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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물이, 국물이 끝내줘요"
몇 해 전, 눈이 소복하게 내리는 창문을 뒤로한 채 따끈한 방 안에 한 여인이 앉아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던 우동 한 그릇을 먹은 뒤 했던 말이다. 이 15초짜리 TV광고가 히트를 치며 온 국민이 '우동의 도가니'에 빠졌고, 광고 속 마지막 대사는 당시 유행어가 되기도 했다. 이 광고 속 여주인공 김현주도 인기에 날개를 달았다. 찬바람이 쌩하니 부는 겨울이면 더욱 간절히 생각나는 음식이 있다. 바로 '국물이 끝내주는' 우동이다. 따뜻한 것으로 뱃속을 채우고 싶어질 때 우동만한 것도 없을 것이다. 이번 주는 울산의 소문난 우동집 '본여우&본정'을 다녀와봤다.


▲ '본여우&본정' 겨울철 인기 메뉴 우동.
#종류도 다양한 우동
일본의 면요리하면 떠오르는 것이 라면과 우동일 것이다. 우동의 유래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하지만 헤이안 시대에 당에서 유학하던 승려 고보(弘法)가 밀과 함께 우동 만드는 법을 일본으로 들여왔다는 것이 통설이다.


 라면과 우동의 가장 큰 차이는 국물의 재료라고 할 수 있다. 라면국물의 주된 재료가 돼지뼈, 닭뼈, 소금, 간장, 된장이라면, 우동국물은 가다랑어포와 다시마가 주를 이룬다.


 일본의 경우 지역에 따라 우동이 큰 차이를 보이기도 한다. 크게 관서(關西·오사카 중심)와 관동(關東·도쿄중심)으로 나뉜다. 관서지방의 우동은 면발이 연하고 말랑말랑하며 끈기가 있다고 알려져 있다. 대표 종류로는 밤에 밤에 동네를 돌아다니며 우동을 파는 '요나키(夜啼) 우동', 나고야 중심의 아이치(愛知)현에서 발달해 나중에 '기시멘'이 된 얇고 납작한 '히라(平) 우동', 가가와(香川)현의 옛 이름인 사누키(讚岐)를 딴 부드럽고도 쫄깃한 면발의 '사누키 우동', 가장 흔한 '오사카 우동' 등이다.


 관동지방은 군마(群馬)현의 '미즈사와(水澤) 우동'이 관동을 대표한다. 다만 관동지방의 우동은 관서 지방에 비해 면이 무르고 쉽게 끊어지는 특징이 있다.


 재료에 따라 이름도 바뀐다. 국물만 넣는 것은 '가케우동', 유부를 곁들이면 '기쓰네(여우) 우동', 튀김 부스러기를 얹으면 '다누키우동', 달걀 노른자를 떨어뜨리면 '스키미우동', 찹살떡을 넣으면 '치카라(힘)우동'. 또 끓이는 방법에 따라 솥에 넣어 끓이는 가마아게우동, 냄비에 끓인 나베야키우동 등이 있다.
 우리나라에 언제부터 우동이 전해졌는지는 정확히 알려져 있지 않다.
 
#3대째 내려오는 전통의 맛, '본여우&본정'
울산에 일본인조차 '고향의 맛'이라고 평하는 우동을 먹을 수 있는 곳이 있다. 바로 남구청 바로 뒷편에 위치한 '본여우&본정'이다. 이곳의 우동은 3대째, 50년 전통을 자랑한다. 이 우동의 비법은 이종원(46) 대표의 할아버지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 대표의 할아버지는 일본 히로시마에서 우동 만드는 기술을 배워왔다. 우동을 업으로 삼지는 않았지만 우동 만드는 기술은 이 대표의 할아버지에서 아버지로 전해졌다. 이 대표는 울산에 음악교사로 내려왔다 '우동 한 그릇 먹으러 청주까지 가야 하나'고 생각, 아예 우동집을 차리기로 마음먹었다. 2004년 우동집을 내기 전, 이 대표는 전국의 우동집을 돌며 우동을 먹었다. 할아버지의 우동보다 맛있는 우동은 없었다고 이 대표는 전했다.


 다른 곳의 우동과 이 곳이 우동의 가장 큰 차이점은 바로 '국물'이다. 국물을 내는 데는 멸치와 다시마 밖에 사용하지 않는다. 100년 전 히로시마에서 판매하던 우동의 원형을 그대로 유지하는 것이다.
 이 대표는 "멸치가 다루기 까다롭다보니 사람들이 가다랑어를 사용하기 시작했는데, 나중엔 가다랑어를 사용하는 것이 원형인 줄로 잘못 알려져 있다"고 설명했다.


 가다랑어를 국물에 사용하면 맛에 깊이가 없다는 것이다. 이 집에서 사용하는 멸치는 일반 다시용 멸치가 아니다. 가장 좋은 멸치를 국물 내는데 사용한다. 원형이 변형된 멸치는 멸치의 비린 맛을 국물에 남기기 때문이다. 본여우&본정의 우동에는 다른 집에서 흔히 보는 쑥갓, 어묵 등의 고명을 보기 힘들다.


 유부와 파, 김이 전부다. 국물만 끼엊어 내는 가케우동인 셈이다. 국물 맛을 보니 깔끔하고 시원하다. 여타 우동국물을 한 입 떠넣었을 때 느껴지는 강한 맛이 없다. 그래서 자꾸 국물 맛이 생각난다.


▲ 고구마가 들어가 달콤한 맛을 느낄 수 있는 여우 돈가스.
 이 대표는 "우동 맛에 자신이 없기 때문에 이런저런 토핑을 얹어서 내는 것"이라며 우동 맛에 자신감을 드러냈다.


 0.5㎜ 정도 굵기의 면은 부드러우면서도 쫄깃하다. 겉은 매끈매끈하고 속은 부드러우면서도 쫄깃한 식감이 있어 자꾸 입맛이 당긴다. 이 집의 면은 소다를 전혀 사용하지 않는다. 대신 '오늘 반죽한 면은 오늘 판매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지킨다. 12~24시간의 냉장 숙성시간을 거쳐야만 쫄깃한 식감이 살아나기 때문이다. 면과 국물이 우동맛의 기본이라면 우동 위에 얹어지는 간장에 조린 유부는 화룡정점이다.


 유부에서는 인공의 단맛은 전혀 느낄 수 없다. 유부는 우동국물의 맛에 영향을 주지 않을 정도의 간이 베였다. 이 집 우동의 이름이 여우에게 홀리듯이 입맛을 홀린다고 해서 '여우우동'이기도 하지만, 일본에서는 여우가 유부를 좋아한다고 알려져 있어 이름에 여우를 사용했다고 한다.


 이 집은 돈가스도 유명하다.
 이 곳에서 판매하는 돈가스는 모두 두 가지. 본정 돈가스와 여우 돈가스이다. 본정 돈가스는 치즈가 안에 녹아있는 것이고, 여우 돈가스는 고구마가 들어있는 것이다.


 화려한 장식이 곁들여진 돈가스는 아니지만 역시 '기본'에 충실하다. 고기는 적당한 두께로 들었고 겉은 바삭바삭하다. 바삭한 튀김옷 안으로는 부드럽고 달콤한 고구마와 돼지고기가 만나 환상의 앙상블을 이룬다. 소스도 맛이 기가 막히다. 다른 곳에 비해 갈색이 옅은 편이다. 강한 맛으로 혀를 자극하지 않는다. 적당히 짭조롬한 맛이 부드럽게 돈가스와 어우러진다. 비결을 물어보니 물은 절대 사용하지 않고 우유로만 묽기를 조절한단다.


 이 대표는 "모든 음식을 만들 때 항상 '기본'에 충실하자는 생각을 갖고 있다. 처음 시작할 때 '기본'에 충실하자는 의미로 가게 이름을  '본정'이라고 지었다. 이러한 생각을 언젠가는 모두 알아줄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여우우동 중 5,000원. 여우돈가스 7,500원. ☎052-268-11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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