때 달리 마을안에는 사방으로 통하는 여러 개의 길이 생겨나면서 마을 모습이 달라지게 됐다.

 제2차는 1987년부터 1992년까지 달동 2지구와 달삼지구에서 이루어졌는데 논이 있던 자리에 아파트가 들어서고, 백화점이 생겨났다. 밭이 있던 자리에 레스토랑이 생겨나고 방송국이 만들어졌다. 우물이 있던 자리에는 대형마트가 들어섰다. 농업을 생업으로 삼아왔던 사람들은 업종을 바꾸기 시작했다. 달동 일대는 몰라보게 달라졌다. 그러나 1980년대까지 잘동에는 농사짓는 사람들이 있었다.

 1997년 7월 울산은 광역시로 승격했다. 우리나라에서 7번째 대도시로 성장한 것이다. 달동은 도시화가 더욱 진행됐다. 높은 건물이 세워졌고 이곳으로 이주해온 사람들이 더 늘어났다. 현재 달동에는 10월 말 기준 1만2,096세대, 3만671명이 살고 있다.
 이 곳 사람들은 옛 달리 사람들과는 다르게 달동이란 공간을 함께 하고 있지만 각자 다른 생업과 목표를 가지고 살아가고 있다.
 
#75년만의 귀향, 1936년 울산달리

1930년대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이같은 울산의 변화상을 한 눈에 살필 수 있는 곳이 바로 울산박물관이 마련하고 있는 특별기획전시 <75년만의 귀향, 1936년 울산달리> 전이다.
 전시는 여덟 부분으로 나뉜다. 시작 부분은 달리가 왜 주목받고 있고 달리는 어떤 곳인지를 알려주는 전시로 기획했다. 달리 지도와 달리의 역사, 달리 자료의 재발견을 소개하고 있다.
 이어 1936년 농촌위생조사단 참가자와 조사 내용을, 동사·제당·타작마당, 비행장이 있는 당시 달리를 그려볼 수 있게 했다. 여기에 미야모토기념재단의 동영상을 상영, 분위기를 돋운다.

 일본에서 건너온 유물도 선보인다. 이들 유물은 국립민족학박물관에서 '울산컬렉션'이라 불리고 있는 것으로 전체 124점 가운데 78점이 전시돼 있다. 당시 달리의 주택·영양상태·임신·체격·질병 등에 대해 구체적으로 나열돼 있다.
 영상물 등을 통해 달리에서 '달동'으로 변화한 점도 다루고 있다.

 울산박물관 신형석 학예사는 "달리에서 있었던 농촌위생조사와 아틱 뮤지엄 민속조사원의 민속조사 및 민간 생활용품 수집, 영상촬영은 울산 근대사에 있어 매우 특이하고 흥미로운 사건이다"면서 "그 결과물인 조사보고서와 실물, 사진 및 동영상 등을 실제로 만날 수 있다는 점에서 이번 전시는 큰 의미를 갖는다. 울산의 과거를 보여주는 타임캡슐이라 할 만하다"고 설명했다.
 한편, <75년만의 귀향, 1936년 울산달리> 전은 국립민속박물관, 일본 국립민족학박물관과 울산시가 지난 2009년부터 추진하고 있는 '울산 달리 100년' 학술교류사업의 일환으로 마련됐다. 전시는 2012년 2월5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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