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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대왕조를 공식화한 북한이 노동신문 사설을 통해 김정은 띄우기에 한창이다. 위대한 수령에서 경애하는 지도자로 이어진 김씨 왕조는 이제 백두혈통의 계승자 '대장동지' 김정은을 중심으로 하나가 되는 모습이다. '젊은왕' 김정은의 남자들도 전면에 나섰다. 김정일의 영결식장에 나타난 왕의 남자들은 김정일의 치밀한 포석아래 오래전부터 권력승계가 이뤄져 왔음을 드러냈다. 이른바 김정은을 포함한 8명의 포스트 김정일 지도부다. 장성택과 리영호 인민군 총참모장을 중심으로 한 왕의 남자들이 앞으로 김정은의의 든든한 뒷배가 되리라는 점을 인민들에게 알렸다.
 현재 진행형인 북한의 권력세습을 바라보는 시각은 대체로 불편하다. 그 불편함의 속살을 들여다보면 무엇보다 북한 내부의 '변화'를 갈망하는 우리의 시각이 덧칠되어 있다. 변화를 바라는 쪽에서는 '백두혈통'은 어처구니가 없고, 3대세습은 황당할 수 있지만 변화를 원치 않는 쪽에서는 백두혈통에 의한 권력승계는 너무나 자연스럽다. 그러니 북한의 뒷배인 중국은 지도부 핵심 9인방이 모조리 김정일의 영정 앞에 서둘러 머리를 숙인 셈이다.

 사실 김정일의 죽음은 예견된 점이었기에 사람들의 관심은 자연스럽게 김정일 사후에 쏠렸다. 관심사는 무엇보다 그들이 공언한 3대세습이 아무 일 없이 진행될 것인가에 있었지만 역시 아무 일이 없었다. 그 배후는 역시 '왕의 남자'를 중심으로 한 평양정권의 기득권 지키기가 여전히 유효하기 때문이다. 평양 시민은 약 250만명으로 추정된다. 이 가운데 50만으로 추정되는 이른바 '진골세력'은 김씨 왕조의 마지막 보루다. 김씨왕조를 유지하는 이들 50만명은 노동당과 군부의 간부급 직계들로 특별 배급을 받으며 특별한 대우와 지위를 누리는 이들이다.
 바깥 세상의 시각으로는 극히 비정상적인 권력 메커니즘을 가진 북한이 너무나 자연스럽게 3대 세습을 진행하는 것은 바로 이들 진골세력의 완강한 주체의식 때문이다. 이들은 민주주의나 자유에 대한 학습이 전혀 없는 인민들을 주체사상으로 무장시켜 세습군주의 정통성을 통해 스스로의 영달을 꾀하고 있다. 오랜 민주화 투쟁과 다양한 계층간의 이질적인 여론이 툭툭 터져 나오는 남쪽의 상황과는 너무나 다른 세상이다. 그런 세상을 같은 시각으로 바라본다면 출발 자체가 잘못이다.

 1948년 이후 북한은 겉으로는 왕조가 아닌 '공화국'의 시늉은 냈지만 주민들의 입장에서는 김일성 일가가 일제강점기의 일왕이나 조선조의 임금과 같은 동격의 존재일 뿐이었다. 북한은 그런 곳이다. 21세기에 무슨 왕조타령이냐고 쉽게 이야기 하지만 엄연히 북한이라는 곳은 김씨 왕조가 존재하는 군주국가다. 그런 상황이니 김정은이 27살이든 말든 '왕세자'로 책봉된 이상 3대 세습은 자연스러울 뿐이다. 물론 이같은 상황은 비극이다. 그 비극의 상황을 인정하지 않는 세력이 남쪽에도 존재한다는 사실도 비극이다.
 또다른 비극도 있다. 21세기 한반도의 상황은 적어도 휴전선 북쪽의 경우에는 14세기 조선 개국 당시와 너무나 닮아 있다. 고려왕조의 무능과 부패를 응징하고 도탄에 빠진 백성의 삶을 구원하겠다며 역성혁명을 꾀한 이성계는 자신의 정통성을 내세우기 위해 스스로 뒷배를 만들었다. 그 하나가 자신과 이씨 일가에 대한 우상화였고, 다른 하나가 권위를 명나라에 의탁하는 사대외교였다. 지금 북한이 그렇다. 백두혈통의 이름으로 김일성과 김정일을 신격화하고 그 직계인 김정은을 김일성의 '아바타'로 둔갑시키고 있다. 물론 중국의 뒷배를 튼튼히 하려는 김정일의 잇단 중국행도 14세기 조선과 묘하게 닮아 있다.

 결국 이 모든 사정을 지금 북한의 권력 핵심부들도 잘 알고 있다는 것이 문제의 핵심이다. 자신들이 멸시하는 남조선이 자신들 보다 비교대상이 되지 않을 만큼 잘 살고, 자유스럽다는 것을 잘 알기에 왕의 남자들은 불안하다. 그 불안이 느닷없이 핵실험으로 포격으로 터져나오지만 그런 것들 역시 불안의 증좌이기도 하다.
 이런저런 사실들을 알기에 앞으로가 더 답답하다. '유훈통치'라는 이름으로 왕의 남자에 가려진 김정은의 생각이 무엇이든 이미 북의 지배층은 불안과 공포에 머리를 싸매고 있다. 그 불안과 공포는 다름 아닌 자신들이 알고 있는 그 모든 정보들이 평양 진골이 아닌 다른 인민들에게로 전해질 수 있다는 사실 때문이다. 지금 북한 정권의 수뇌부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다. 인민을 살리기 위해서는 개방이 해결책이라는 사실을 잘 알지만 개방 이후의 후폭풍이 두렵다. 그러니 더욱 옥죄고 다져 인민을 주체사상으로 무장시키는 것이 유일한 해결책일 뿐이다. 핵실험이든 제2, 제3의 연평도 포격 역시 주체의 강화를 위해 무모하지만 필요하기에 답답하다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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