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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절 아침, 두 가지 뉴스를 접했다. 하나는 우리나라 초등학교 학생 대부분이 애국가 1절을 제대로 알지 못한다는 것이고 나머지 하나는 일본이 기미가요 관련 조례를 잇달아 통과시키고 있다는 뉴스였다. 우리 초등학생들이 아이돌 가수들의 대중가요는 줄줄 외면서 애국가 1절조차 제대로 알지 못한다는 사실은 많은 것을 시사한다. 지금의 기성세대들은 거의 매일 아침, 애국가를 불렀다. 심지어 하루에 한번은 국가하강식이라는 것을 통해 길을 걷다가도 애국가 선율에 가던 발길을 멈추고 가슴에 손을 얹었던 기억이 있다. 그런 세대가 지금의 아이들을 보면 혀를 찰 노릇이지만 그보다 더 딱한 것은 애국가를 만든 이가 세종대왕이라거나 심지어 베토벤이라는 답이 나오는 대목에서는 허망해진다.

 애국가가 사라지고 있는 현실이 우리의 오늘이라면 일본의 경우는 시간이 거꾸로 흐르는 모양이다. 국가에 대한 애정을 법으로 명시하고 이를 지키지 않는 공무원들에게는 파면조치까지 취하는 조치가 검토되는 것이 오늘의 일본이다. 일본의 집권세력이 목숨처럼 받드는 일본의 국가는 바로 기미가요다. 한일 축구전이 열릴 때면 한번쯤 들어본 기미가요는 우울한 선율에 음산한 분위기가 마지막까지 전체 노래를 장악하지만 내용을 들여다보면 우리의 고려가요 정석가를 빼다 박았다. '천황의 통치시대는 천년만년 이어지리라. 모래가 큰 바위가 되고, 그 바위에 이끼가 낄 때까지'라는 가사는 '천황의 시대'가 영원하기를 간절히 갈구하는 바람으로 채워져 있다.

 기미가요는 일본의 전통 노랫말을 이어받았지만 곡조는 제국주의 시대 독일 음악가 프란츠 에케르트가 완성했다. 이때 완성된 곡이 메이지 일왕의 생일축가로 처음 불린 뒤 자화자찬에 오르가슴을 느낀 일왕의 희열을 감지한 신료들에 의해 일본의 국가로 사용됐다. 지금도 극우단체 회원들은 제국주의를 회상하며 당시의 군복을 차려입고 욱일승천기를 들고 그들의 왕을 향해 찬양의 노래로 기미가요를 부르고 있다. 바로 그 기미가요는 일제강점기 당시 조선총독부의 조선인 황민화 정책의 핵심코드로 활용돼 조선인들에게 하루에 1번 이상, 또한 각종 집회나 학교 조회시간, 일본 국기 게양과 경례 뒤에 반드시 부르게 했다. 그 우울한 선율이 가져다주는 묘한 중독성에 조선인들이 그들의 왕과 왕실을 신앙처럼 받들어주길 바라면서 말이다.

 얼마 전 공중파 방송을 보면서 경악한 일이 있다. 지식인층을 대표한다는 인사가 불쑥 '일제시대'라는 말을 연거푸 사용했다. 사실 우리 주변에서는 여전히 '일제시대'라는 용어를 그대로 사용하는 인사들이 꽤 있다. 그들을 향해 일일이 '일제시대'가 아니라 일제강점기라고 말해야 한다고 이야기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보니 한번쯤 이 용어에 대한 정리를 해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일제시대'는 일본제국주의시대라는 말의 준말이다. 일본 쪽의 시각으로 보면 메이지 유신 이후부터 태평양전쟁의 무조건항복 이전까지의 기간을 일제시대라고 하는 것이 맞다. 하지만 우리의 시각으로 보면 이 시기는 일제강점기로 부르는 게 맞다.  제국주의 일본이 문서위조에 강압적으로 체결한 국권탈취로 시작한 강제점령기는 한마디로 무단통치에 약탈과 폭압의 시대였다.

 깊고 푸른 바다 동해가 어떻게 불리든 바다일 뿐이지만 이름 하나로 그 바다의 의미는 달라진다. 우리식의 동해가 거북하다면 그들의 시각은 서해가 맞지만 죽어도 일본해를 양보할 생각이 없는 것이 일본이다. 이름 하나로 국가의 위상을 정리하려는 속내가 아니라 이름 이면에 숨은 영토욕과 지배욕이 물결치고 있는 셈이다. 바로 이런 점이 '일제시대'를 거부해야하는 이유다. 일제가 우리 영토를 짓밟은 시기를 정당화하려는 음모가 '일제시대'라는 용어에 깔려 있기에 우리는 치욕의 역사이지만 그 시대를 일제강점기로 외쳐야 한다. 세계의 석학들이나 역사학계에서 일제의 조선침탈을 국제법상 불법적 침략으로 규정하는 흐름이 이어지는 시점이다. 오늘의 일본이 아무리 우향우를 하고 기미가요를 울음처럼 토해내도 제국주의 시대, 그들의 간교한 흔적은 그들의 국기처럼 명정한 붉은 점으로 드러나기 마련이다.

 지금 일본은 우익단체들이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일본의 우익 단체는 제국주의 시대를 찬양하는데 혈안이다. 고성능 스피커를 장착한 검은색의 중대형 차량을 끌고 도쿄 등 주요 도심에서 그들의 왕에 대한 찬양이나 선전에 목을 매고 있다. 그 정점에는 일본의 재무장, 천황제 옹호가 붉게 칠해져 있고 뜻을 달리하는 자국민을 향해 살기어린 눈빛을 보내는 중이다. 바로 이런 우익을 지원하는 기업이 전쟁범죄의 원흉 미쓰비시와 우리 젊은 층이 매일같이 끼고 다니는 캐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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