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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선이 끝나자 대선 점술가들이 득세하고 있다. 민심의 향배와 득표율 비교까지, 분석과 조합으로 겨울 대선을 점치는 사람들이 주가를 올리고 있다. 그런데 이들이 꺼내는 비장의 무기는 대체로 비슷하다. 한쪽에 박근혜를 두고 다른 쪽에는 안철수를 올려놓는다. 단지 다른 것이 있다면 박근혜는 고정식이지만 안철수는 문재인과 손학규를 먼저 꺼내든 다음 마지막 선수로 앉히는 정도다. 결론은 연말 대선의 흥행 카드는 역시 안철수라는 식이다.
 

 맞는 말이다. 지난해부터 우리 정치에서 안철수를 빼고 이야기가 안 된다. 추상적 수사와 간헐적인 매서운 언어로 무장한 그는 영락없는 우리 정치판의 백신이다. 그의 눈에는 지금 정권을 잡고 있는 무리들이 하드 디스크의 본체에 잠복해 있다 때가 되면 본체를 잠식하는 좀비이자 웬만한 백신으로는 말끔히 사라지지 않을 악성 바이러스 쯤으로 보인다.


   백신박사인 그가 우리 정치 현실을 이렇게 진단하자 청년들이 열광했다. 당연한 일이다. 무균질이 혈액의 주류인 청년들에게 기성 정치는 오만과 방자를 넘어 불의와 타락의 상징이다. 그런 정치판을 향해 잊을 만하면 일침을 가하고 어눌하지만 분명한 어조로 질타하는 그는 청년들의 희망이 될 법하다. 언제부턴가 우리 젊은이들의 가슴 한켠에는 그가 나서 이 더러운 정치판을 백신으로 말끔히 정리해주길 희망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문제는 그를 두고 벌이는 우리 사회의 상황이다. 야당은 연일 안철수를 향해 하루 빨리 자신들의 캠프에 참여할 것을 권유한다. 아니, 지금 벌어지고 있는 상황을 보면 권유 정도가 아니라 아예 대놓고 애원하는 꼴이다. 여당도 별반 다르지 않다. 내심으로는 아직은 저쪽이 아니라는 생각을 버리지 못한 여당은 그를 향해 분명한 태도와 입장을 요구하고 있다. 이 얼마나 코미디 같은 상황인가. 이미 안철수를 빼면 정치 이야기가 되지 않는 상황에서 우리 정치판은 안철수에게 정치참여를 재촉하는 우스운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냉정하게 말해 안철수는 이미 현실정치에 뛰어 든 인물이다. 시골의사 박경철과 청춘콘서트를 할 때만 해도 순수성으로 무장한 젊은이들의 멘토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을 수 있지만 박원순 지지선언 이후 그는 분명히 현실정치에 뛰어들었다. 이번 총선에서는 그런 그의 입장을 더욱 분명히 하는 발언도 했다. "사회의 긍정적 발전을 일으킬 수 있는 도구로 쓰일 수만 있다면 설령 정치라도 감당할 수 있다. 만약 정치 참여를 한다면 특정한 진영 논리에 기대지 않을 것이다. 대선 출마는 선택하는 문제가 아니라 결국은 주어지는 것이다." 그의 어법을 그대로 옮겼지만 어느 한구석에서도 현실정치에서 비켜난 발언은 없다.
 

 이제 그의 문제는 선택이다. 정당정치의 프레임 속에 자신을 던질 것인가, 아니면 독자세력으로 야권후보와 단일화 방법을 쓸 것인가, 이도저도 아니라면 아예 처음부터 독자출마할 것인가의 선택이다. 어눌하게 보일지 모르지만 그는 대단히 영리한 정치를 하고 있다. 유권자들에게 매력을 잃은 기존 정치와 적당한 거리를 두면서 가끔 예언자 같은 말과 표정으로 현실정치에 조언을 던지는 방법은 고단수다. 총선이 끝나자 그는 "제3당을 창당했으면 (의석을) 많이 확보했을 수도 있는데…"라고 했다. 자신이 마음만 먹으면 우리 정치의 판세를 바꿀 수 있다는 이야기다. 둔갑술에 호신술까지 겸비했지만 아직은 때가 아니라 쓰지 않을 뿐이라고 기성정치를 향해 슬쩍 자신의 공력을 꺼내 보이는 태도다.
 

 그를 보고 있으면 55세에 주유천하에 나선 공자가 생각난다. 노나라에서 제법 힘을 쓰는 대사구 벼슬을 버리고 안연과 자로, 자공 등 제자들과 함께 수레에 몸을 맡긴 공자의 꿈은 대동사회였다. 삼천이 넘는 제자를 거느린 공자가 난세의 한복판에 뛰어들어 끝까지 이상을 이루고자 도전했던 것은 권력의 단맛이 아니라 모두가 함께 잘 살 수 있는 이상사회를 만드는 길이었다. 그런 그의 열정은 권력을 내려놓게 했고 스스로 고난의 행군을 감수하며 춘추전국을 떠돌며 '이상정치'의 세일즈맨으로 권력자들의 부름을 기다렸다. 비웃거나 조롱하거나 무시하는 이들까지 허허롭게 포용할 수 있었던 그였지만 스스로 현실의 벽을 절감했던 그는 14년만에 정치세일즈를 접었다. 먼 훗날, 세상이 바뀌면 자신의 뜻이 실현될 수 있으리란 믿음 하나로 후학들과 담소하며 여생을 보냈다.
 

 공자의 경우 무리의 맨 앞줄에 '공자식 정치를 팝니다'라는 간판을 걸지 않았지만 분명한 세일즈 행보였다. 제나라와 노나라에서 펼쳐보인 공자식 정치의 장점을 선전문구로 걸고 춘추전국의 수많은 제후들에게 스스로를 흥정했다.
    정치는 그렇다. 업적과 성과를 내용으로 그 속에서 빚어진 많은 오류를 논쟁거리로 삼아 현실에 적용하는 것이 정치다. 현실 속에서 부대끼고 헝클어지고 난장을 치다가 포괄적인 합의점을 찾아가는 것이 정치라는 사실을 공자는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안철수가 전국을 떠돌며 벌이는 주유천하는 정치 바이러스를 퇴치하겠다는 백신 선전 수준이다. 무엇보다 안타까운 것은 사회에 대한 면역기능을 한참 배워야할 청년을 향해 그가 던지는 '공자왈'이다. 던지고 지적하는 것은 그쯤이면 족하다. 정말 더러운 정치판을 정리할 백신이 있다면 이제부터 자신의 백신을 현실에 적용해보고 또다른 문제를 찾아 새로운 백신을 만들어가는 작업부터 시작하길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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