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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의 보도만 보면 우리 아이들이 생활하는 학교가 폭력집단인 것처럼 보인다. 왕따는 애교 정도이고, 주먹질은 장난 수준이다. 왕따나 주먹질이 예사로 치부될 정도니, 드러나는 부분은 섬뜩하다. 상납과 조직, 협박과 범죄수법 교사까지 하는 '일진'의 흉포화는 가슴을 먹먹하게 한다. 어쩌면 드러나지 않은 폭력은 또 다른 섬뜩함으로 다가올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니 연일 대책회의에 각종위원회 구성까지 어른들이 바빠졌다. 학교가 왜 이 모양이 됐냐고 야단이다. 밥상머리 교육이 어떻고 처벌 강화가 어떻고, 심지어는 학교에 경찰까지 배치해야 한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어쩌다 대한민국 학교가 이 지경이 됐는지 답답할 노릇이다. 실제로 올해부터는 스쿨폴리스라는 이상한 용어가 현실이 됐다. 울산에도 9명의 스쿨폴리스가 배정돼 학교폭력을 전담하는 모양이다. 다행히 아직 학교에 배치된 것은 아니지만 이대로 가다간 교무실 옆에 스쿨폴리스 사무실도 생길 판이다.
 정말 학교폭력이 경찰을 동원해야 해결책이 나올 정도가 된 일일까. 성폭행도 모자라 동영상을 찍고 일진을 심어 상납사슬을 만든 일이 보도되다보니 정말일 것도 같다. 하지만 이 같은 일이 전체라고 착각하고 마치 대한민국 모든 학교가 일진의 장악 속에 폭력집단화됐다고 일반화하는 일은 곤란하다. 더구나 학교폭력 문제를 이야기할 때마다. 마치 학교사회가 기성사회와 아무런 상관없는 특별구역인 것처럼 치부하는 태도 역시 문제다. 흔히 학교폭력 문제를 다룰 때마다 북유럽 국가들의 사례를 이야기한다. 그들의 학교폭력 해결방법을 모범사례로 삼고, 이를 롤모델로 우리에게 적합한 방안을 고민하자고 주문한다. 그런데 말이다. 그들의 성공사례를 이야기하면서 그들의 정치문화나 법치문화, 차이를 인정하는 사회적 배려에 대한 이야기는 왜 하지 않는지 모를 일이다.

 학교폭력은 학교의 문제나 학생의 문제가 아니라 바로 우리 사회의 문제다. 학교에서 벌어지고 있는 온갖 섬뜩한 일들은 사실, 우리 사회 곳곳에서 매일같이 벌어지는 입에 담기 싫은 범죄들의 한 부분이다. 범죄자들의 이야기만이 아니다. 정치는 기본이고 경제·사회 모든 분야에서 기성사회는 아이들에게 매일같이 새로운 범죄 정보를 알려주고 학습시키고 있다. 단적인 예로 '노페군단'만해도 그렇다. 아이들이 유명 등산복 패딩으로 존재감을 확인하고 똑같은 패딩을 입은 채 온갖 포즈로 인증샷을 찍는 모습에 혀를 차는 어른들은 스스로 샤넬이나 구찌 같은 명품에 휘둘리고 있는 자신의 모습부터 제대로 읽어야 한다. '노페군단'이라 이름 붙은 아이들의 획일화 문화 속에는 어른들의 줄서기 문화나 편가르기 문화가 몽고반점처럼 퍼렇게 도사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는 이야기다.
 수도권 고등학교에서 학생들과 동거동락하고 있는 한 교사가 '백설공주는 왜 자꾸 문을 열어줄까'라는 제목의 교단체험기를 책으로 냈다. 그래, 백설공주는 바보다. 문을 열어주면 안 된다는 일곱 난쟁이들의 절절한 당부를 외면한 채 자꾸만 문을 연다. 내 옷이 좋지만 그들의 옷을 입는 아이나 문을 열면 안 된다고 하지만 빨간 사과가 탐스럽게 보이는 백설공주는 닮았다. 어딘가에 소속되지 않으면 따돌림을 당하는 문화나 금기보다 어울림을 선택하고 싶은 충동은 외로움을 견디지 못하는 우리의 유전인자 때문이다. 공유의식이나 집단의식은 청소년기의 특징이다. 같은 색, 같은 스타일은 동질감이라는 묘한 신경안정제다. 그 질서가 유명 등산복 브랜드로 나타났을 뿐, 우리 세대나 그 이전 세대의 청소년 문화에도 있었던 유전인자였다.

 문제는 그 공유의식이 하필이면 물질화되고 그 물질화 속에서도 계급화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15만원대의 찌질이부터 70만원대의 대장까지 외투 하나로 서열이 나뉘는 문화는 바로 기성사회가 심어놓은 천박한 명품바람이 진원지다. 가방 하나를 사기 위해 몸을 파는 일까지 마다하지 않는 우리 사회의 음지는 가려놓은 채 패딩 하나로 왕따를 이야기하는 아이들의 문화에 혀를 차는 꼴이다. 교문만 나서면 휘황찬란한 저질 향락산업을 접하도록 판을 만들어 놓고 눈감고 귀막고 학교와 집만 오가라고 주문하는 모양새다. 어디 그뿐인가. 연일 주먹질에 멱살잡이를 밥먹듯하는 정치판이, 뒤돌아 뇌물을 받고 이권을 챙기는 이들이 근엄하게 목에 힘을 주고 학교폭력 대책을 이야기하다보니 제대로 먹힐 일이 아니다. 골프채를 휘둘러 부하 직원을 두들기고 수표를 던져주는 일이 보도되고 전원만 켜면 욕설과 음란물이 뒤섞인 채 발버둥을 치는 천박한 미디어가 판을 치는 마당에 아이들을 향해 외치는 공자왈 맹자왈은 그저 지껄이는 수준에 불과하다는 이야기다. 학교폭력 대책위원회보다 우리 사회의 문제를 고민하는 대책이 먼저라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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