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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이 수액 채취 제철
한 겨울 동안 수분을 있는 힘껏 끌어들인 고로쇠가 제철을 맞았다. 구정이 지나고 3월의 끝자락까지가 그 시기인데, 지금이 딱 좋은 시기다.
 한파가 차츰 물러나고 날이 따뜻해지자 가지산고로쇠작목반원들이 고로쇠 채취 나들이에 나섰다. 고로쇠 채취 작업이 아닌 '나들이'다. 설이 지나고 열흘 정도 집중해 대부분 작업은 완료됐지만, 가끔 들러 맛보는 고로쇠 물이 그렇게 꿀맛이라 이날 작업은 '소풍'이란다. 지난 14일. 그칠 듯, 말 듯 한 비가 보슬보슬 내리던 날. 7명의 반장들은 배낭을 메고 만반의 준비를 했다. 소형 사이즈 드릴과 호스를 연결하는 콜크, 호스, 그리고 고로쇠를 담을 커다란 통을 손에 쥐고 입산한다.


   
▲ 가지산 고로쇠 작목반원들이 가지산 보물 '고로쇠 수액'을 채취하기 위해 울주군 상북면 배내골 주암마을을 출발해 고로쇠 나무가 군락을 이룬 심종태 바위 일원으로 오르고 있다. 유은경기자 usyek@ulsanpress.net


 출발지는 울주군 언양읍 배내골 주암마을. 울산에서 고로쇠는 석남사와 배내골, 소호리 등에서 채취한다. 차를 타고 굽이굽이 언덕을 넘어와 도착한 곳이기에, 마을 분위기는 더욱 고즈넉하게 느껴졌다. 이날은 날이 흐려 안개가 낀 상태였는데, 산능선을 따라 형성된 구름을 보고 있자니, 산신령 놀음 부럽지 않았다. 
 "가지산, 생명의 물 고로쇠가 흐르는 곳~" 듬직한 체구의 한 반장님이 콧노래를 흥얼거리기 시작한다. '고로쇠 사모곡'이라고 해야 할까. 고로쇠에 대한 애정이 깊이 담긴 예찬가. 반장님의 노랫말만 들어도 달큰한 고로쇠 물이 입 안 가득 고이는 것 같다.


   
파이팅을 외치고 있는 가지산 고로쇠 작목반원들(왼쪽부터 여인양, 홍양선, 이병관 총무, 박원문 회장, 전양복).


 겨울이라 산은 차가웠다. 차가운 공기를 들이마시며 하얗게 얼어붙은 계곡을 따라 걸어갔다. 걷다보니 까맣고 긴 호스가 눈에 띤다. 평소 등산을 하면서도 자주 볼 수 있었던 호스다. 그런데 이것이 바로 고로쇠나무와 나무를 이어 고로쇠물이 작업창고까지 전달하는 중요한 연결고리란다. 두께 12mm의 얇은 호스 안으로 고로쇠 물이 흐르는 것이다.
 고로쇠나무를 찾아 나서는 길은 험난했다. 평소 산을 잘 타지 않기에 산행은 더욱 어렵게 느껴졌다. 임시로 마련한 통나무다리를 건널 땐 혹여나 넘어지기라도 할까봐 아찔했다. 이 많은 나무 중 도대체 고로쇠나무는 어디에 있을까. 그런데 심상치 않은 나무 한 그루가 보인다. 사람이 봉지우유에 빨대를 물고 있는 양, 나무에는 기다란 호스와 고로쇠 물이 담긴 비닐봉지가 달려 있었다. 
 
# 덜큰하고 속시원한 맛
작목반원 2~3명이 나무 한 그루에 모여들기 시작했다. 한 사람은 드릴로 구멍을 뚫고 보조자 두 명은 호스와 통을 들고 대기하고 있었다. 한 그루당 3개의 구멍만 뚫을 수 있다는데, 자연보호 차원에서 산림청이 그렇게 제한해 놨단다. 적정한 구멍의 깊이는 2cm. 구멍을 뚫고 호스를 연결하니 그 사이로 고로쇠 물이 한 방울씩 떨어지기 시작했다.

 "가지산 보물 납시오~"

 작목반원들의 목소리가 점점 높아진다. 그 어느 때보다도 즐거운 목소리다.  고로쇠 물 한 컵 담아 건네준다. 밤 새 고로쇠나무가 한껏 끌어들인 싱싱한(?) 물이다. 즉석에서 뽑아낸 고로쇠물의 맛을 보니 '청량음료' 부럽지 않았다. '달큼하다'라는 표현이 제격이다. 설탕물이 '달콤' 하다면 고로쇠물은 '달큼'하다고 말할 수 있다. 작업반장님들은 이런 맛을 두고 '덜큰하다' 라고 표현했다. 달큰하든, 덜큰하든 어쨌든, 고로쇠 물은 평범한 물은 아닌 듯 싶다.
 
   
봄의 전령인 고로쇠 수액 채취가 한창이다. 울주군 상북면 가지산 자락에서 가지산 고로쇠 작목반원들이 고로쇠 나무에 구멍을 뚫고 호스를 연결해 비닐봉지를 달아 수액 채취 준비를 하고 있다. 고로쇠 수액으로 만든 닭백숙은 그 맛이 일품이다.

# 추워도 바람불어도 나오지 않아
가지산 일대에 연결된 고로쇠나무 호스는 100km가량 된다. 50여명으로 구성된 가지산고로쇠작업반은 구정이 지나고 10일 동안 호스를 연결하는 작업에 몰두했다. 일반 평지에 연결하는 것도 힘든 작업인데, 험난한 산을 타고 이 호스를 연결했단다. 게다가 고로쇠나무는 바위와 바위사이에서 자라는 나무라 작업은 더욱 어렵다. 노고를 생각해서라도 고로쇠 물은 반드시 맛있게 마셔야 할 것 같다.

 고로쇠나무에서 물이 나오는 원리는 줄기 안쪽에서 이뤄지는 '수축 운동'이다. 밤 중 기온이 내려가면 나무는 땅 속 수분을 흡수해서 줄기 안으로 보내려 하는 힘을 받게 된다. 이와 반대로 낮이 되면 기온이 올라가 수분과 공기가 팽창해 나무에서 물이 나오는 것이다.

 그런데 고로쇠도 아무 때나 나오는 게 아니란다. 한 때 정수기 광고에서 유행했던 '깐깐하다'라는 말이 생각났다. 고로쇠는 날씨가 추운 날에는 물론, 바람이 부는 날에도 나오지 않는다. 무조건 따스한 햇살을 받을 때만 물이 나온다 하니 '깐깐한 정수기'에서 나오는 물 만큼이나 몸에는 좋겠다라는 생각이 든다. 아니 고로쇠는 자연에서 만들어졌으니 비교 대상이 될 수 없겠다.
 
# 골다공증·변비등에 효험
   
 

심종태 바위까지 올라가 작업을 마치고 다시 마을로 내려왔다. 고로쇠로 만든 닭백숙이 준비 돼 있으니 먹고 가란다. 고로쇠로 만든 백숙 맛이 보통 맛이 아니라고 연신 강조한다. 즉석에서 닭을 잡아 오가피, 헛개나무, 구지뽕 등 각종 한약재를 넣고 고로쇠도 넣는다. 물과 고로쇠의 비율은 3:1 이어야지만 제대로 덜큰한 맛을 낸단다. 국물 한 술 떠서 먹어보니 맛이 심상치 않다. 한약재 맛이 나면서도 달달한 게 한 번 먹기엔 아쉬운 맛이다. 맑은 공기를 마시며 먹는 고로쇠 닭백숙 맛은 그야말로 일품이었다,

 작업을 하는 동안 반원들은 고로쇠가 아니라 골병쇠라고 장난 섞인 말을 하기도 했다. '골병쇠'인 이유는 작업이 쉽지 않기에 일을 끝내고나면 골병이 들기 때문이다. 그러나 고로쇠 물 한 잔 마시면 피로는 싹 가시기 때문에 이 일을 한다고 말했다. 몸에 좋은 효능을 하는 것은 당연하다. 특히 골다공증에 좋다는데, 고로쇠 채취로 골병든 몸 고로쇠 물 마시며 회복하면 딱 이겠다.

 고로쇠는 변비에도 효과적이다. 장에 큰 작용을 하는 것은 고로쇠가 몸 속 노폐물을 싹 씻어내려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물보다 상대적으로 많이 마셔도 무관하다.
 과학적으로 입증된 사실은 없지만 고로쇠 물은 고혈압을 낮추는 데에도 효능이 있다고 알려져 있다. 스트레스 해소에도 좋으며 여성의 산후조리에도 도움을 준다,

 가지산고로쇠는 '가지산 고로쇠 축제'로 울산 시민들에게 친근하게 다가가고 있다. 10여년째 이어지고 있는 축제는 시민들의 많은 사랑을 받고 있지만, 올해는 아쉽게도 축제가 열리지 않는다. 그러나 고로쇠 물을 맛 볼 수 있는 기회는 있다. 오는 3월 1일부터 11일까지 울산원예농협 하나로마트에서 고로쇠 판매 홍보행사를 하기 때문이다. 한 말에 보통 50,000원인데, 이 기간만큼은 40,000원에 판매한다. 고로쇠 전문가인 50여명의 작목반원들이 직접 판매에 나서 홍보를 한다고 하니, 고로쇠 효능부터 채취과정까지 다양한 정보를 얻을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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