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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춘이 지난지 오래지만 겨울 산바람은 여전히 매섭기만하다. 음력 보름밤, 남산 달빛기행에 나섰다. 삼릉계곡을 지나 냉골을 지나며 돌부처들을 만났다. 달빛은 '화강암에 잠든 돌부처 어깨에 내려앉아 노래하듯' 흐르고 있다. 배내 웃음을 짓는 돌부처도 있고 아예 눈을 뜨지 않는 돌부처도 있다. 머리 잃은 돌부처에선 자비의 미소가 보이기도 한다. 56억7,000만년 뒤에 나타난다는 미륵세상을 믿고 남산을 지켜온 돌부처들이다.
 남산은 소나무와 함께 온통 바위로 덮여 있다. 높이는 해발 468m에 불과하지만, 언제 봐도 힘차고 듬직하게 다가온다. 곳곳에 놓인 바위들이 주는 위용 때문이다.
 신라인들은 남산을 하나의 야외 미술관으로 상징화했다. 바위마다 자신들의 꿈을 담아 미륵을 불러 모으고 부처와 보살, 할머니와 어머니의 얼굴을 새겨 놓았다.

 나는 지난 1995년부터 남산을 찾았다. 음력 보름날 야간산행을 하는 늑대산악회의 도반들과 함께였다. 늑대들과 함께 남산을 어정거리며 오르락내리락하는 능선을 따라 다녔다. 선각육존불 앞에서 하늘을 날아오르는 선녀를 꿈꾸고 상선암을 지나 너럭바위에서 서라벌을 내려다보고 마애불 앞에서 부처님의 설법을 듣기도 했다. 
 때로는 수오재 주인의 피리 연주를 감상하고 고청 윤경렬 선생의 가르침을 들었던 장소도 남산이었다. 매달 음력 보름 밤, 도반들은 저마다 얼굴 가득 하얀 달빛을 받으며 시를 낭송하고 노래에 취하기도 했다. 새벽별이 질 때까지 서로 선문답을 나누다 보면 달빛 받아 신화가 그려지고 별빛 받아 문학이 되기도 했다.

 어느 해 정월 대보름 산행이었다. 선각육존불 앞 바위에서 한차례 콩쿠르를 연 뒤 200미터쯤 올라 서향의 마애여래좌상이 있는 절벽바위와 맞닥뜨렸다. 이 바위를 안고 왼쪽으로 돌아 샛길을 빠져나가는데 돌 틈에서 흘러나오는 희미한 빛이 있었다. 달빛보다 흐린 불빛이었다. 가까이 다가서 보니 큰 바위 끝에 작은 돌을 모아 돌집을 만들고 그 안에는 촛불을 밝혀 놓았다. 돌 틈새로 누군가의 서원처럼 촛불이 일렁이고 있었다. 마치 우리더러 밤 산행에 길을 잃지 말라고 밝혀 놓은 것 같았다. 겨울 산 위에서 만난 촛불! 모두 침묵하며 돌 틈의 촛불의 온기를 가슴에 안았다. 남산의 불빛, 자비의 불빛이었다. 부처님 상호를 대하듯 마음 푸근해지는 불빛이었다. 침묵의 순간이 지나고 도반들은 각자의 마음에 따라 촛불의 주인공을 찾기로 했다.
 "자식을 위한 어머니의 기도의 불빛이다" "누군가를 기다리는 간절한 여인의 마음이다"…저마다 상상력을 발휘하다가 동행한 시인에게 명명을 듣기로 했다.

 "이제부터 이것은 니르바나의 촛불이다"
 모두들 시인의 얼굴을 쳐다 보았다. 다음 말이 나오기를 기다렸다.
 "니르바나는 탐진치 삼독(三毒)이 모두 꺼진 열반의 상태를 말한다"
 바위틈에서 새어 나오는 촛불이 비로소 이름을 얻는 순간이었다.
 다시 남산 달빛기행에 나섰다. 여전히 소나무는 저마다의 소리를 내고 있었고 돌부처들은 여전히 그 자리를 지키며 잠들어 있었다. 니르바나의 촛불은 아직도 바위틈에서 제 몸을 태워 남산을 밝히고 있다.
 촛불의 빛이 사라지는 새벽녘이면 돌 틈으로 달빛이 흘러들 것이다. 남산의 모든 산과 계곡을 촛불 대신 달빛이 비춰줄 것이다. 남산의 바위와 부처들 역시 달빛으로 온몸을 목욕할 것이다.
 달빛 비추는 남산의 돌부처를 따라 오르다 보니 어느새 지친 마음이 돌이 되기도 한다. 니르바나의 촛불 앞에서 차가운 온도를 녹인다. 달빛에 드러나는 니르바나의 촛불이 나의 번뇌와 고통을 태워 줄지도 모른다. 작은 촛불이 내 마음을 비추고 달은 어느새 구름을 벗어나 온 남산을 맑고 밝게 비추고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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