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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FTA가 4·11 총선의 핵심 쟁점으로 급부상했다. 여론조사에서 우위를 보이는 야권의 공세는 전면전 양상이다. 한명숙 민주통합당 대표의 입이 거칠어지기 시작하면서 소총수들의 엄호사격이 연일 불꽃을 튄다. 한 대표는 "한미 FTA에 대해 침묵하거나 옹호하고 두둔하는 세력에게 정권을 맡길 수 없다"고 말했다. 집권하면 폐기하겠다는 초강수를 들고 나온 후속타다. 총알이 향하는 곳도 명백하다. "여당일 때는 FTA를 추진한다고 해놓고 이제는 선거에서 이기면 FTA를 폐기하겠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에게 나라를 맡길 수 없다"는 박근혜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의 발언을 정조준 했다. 양쪽 다 나라를 맡길 수 없다는 결론은 같다.
 돈봉투와 측근비리로 만신창이가 된 새누리당은 반색하고 있다. 차떼기당을 씻어내고 돌아서자 돈봉투에 비리당으로 오물을 덮어쓴 마당에 반전의 기회마저 오지 않을까 노심초사하던 판이라 더 그렇다. 죽으라는 법은 없다 싶은지 매일 아침 야당의 FTA 폐기 주장을 물고 늘어진다. 아뿔싸, 수읽기를 착각한 야당은 일단 한발 빼는 모양새다. 폐기는 마지막 카드일 뿐, 우선은 재협상이 당론이란다. 여론조사가 한몫을 했다. 박 위원장 발언이 나온 직후 실시한 긴급 여론조사에서 '야당의 한미 FTA 폐기 주장'에 대해 '바람직하지 않다'가 47%로 '바람직하다'(44%)를 근소하게 앞섰고 '박 위원장 발언에 공감한다' 56%, '공감하지 않는다'가 34%로 나타난 것으로 전해졌다.

 이명박 정부의 온실에서 분갈이를 해온 여권에게 더없이 좋은 호재다. 정치는 타이밍이다. 하늘과 사람의 기운이 절묘하게 꿈틀거릴 때 적절한 바람과 빛을 불어넣어야 생명력을 얻는 것이 정치다. 잔인한 4월, 코앞에 있는 총선을 앞두고 하필이면 FTA 뇌관부터 건드린 건 일견 야당의 실책이다. 문제는 또 있다. 지금 폐기를 외치는 사람들의 면면이다. 한미 FTA를 주도했던 노무현 정부 때 그들은 이른바 노른자위를 차고 앉아 있었다. 앉아 있기만 했던 것도 아니다. 한명숙 대표는 노무현 정부 총리 시절인 2007년 1월 30일 '한미 FTA 민간대책위원회'에서 "한미 FTA는 반드시 성공적으로 마무리해야 된다는 것이 정부의 입장이다"고 말했다. 노무현 정부에서 통일부 장관을 역임하는 등 정권의 실세로 활동했던 정동영은 어떤가. 그는 한미 FTA 협상 타결을 이틀 앞둔 2007년 3월 31일, 국회 앞에서 기자들과 만나 "우리의 미래를 위해서 이것을 적극적인 도전 기회로 삼아야 된다"고 했고 열린우리당 대통령 후보 시절이던 같은 해 11월 6일에는 "공격적으로, 도전적으로 개방의 파도를 넘자"는 말로 부연설명까지 했다.
 손학규 전 대표도 자유롭지 않다. 그는 한미 FTA 체결 다음 날인 2007년 4월 3일 "한미 FTA를 계기로 해서 국론 통합에 나서야 할 것"이라고 했고, 같은 해 8월 20일엔 "이제 우리 사회 지도층이 이 문제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나서야 된다고 생각한다"고 적극적인 지지를 밝혔다. 이 뿐만이 아니다. 정세균 유시민 문재인 등 '노무현의 아이들'은 한결같이 한미 FTA 찬양론자로 나섰고 그들의 발언과 몸짓, 표정이 활자와 영상으로 기록돼 있다. 하기야 어제 한 말과 오늘의 말이 다를 때 늘 쓰는 묘책이 있으니 별 걱정이 없는 듯하다. 바로 상황논리다. 어제의 상황과 오늘의 상황이 다르다는 고전정치학의 말장난 논리는 그들의 전가의 보도 아닌가.

 뒤늦게 실책을 알아차린 야당 지도부가 바빠졌다. 상황논리를 보다 적극적인 공세로 연결하고 얼굴 표정은 더 근엄하게 갖추어 마이크를 잡는다. 한미 FTA를 주도했던 전 경제부총리 김진표가 저격수로 나섰다. "박근혜 위원장은 2007년 FTA와 2010년 FTA가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거나 의도적으로 왜곡하고 있다"고 포문을 연 그는 "여권 대선 주자의 위상에 걸맞지 않은 무지의 소치이고 몰역사적인 궤변"이라고 말했다. 골수 좌파 이인영 최고위원은 야권 연대와 결속을 강조했다. 그는 "모든 화력을 박근혜 의원의 이 말씀에 대한 반격으로 집중하자"는 글을 트위터에 올렸다.
 종편 방송이 전파를 타면서 개그프로가 부활조짐을 보인다고 한다. 엄밀하게 말하면 종편 때문에 개그프로가 살아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가 그만큼 희화화 되고 있기에 개그가 생명력을 얻는다는 이야기다. 이쯤 되면 애매한 정치판을 정확하게 읽어줄 '애정남'이 나설 만 하다. 일등공신은 역시 정치다. 새로운 소재 발굴에 머리털을 뽑아야 하는 개그계에 정치는 매일 매시간, 생뚱맞고 놀랍고 경을 칠만한 소재로 마이크를 잡고 있다. 다만, 새롭고 참신하지 않은 것이 흠이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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