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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오일 수베이 대표이사가 울산시에 통큰 기부를 했다. 왜란에 불탄 태화루를 복원하는데 100억을 내놓은 그의 결단은 단순한 대기업의 지역사회 공헌을 넘어 울산에 대한 대표이사의 감정적 교류를 느끼게 한다.
 수베이 대표는 한국식 이름으로 '이수배'라고 자신을 알리고 울산 이씨의 본관을 사용할 정도로 울산에 대한 애정이 남다르다. 국적이 사우디 아라비아인 그가 유독 울산에 애착을 가지는 것에 대해 다양한 이야기가 있지만 천년항구 울산의 역사를 거슬러보면 수베이 대표의 유전인자 속에 울산의 흙과 바람, 숲과 햇살이 녹아 흐르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천년전 울산은 국제항구였다. 아라비아 해를 지나 인도양과 남지나해를 넘나들던 무역상들에게 울산은 꿈의 항구였다. 대륙의 동쪽 끝, 금의 나라 신라는 아라비아는 물론 로마제국의 상인들까지 목숨을 건 항해에 뛰어들게 했다. 기록과 흔적이 많지 않아 사실관계를 명정하게 드러낼 수는 없지만 그 무렵 개운포와 외항강 하류 반구동 일대는 아랍권과 중국, 왜에서 온 무역상들이 북적였다. 그 무렵이 바로 8세기다.
 에스오일과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개운포는 신라가 국제사회와 소통하는 교류의 현장이었다. 우리 역사에서 서역인이나 아랍인이 등장하는 것도 바로 개운포에서 시작된 역사다. 회회인으로 기록된 아랍인들은 국제무역항인 개운포를 통해 신라의 수도 서라벌의 주류사회와 교류했다.

 고대아랍의 지리학자 이븐 쿠르다지바가 남긴 책에 의하면 신라에 많은 아랍인들이 왕래했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있다. 그의 책에 전하는 신라는 이렇다. <중국의 맨끝 깐수의 맞은 편에는 많은 산(山)과 왕들이 있는데 그곳이 바로 신라국이다. 이 나라에는 금(金)이 많으며, 무슬림들이 들어가면 그곳의 훌륭함 때문에 정착하고 만다> 또 다른 지리학자 알 이드리시도 그의 저서 '지리학 총서'에서 <신라를 방문한 여행자는 누구나 정착해 다시 나오고 싶어하지 않는다. 신라 사람들은 개나 원숭이의 목줄도 금으로 만든다>고 기록하고 있다. 문제는 이들 기록보다 중요한 이야기가 있다. 바로 은장도다. 울산의 특산품인 은장도를 보검(寶劍)으로 여긴 이슬람 상인들은 울산에서 은장도를 대량 구입해 아랍의 귀족들에게 팔았다고 기록하고 있다. 지금도 울산의 특산품인 은장도지만 대부분 조선시대 정절의 상징으로 이해하는 은장도가 바로 천년전 아랍 상인들이 귀하게 얻고자 했던 울산의 특산품이었다는 사실이다.
 아랍 쪽의 기록에 의존해야 하는 교류의 증좌이긴 하지만 울산과 아랍은 이미 오래전부터 특별한 인연을 가지고 있었다. 지난 1970~80년대 현대를 중심으로 한 한국기업이 중동 건설붐을 이뤘고 지금은 한류가 중동을 휘감고 있다. 지난달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열린 최대의 문화행사에 한국이 주빈국으로 초청된 일도 이같은 역사적 맥락과 무관하지 않다.

 울산과 이슬람 문화를 연결하는 증좌는 또 있다. 경주시 외동면에 있는 원성왕릉 앞의 무인상은 영락없는 아랍인의 형상을 하고 있다. 부릅뜬 큰 눈이 치켜올라 갔고, 쌍거풀진 눈이 푹 들어갔다. 큰 코는 콧등이 우뚝하고 코끝이 넓게 처진 매부리코이며, 큰 얼굴에 광대뼈가 튀어나오고, 큰 입은 굳게 다물고 있다. 귀밑부터 흘러내린 길고 숱 많은 곱슬수염이 목을 덮고 가슴까지 내리닫고 있는 것이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인상이다. 바로 처용이다.
 처용에 대한 해석이 다양하지만 그 주류는 역시 역신의 상징이자 외래문화의 징표로 보는 쪽이 많다. 도무지 융화될 것 같지 않은 낯선 문화, 낯선 모습이 아랍인의 원형에 우리 문화의 옷을 걸쳤다. 얼마나 많은 무슬림이 신라를 찾아 주류사회에 편입됐는지는 알 길이 없지만 곳곳에 남은 흔적은 그 수가 적지 않았음을 잘 말해준다. 처용으로 표상화된 외래문화에 대한 수용성이 신라의 문화적 그릇이었기에 천년왕국의 영화가 가능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맞는 말이다. 다양성을 수용하고 그 문화를 우리문화로 녹여내는 일이 가능했던 곳이 울산이었다. 바로 그 울산에서 천년전 신라를 찾았던 무슬림의 후예가 에스오일의 주인으로 자리해 울산의 문화적 토양을 북돋는데 일조하는 일은 그래서 의미 있다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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