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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땅 옛글의 향기]20. 천파(天坡) 오숙
솔직하고 간결한 문체로 밝고 고요한 정취 시로 남겨
2012년 01월 03일 (화) 21:17:55 김종경 kimj@ulsanpress.net
   
▲ 오숙은 조선후기 문신으로 유학을 장려하고 청렴한 삶을 살았다. 뛰어난 문장가로 알려진 그의 기행문은 간결하고 명료하며 활달하다. 경상도 관찰사로 울산에 들러 서생포성에서 그 풍광과 감회를 읊은 '서생포 성루에서'란 시를 남겼다.

"공무(公務)로 떠나온 길, 다시 천리 밖/ 여기는 바다 멀리 외딴 곳이네./ 신선은 참으로 팔자에나 있는건가/ 시름 풀고 마음 달래려도 재주가 없구나./ 풍진 휩쓴 성루는 쓸쓸하기만 하고/ 파도는 우주 생겨나던 그 때 그 모습./ 마루에 기대어 감회에 젖노니/ 비껴부는 피리소리, 슬픈 가락은 불지 마시게." 오숙이 경상도 관찰사로 울산에 와 서생포성에 올라, 그 풍광과 감회를 읊은 '서생포 성루에서[西生浦次板韻]'란 시다. 울산광역시가 펴낸 한시선집 '태화강에 배 띄우고(송수환 번역)'에 실려 있다.

오숙은 공직생활 중에도, 시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강서사에서 짓다(題江西寺)'란 시를 보자. "공무에서 벗어나 서호에 배 띄우고/ 친구들과 한 배 타니 외롭지 않아라./ 유월 천지는 불같은 사바세계/ 하늘 위 누각은 밝고도 맑은 고을/ 강물은 길게 흘러 고금을 지나는데/ 온갖 사물 유유히 본질에 드는구나./ 종소리, 경쇠소리 속에 향불 쓰러지는데/ 눈에 가득한 스님들 모두가 시를 짓는다." 그에게 시 짓는 일은 관리로서의 나태와 부패를 막는 소금 역할과 삶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게 하는 도구로서 쓰였다.
 
# 관직생활의 긴장감을 시와 문장으로 달래
그는 문학에 조예가 깊었다. 문장이 활달하고 간결함은 물론 서술이 솔직했다. 그러므로 글의 뜻을 쉽게 이해할 수 있었다. 시에서는 특히 기유시(紀遊詩)에 뛰어났다고 한다. 기행과 유람에서 보고 느낀 감회를 진솔하게 풀어냈다. 밝고 맑고 그윽한 서정성이 돋보인다. 그러면서도 세상살이의 어려움을 적절한 비유법을 들며 예리하게 표현했다.

 '용산초정(龍山草亭)'과 '여름밤(夏夜)'이란 시를 보자. "온 하늘에는 가을 달빛 맑은 강 비추고/ 초정은 비어 차가워서 작은 창문 닫아본다./ 부드러운 노젖는 소리, 물결은 언덕으로 튀는데/ 기러기떼 놀라 일어나 미처 짝을 찾지도 못한다." "정원은 어찌 이리도 적막한가/ 의자에 앉은채로 밤이 깊었다./ 날이 더워진 뒤로부터/ 달빛이 차가움을 다시 느낀다./ 잠 자야 할 새는 때때로 나타나고/ 흐르는 반딧불 여기저기로 사라진다./ 시는 지었으나 구절이 온당치 못하니/ 우리의 갈 길은 참으로 어렵기만 하다."

 그의 기행문은 간결하고 명료하며 활달하다. 안강에 있는 이언적의 독락당과 옥산서원 일대를 둘러보고 지은 '유옥산서원기(遊玉山書院記)'를 보자. "독락당 아래에 관어대가 있다. 관어대는 세심대와 비슷한데 바위색이 더욱 맑고 윤기가 있으며 영귀대와 마주 하고 있다. 영귀대 북쪽에 연지(蓮池)가 있지만, 지금은 버려져 있다. 연지와 영귀대 아래위에는 소나무와 대나무가 푸르고 울창하다. 모두 선생이 적접 심은 것이라 한다. 계정에서 북쪽으로 수십 보를 가면 정혜사(淨慧寺)가 있다. 정혜사는 원나라 순제(順帝) 때 지은 것이라 한다. 대웅전의 불화가 기이하고 예스러워 볼 만한데, 선생이 독서하던 곳이다. 법당의 북쪽 창에는 선생이 손수 쓴 글씨가 있다. '말은 공경함이 있고 행동에는 법도가 있다. 새벽에 얻는 것이 있어 낮에는 실천을 한다. 잠시라도 수양하고 쉴 때에는 마음을 안존함이 있다. 생각에 사특함이 없어서 바름으로 마음을 수양하고 곧음으로 기운을 기른다.' 정혜사에서 조금 동쪽에서 징심대와 탁영대를 구경했다. 그윽하고 빼어난 정취가 관어대와 으뜸을 다툰다."
 
# 약관의 나이에 문장가로 명성 떨쳐
오숙은 임진왜란이 일어난 해 선조 25년(1592년)에 태어나 인조 12년(1634년)에 숨졌다. 본관 해주(海州). 자 숙우(肅羽羽). 호 천파(天坡). 광해군 4년(1612년) 21세에 문과에 급제한 뒤, 곧 승문원의 권지정자(權知正字)에 올랐다. 당시 문장가로 유명한 이정구(李廷龜)와 이항복(李恒福), 이덕형(李德馨) 등이 모인 자리에서 명나라에 보 낼 진주문(陳奏文)을 초안했는데, 문장이 뛰어나 이덕형의 천거를 받아 설서(說書)에 승진한 것은 유명한 일화(逸話)다. 그 뒤 예조좌랑으로 있다가 어진 정치를 볼 수 없다며 벼슬을 버리고, 장유(張維)와 이명한(李明漢) 등과 교유하며 삼각산에서 독서에 전념했다. 광해군 11년(1619년) 다시 벼슬길에 나서 병조좌랑이 됐다. 다음해 괴산군수로 있으면서 굶주리던 수많은 백성을 구했다. 인조가 즉위한 뒤, 지평(持平)과 수찬(修撰), 교리(校理) 등을 거쳐 호당(湖堂)에 들어갔다.

 인조 4년(1626년) 청주목사를 지냈으며, 우승지와 형조참의, 여주목사, 예조참의를 거쳐 경상도 관찰사로 나갔다. 이어 좌승지 겸 승문원 부제조, 황해도 관찰사를 역임했다. 인조 12년(1634년) 명나라 사신의 접반사로 가도에 갔다가 돌아오는 도중에 송도에서 죽었다. 향년 43세. 인조는 그의 죽음을 애석히 여겨 이조참판 겸 양관 제학에 추증케 했다.
 저서는 4권 4책의 문집 '천파집(天坡集)'이 있다. 사후 10년이 된 인조 24년(1646년)에 아우 오빈이 진주목사로 있을 때 간행했다. 42세로 단명한 문인으로서는 590여 수의 많은 시를 남겼다. 태반이 기행과 유람을 하면서 본 풍광과 감회를 표현한 기유시(紀遊詩). 그의 시는 품위를 갖춘 가운데 그윽하고도 고요한 정취를 간직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 치밀한 관찰력으로 '기유시(紀遊詩)' 지어
'임진(臨津)'과 '쌍계(雙溪)' 두 곳을 묘사한 시를 보자. "한 돛대에 봄바람 불어 부두가에 의지하니/ 나그네 마음 괴로워라 근심 절로 생기네./ 당시의 전쟁에 죽은 백골은 어디 있는지/ 만고의 찬물결만 끝없이 흘러만 가는구나./ 적벽에는 소동파의 글만이 전하고/ 푸른 비탈에는 아직도 이태백 놀던 자취로구나./ 갈림길 이르니 낚시질하는 나그네가 부러워/ 해는 이끼 낀 돌을 향해 갈매기와 친구가 되는구나."

 "세상 밖 천년의 절/ 구름 속 백척 높은 누각/ 올라보니 끝없는 풍광/ 나그네 다시 와 노니노라./ 내가 드린 말, 스님은 아직도 외고/ 벽에 쓴 이름, 그대로 남아 있네./ 가을 바람 부는 석문 앞 길에/ 햇빛 밝으니 다시 맑은 근심이 이네./ 층층누대, 굽은 난간에 기대서니/ 산색은 검푸르고 해는 지는구나./ 방장산 신선이여, 누가 선약을 캐었는가/ 신라 학사 최치원은 비석만 남겼구나./ 물안개 깊은 옛 고을에 매미소리 모이고/ 고요한 숲 빈 터, 새들 그림자만 한가하다./ 나그네 마음 속, 시흥은 무르익어/ 가을이 되니 물과 돌이 더욱 맑고 기이하다."

 전조(前朝)의 왕도였던 송도(松都)를 찾아가는 감회를 읊은 시를 보자. 송도 가는 길에서(松都路上)이란 시다. "길은 거친 황무지로 접어들고 날은 저물어/ 시 읊는 내 마음 애오라지 다시 가는 말에 의지하네./ 산빛은 아득하여 마음 아프도록 곱고/ 패업의 기운 쓸쓸하여 눈에 가득 안타까워라./ 한 때의 고관들 옛 무덤에 남아 있고/ 천년의 커다란 집들은 거친 밭이 되었구나./ 선죽교 곁 길에서 사람 만나/ 흥망의 일 말하려다 문득 망연해지는구나."

 '춘천(春川)'이란 시도 보자. "땅이 다하고 하늘이 열려 만물이 비었는데/ 여정(旅情)이 다 시의 소재이니 무엇을 지을까보냐./ 언덕과 산의 사나운 기운 얼음과 서리에 있고/ 들판의 부드러운 바람은 예맥인의 여풍이로다./ 나는 듯한 누각은 오로지 신선 맞는 곳이요/ 한가로운 구름은 모두 군영을 보호하는 울타리로다./ 맥맥이 이어가는 우두 고을 좋은 경치 찾아 보며/ 다만 벼슬 버리고 이곳에 살고 싶어 글을 짓어보노라."
 
# 맑고 고운 절창의 서정시도 남겨
그의 시는 기유시만이 대단한 것이 아니다. 맑고 고운 시심을 표출한 서정성 짙은 시는 그야말로 동심을 갖지 않는다면 쓸 수 없으리라. '가는 봄이 아쉬워[惜春]'란 시를 원문과 함께 보자. "花受微風墜/ 春從小雨歸/ 園禽如有意/ 終夕繞林飛(꽃은 미풍에 지고/ 작은 비에도 봄이 간다./ 정원의 새, 무슨 뜻 지닌 듯/ 저녁 내내 숲을 돌며 나는구나." 그렇다면 '비 온 뒤(雨後)'란 시는 어떤가. "田園春雨歇/ 山郭夕陽多/ 物色更如此/ 襟懷當若何/ 蒲靑生渚葉/ 菜白萬畦花/ 倚仗吟詩處/ 離離暈影過(전원에 봄비 그치니/ 산 둘레에 석양이 짙다./ 물색은 다시 처음 같은데/ 마음 속 생각은 어떠하리오./ 창포잎 푸른데 물가에 잎나고/ 채소꽃 하얗게 온 밭둑에 꽃핀다./ 지팡이 짚고 시 읊으며 있는 곳/ 구름 그림자 길게길게 지나간다.)"

 '무릉동(武陵洞)'이란 시도 보자. "步入桃花下/ 柴扉問主人/ 夕陽迷去路/ 一笑武陵春(복숭아꽃 아래로 걸어가/ 사립문에서 주인에게 물었소./ 석양에 돌아갈 길 잃었지만/ 무릉의 봄, 기분 좋아 웃었소.)" '흥겨워서(漫興)'란 시도 보자. "深巷草屋絶低小/ 書床竹盆一窓間/ 南隣好客幸來過/ 相與接膝猶語(깊숙한 골목 초가집은 작고도 나직한데/ 책상과 대나무 화분 창문 사이에 놓여 있소./ 남쪽 이웃 손님 요행히 지나다 들리는데/ 무릎 맞대고 더불어 앉아 이야기 정겹다오.)"

 눈에 선연히 떠오르는 시골풍경을 스케치하듯 표현한 '늦어서 날이 개다[晩晴]'란 시는 서정시의 한 경지를 내보이고 있다. "조금씩 구름은 그림자 옮아가고/ 희미하게 나무들은 그늘지는구나./ 들판은 향기로운 풀맛을 머금고/ 마을에는 늙은 농부의 마음 보인다./ 산새는 저녁 숲으로 돌아오고/ 못 속의 물고기 물이 깊어 좋아라./ 청려장 짚고 언덕에 오르니/ 애오라지 다시 한 번 한가히 읊어본다."

 오숙은 경상도 관찰사로 도내를 순행하면서 울산에도 들렀다. 공무의 틈에 울산의 풍광을 묘사한 시를 지었다. '울산 풍경, 유천 상공의 운을 따라[蔚山次柳川相公韻]'란 시를 보자. 한시선집 '태화강에 배 띄우고'에 실려 있다. "훌륭한 건 조물주의 넉넉한 솜씨인데/ 용 무늬 깃발이 다시 학성을 굽어보네./ 동쪽 하늘에 아침해가 떠올라/ 광야를 휘감으며 골짜기를 비추누나./ 산에서 내려다보니 마음이 상쾌하여/ 늘그막 흰 귀밑머리도 근심되지 않는구나./ 임금 은혜 보답한다면 벼슬도 내던지리니/ 부러워한지 오래로다, 안빈낙도 옛 사람 삶."

 그가 남긴 서정시를 보면 고결하게 살다가려 한 삶의 지향점을 알 수가 있다. '중양절의 감회를 읊으며(重陽日詠懷)'란 시를 보면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분수도 모른 채 봉래산의 신선을 의지하려 했더니,/ 귀밑털이 희어 세월의 빠름을 알려주네./ 경치는 어느새 모자를 날리던 중양일이 되어/ 높은 누각에 오르니 이게 바로 망향대일세./ 큰 술잔 기울려 보나 옥죄는 근심은 사라지지 않고/ 탐스럽게 핀 국화송이들만 눈물 어린 눈으로 바라보네./ 사람의 일에 대한 소식은 모두 꿈만 같은데/ 저문 하늘에 날아가는 기러기는 애틋한 소리를 흘려보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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