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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판이 후끈 달아올랐다. 일견 야당이 선방을 날린듯 했으나 표정관리가 지나쳐 '안개표심'이라는 분석이 나오는 양상이다. 

   우선 야권부터 보자. 정권심판론에다 야권연대가 성사되면서 분위기를 탄 야당은 한미 FTA와 제주 해군기지 반대투쟁의 자충수에 주춤하고 있다. 해법은 역시 2030이다. 최근의 여론흐름이 2030을 넘어 40세대까지 우호적인 야권은 '선동훈풍'이 봄바람을 타고 만개하리라는 기대감을 갖고 있다. 그렇다고 여당의 분위기가 크게 좋아 보이지도 않는다. 고질병인 내부분열에 불협화음이 터져 나오는 여당은 전가의 보도인 '색깔진검'을 꺼내기 위해 경기동부연합을 띄우며 '조문망령'을 묵은 파일첩에서 꺼내 인쇄소에 넘겼다.

 정책이 실종된 선거는 재미있다. 복지가 어떻고 분배가 어떻고, 균형과 개발이 어떻다는 식의 주장이 맞서면 피곤하다. 이해관계 때문이다. 서로의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지점에서는 피아가 명확하기에 쌍방이 불편하기 마련이다. 그래서 이번 선거는 정책이 사라졌다. 아니, 엄밀하게 말해 충돌지점이 사라진 셈이다. 여당은 조금 더 왼쪽으로, 야당을 조금 더 오른쪽으로 정책의 플랜카드를 옮겨다 놓았다. 그러다보니 어느 쪽의 정책이 여당인지, 아니면 야당인지 경계가 모호해졌다. 정책이 사라진 자리에 버티고 선 것은 다름 아닌 색깔이다.

 빨갛게 변신한 낯선 여당이 고개를 숙인다. 초록을 아래로 감춘 야당은 노란빛을 전면에 내세웠다. 봄철, 개나리 꽃빛이 환하게 물들면 자신들도 만개하리라는 기대가 깔린 듯하다. 진보는 화려하다. 진보의 적인 가진 자, 누리는 자들의 상징색인 보랏빛으로 바디페인팅을 했다. 선거라는 이름이 정치판의 색깔을 몽땅 바꿔놓았다. 하지만 어떠랴, 당선만 된다면, 다수당으로 여의도를 점령할 수 있다면, 빨간색 아니라 연분홍 치마라도 걸치고 나설 수 있는 게 정치다.

 색깔로 승부하는 총선은 정책이 시큰둥하기에 더욱 거세질 전망이다. 복지정책을 비롯한 대부분의 공약에서 차별화가 없는 지금의 선거판이라면, 유권자들은 어느 당에 투표해야할지 혼란을 겪을 수밖에 없다. 보육문제를 국가가 완전히 책임진단다. 사병의 월급도 2배 이상 인상하고 재벌개혁과 무상복지 시리즈도 그놈이 그놈같다. 새누리당에서 종북좌파의 무리들이라 몰아세우는 민주통합당은 북한의 로켓 발사 중단을 요구하고 있고 그토록 의혹을 남발하던 천안함 문제도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전략과 전술은 다른 셈이다. 정권탈환을 위해 잠시 전술을 바꾸는 방법은 익숙한 정치공학 아닌가.

 선거 초반 야권의 '정권심판론' 공세로 고전을 겪었던 새누리당은 억울하다. 야당이 본모습대로 북한을 두둔하고, 천안함 폭침도 북한이 주적이 아니라고 목청을 돋아줘야 하는데 그나마 외치던 한미 FTA 반대 주장도 웬만해서 밖으로 드러내지 않고 있으니 답답할 따름이다. 살얼음 판 같은 선거전에서 마지막 승자는 정책이 아닌 이미지가 되고 있는 상황이다. 전략보다 전술이 먹히는 선거는 우울하다. 본질보다 이미지로 선택한 정치는 후회가 되풀이 된다. 알지만 양상을 비켜갈 수 없기에 여야 선대본부도 매일같이 이미지 전술에 열을 올린다.

 새누리당이 우려하는 것은 '부산어묵의 역설'이다. 상품의 콘셉트를 급격하게 바꿀 경우 소비자들이 다른 상품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 부산어묵의 역설이다. CJ가 부산어묵을 인수한 뒤 이미지를 기존의 빨간색에서 검정으로 바꾸자 매출이 급격히 떨어졌다. 어찌된 일인지 다시 빨간색으로 되돌리는 순간 매출이 회복됐다는 이야기다. 빨간색은 그만큼 위험하다. 위험한 줄 알지만 뼛속까지 바꾸겠다는 의지가 파랑을 버리고 빨간 립스틱을 칠한 셈이다. 젊고 역동적인 이미지로 빼앗긴 2030의 마음을 얻으려는 전술이 통할지는 미지수지만 기존의 한나라당이 가진 구태의 이미지를 벗어던지고 있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민주통합당도 색깔에서 외줄타기를 하고 있다. 기존의 녹색을 아래로 내리고 노란색을 전면에 바탕색으로 깔았다. 좌파정권 10년의 향수를 부르는 색이 노란색이기 때문이다. 통합진보당은 보다 공격적이다. 좌파의 이미지를 벗고 부르주아의 전유물이던 보랏빛을 가져다 머릿결에 염색을 하고 있다. 이렇게 색깔을 바꾸고 나니 선거판이 화려하다.

   본질보다 이미지로 승부하는 선거판은 유권자를 잠시 혼란에 빠뜨린다. '꼬리가 개의 몸통을 흔든다'는 웩더독처럼 잠시, 관심사를 바꿔놓을 수 있기에 우려도 크다. 종북좌파의 핵심인사가 평양에서 김정일 찬양을 하고 있어도 범민련을 거론하며 정면으로 공격하지 못하는 정치가 우리의 현주소다. 일본이 교과서로 엿을 먹이고 총리가 위안부 할머니들의 가슴에 대못을 박아도 그저 자신들만 대한민국의 미래를 책임진다고 떠들어 대는 것이 정치권이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지금 선거판에 나선 이들에게 국가의 미래는 홍보용이고 속내는 승리에 있다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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