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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가 밝은 지 벌써 며칠이 지났다. 방송과 신문은 연일 '60년 만의 흑룡띠 해'라며 열을 올리고 사람들은 저마다 희망과 복을 가득 담을 듯 호기심에 차 있다. 그냥 용띠도 아니고 흑룡띠란다. 띠는 음력 기준이니 아직은 신묘년 토끼띠 해일텐데 지나친 상술에 그냥 놀아나고 있는 것이다.
 언론의 호들갑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흑룡의 해가 60년 만에 온 것이란다. 지극히 당연한 말을 교묘하게 포장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10간 12지의 최소공배수 개념을 알면 매년 육십갑자는 당연히 60년 만에 되풀이 된다. 해마다 60년의 무슨 띠의 해라고 하는 표현은 너무 식상하다.
 차라리 시간을 거슬러 60년 전 올해에는 어떤 일이 있었는지 찾아보고 살아갈 날의 교훈으로 삼아 보자. 돌아보면 1232년 임진년에 몽골의 침입이 있었고 1592년은 임진왜란, 1952년의 한국전쟁 기간이었던 임진년은 흉년이었다.
 또 글로벌을 그렇게 강조하던 언론이 서양에서는 용이 악의 화신이라는 사실은 왜 말하지 않는지 궁금하다. 올해는 또 3년 만에 윤달이 들어 있다. 4월 21일부터 5월 20일까지가 음력 3월 윤달이다. 그때 또 언론은 윤달을 피하고 1년 내내 용띠 아기를 마구 낳으라고 할건가? 윤달엔 혼사를 하지 말라고 할건가?

 이미 언론과 상술은 황금돼지 해, 백호띠, 황룡의 해라면서 출산 붐을 부추긴 이력이 있었다. 희한한 상술에 놀아났던 결과다. 설사 흑룡의 해에 태어난 아이가 좋은 기운을 타고난다고 하자. 유치원부터 대입, 취업, 결혼까지 높은 경쟁률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출산 장려만 하기엔 우리 사회가 그리 좋은 환경도 아니다. 물가와 사교육비는 치솟기만 하고 대학등록금과 전세난, 청년백수와 실업문제는 해결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총선 대선의 해를 맞아 정치는 요동치겠고 경제는 언제 펴질지 모른다. 잠자고 먹고 입고 사는게 너무 힘들다 하지만 누구도 서민에 대한 햇빛은 제시하지 않는다.
 지금은 그냥 새해이다. 엄밀히 말하면 임진년은 음력 1월 1일, 설날이 시작이다. 아니면 입춘 이후가 맞는 것이다. 그때 가서 검은 색 또는 겨울을 상징하는 '임'(壬)과 용을 뜻하는 '진'(辰)이 만난 '임진년 흑룡의 해'라는 의미를 부여해도 늦지 않을 것이다.

 새해마다 국운상승이라는 기원을 담아 좋은 한해를 보내자는 바람을 갖는 것이야 이해 못할 바 아니지만, 모든 언론이 얄팍한 상술이 낳은 잘못된 믿음과 속설에 부화뇌동할 필요는 없다. 각자 희망찬 새해를 설계하고 건강한 아이를 낳아 바르게 키울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일, 새해에 우리 언론이 가장 우선해야 할 의제가 아니겠는가?
 언제나 그랬듯이 누구나 새해에 거는 기대는 크기 마련이다. 하지만 세상은 늘 복잡하고 예측불가능하며 나의 의지대로만 굴러가지 않는다. 다만 우리가 처한 환경을 개선하고 더 나은 내일을 기대할 뿐이다. 오늘은 힘들고 미래는 불투명한 것. 그럴수록 새해가 되면 우리는 모두 뭔가 다른 세상을 기대한다.
 그래서 희망의 새해이다. 그마저 없다면 삶의 활력은 물론이고 의욕마저 잃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새해 띠동물의 의미를 찾아 상서롭게 해석하는 일은 기분 좋은 일이다. 다만 잘못된 상술에 미신까지 겹쳐져 양력에 억지로 끼워맞추니 과유불급이 될까 걱정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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