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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대 국회 임기가 곧 시작된다. 국회 개원을 앞두고 이번 총선에서 가장 큰 성과를 올린 통합진보당이 내홍을 거듭하고 있다. 부정투표를 계기로 이들의 종북실체가 드러난 이후 통합진보당은 색깔바꾸기에 혈안이 되어 있다. 비대위 구성을 통해 이미지변신을 시도하는 세력들은 당 안팎의 종북 의혹과 패권주의 청산에 본격 나선 상황이다. 이른바 혁신비상대책위원회는 '새로나기 특별위원회'라는 야릇한 조직을 만들어 '빨갱이' 이미지를 벗고 진정한 진보세력의 정체성을 찾겠다고 전투준비에 요란하다.
 

   문제는 통합진보당의 골수까지 박혀있는 종북세력을 과연 쉽게 도려낼 수 있을까하는 의문도 의문이지만 개혁의 주체조차 자신들의 색깔에 대해 여전히 모호한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비판적 합리주의라는 다소 모호한 철학용어를 탄생시킨 칼 포퍼는 한 때 열렬한 마르크스주의자였다. 철의 여인 대처가 인생의 사표로 삼았던 그가 마르크스주의자의 선봉에 섰다는 것은 의아한 일이지만 포퍼의 마르크시즘적 정신세계는 그의 철학적 성과의 밑거름이 됐다. 한 때 열렬했던 마르크스주의와 결렬하면서 포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젊어서 마르크스에 빠지지 않으면 바보지만, 그 시절을 보내고도 마르크스주의자로 남아 있으면 더 바보다.'
 

 우리 사회에서 종북세력이 한창 주가를 올렸던 지난 1990년 중반, 고려대 총학생회장을 지낸 이종철씨가 최근 통합진보당의 당권파에 대해 몇가지 평가를 내렸다. 우리 사회가 그들을 향해 던지는 종북세력이라는 단어는 유연한 표현이라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그는 단호하게 말했다. 그들에게 종북이라는 말이 오히려 약하다는 이야기다. 그들은 수령론과 주체사상으로 무장하고, 대한민국을 북한처럼 만들자는 사람들이라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실제로 이른바 주사파 계열의 종북세력은 북한을 단순히 추종하는 수준을 넘어선다. 그들에게 김일성은 신적 존재이자 세계 최고의 지도자다. 마르크스에 심취했던 20대가 주사파의 동굴 속에서 김일성주의자로 재구성되는 것이 우리 종북세력의 실상이라는 주장이다.
 

 그런 그들이 국회 입성을 앞두고 있다. 부정선거는 수단일뿐, 국회입성의 목적을 위해서는 절대로 굴복하지 않는 것이 그들이다. 문제는 종북세력의 국회입성이 기정사실화 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른바 김일성주의자들이 국회에 들어오면 사태는 걷잡을 수 없게 된다. 대한민국 국회의원은 특권만 200여개에 달하는 자리다. 일단 신분보장과 국가기관의 최고 보안사항을 열어볼 수 있다. 대한민국 검찰의 압수수색 조차 몸으로 막는 상황에서 국회의원이라는 완장을 차게 되면 그야말로 무소불위가 될 상황이다.
 

 이번 국회에 통합진보당의 비례대표로 입성하는 이석기는 종북세력 논란의 중심에 있는 인물이다. 국정원에서 민혁당 경기남부위원장이라고 밝힌 그는 대한민국 좌파학번의 대표인 82학번이다. 1982년 한국외대 용인캠퍼스 중국어통번역과에 입학한 그는 마르크스주의에 경도되어 좌파학습을 시작한 이후 주사파의 대부로 성장했다. 그런 그가 김일성 추종세력의 정당조직화를 꾀하던 민혁당 사건의 적발로 감옥생활을 하다 김대중 정부시절 8·15 특사로 풀려났다. 그는 다름 아닌 주사파로 불리는 지하세력으로 우리사회의 그늘을 찾아다닌 김일성주의자의 상징인 셈이다.
 

   그런 그가 국회 입성을 눈앞에 두고 있는 상황에서 통합진보당의 사퇴 요구는 가당치 않은 일이다. 흔히 진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우리 사회의 종북좌파는 보수에 대항한다는 깃발아래 하나가 됐지만 엄연히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다. 지난 2008년 총선 직후 벌어진 민노당 분당 사태가 이들의 사상적 차별성을 잘 보여준다. 심상정과 노회찬, 조승수 등 PD계열 인사들은 "북한 핵실험을 용인하고 사실상 고려연방제를 뜻하는 '코리아연방공화국'을 대선 구호로 내세운 당내 종북세력과 더 이상 함께할 수 없다"며 뛰쳐나와 진보신당을 만들었다. 문제는 북한에 대한 인식의 차이였다.
 

 우리 사회는 분명 진보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 진보와 종북의 구분이 모호한 우리 사회가 이번 통합진보당 내분사태로 종북의 실체를 학습하게 됐다. 어쩌면 다행스러운 일이다. 종북좌파가 진보와 혼용될 때 종북세력은 뒤돌아 미소를 지었다. 그 미소의 결과물이 이제 국회입성이라는 성과로 나타나게 됐다. 진보는 필요하지만 종북은 안 된다는 이야기는 그들에게 더 이상 경고음이 될 수 없다. 어쨌든 국회에 들가가면 되고 들어간 다음은 자신들의 세상이 된다고 생각하고 있다.   
 

 20대의 포퍼가 마르크스주의에 열광했던 이유는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세상'을 위한 인간중심의 사회가 필요하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가 마르크스를 벗어 던지고 합리적 비판주의자로 변신한 이유는 마르크스주의가 전체주의나 맹목적 주체사상으로 변질되고 있기 때문이라는 자각 때문이었다. 사회가 점진적인 진보로 나아가는 것은 필연이다. 문제는 빨갱이조차 분칠을 하고 팔짱을 낀다고 함께 웃으며 걸어갈 수는 없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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