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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의 아름다운 서재] 3.울산과학대 유상용 교수 연구실
일상의 공간이자 지나온 삶의 흔적 오롯이 간직한 '지식 공유소'
2012년 05월 31일 (목) 21:25:09 김주영 uskjy@ulsanpress.net

# 한눈에 봐도 일본어 교수의 서재
지난 주 울산의 한 일본어과 교수가 평소 접하기 힘든 일본어 서적을 자신의 서재에 구비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알음알음 끝에 그의 연구실을 찾았다.
 울산과학대학 실용외국어과 유상용 교수의 연구실인 이곳은 많은 대학교수들이 그러하듯  연구에 필요한 자료들이 있는 서재일 뿐 아니라 수업을 준비하고 학생들과 만나는 매일의 일상이 이루어지는 공간이다.

 서재의 한쪽 벽에는 뜻을 알 수없는 일본어들이 겉표지를 장식한 전집류, 문고판, 실용 회화책, 심지어 일본만화책까지 수천 권의 다양한 일본어 책들이 빼곡했고 그 옆 한 켠에는 일본의 각종 공예품들이 아기자기하게 전시돼있어 이곳이 일본어 교수의 연구실이란 것을 한눈에 둘러봐도 알 수 있었다.

   
▲ 자신의 서재에 꽂힌 책들을 소개하고 있는 유상용 교수. 빼곡히 꽂힌 일본전집들 사이로 중간중간 튀어나온 책들이 눈에 띈다. 지금 보고 있는 책을 의미하는 표시다. 이처럼 그에게 이 서재는 책을 읽고 강의준비를 하기도 하고 학생들을 맞이하는 일상의 공간이다.


# 끝없는 책 욕심에 희귀 고전문학 많아
그는 책 욕심이 많은 사람이다. 물론 글로 밥을 먹고 사는 사람들이라면 책 욕심이 많은 것이 당연하겠지만 그의 경우 '일본 중세문학'이라는 자료가 많지 않은 분야를 전공으로 삼다보니 더더욱 자료를 모으는데 공을 들일 수 밖에 없었다.
 실제로 그의 서재에 꽂힌 책들 대부분은 시중에서 구하기 힘든 것들로 이런 책들은 적게 발행돼 구하기도 힘들 뿐더러 가격까지 비싼 경우가 많다.
 이곳을 채우고 있는 책들은 그가 지난 10년간 일본에서 공부하는 동안 헌 책방 등에서 한 권 한 권 따로 모은 책들로 이렇게 발품을 팔아 전집을 마련하면 새 책 가격의 세 네 배는 너끈히 아낄 수 있었다고 했다.

 일본 중세문학을 텍스트삼아 작품속에 등장하는 말이 각 시대에 따라 어떻게 변화되는지를 연구하는 그는 그 때문에 한 작품을 볼때 원작을 바탕으로 한 다양한 판본을 많이 구해서 보는 경우가 많다.
 그 예로 그의 서재에는 공자의 <논어>를 일본의 한 상류층집안에서 번역하고 주석을 달아 교육용으로 만든 책이 있는데 이렇게 만든 책은 비단 그 한 집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집안 대대로 이어지면서 후대에 새롭게 만들어진다. 이렇게 개정을 거치면 그 전에 나온 책과는 그 내용이나 쓰이는 말들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그는 지금도 일본에서 그가 연구하는 분야와 관련된 신작들이 있으면 그 책을 수집하기 위해 개인적으로 출판사와 거래를 하거나 일본에 있을 때 인연을 맺은 헌책방들과 연락을 하며 어떻게든 그 책을 손에 넣기 위해 애를 쓴다.

   
 

 서가에 꽂힌 손 떼 묻은 책들을 혹은 너무 아껴서 주름 하나 가지 않은 새 책들을 한 권 한 권 보여주는 그의 모습에서 그에게 이 책들이 갖는 각별한 의미가 절로 느껴졌다.

# 늘 책과 함께 했던 유년시절
 지금은 이렇게 책 속에 파묻혀 사는 그이지만 어릴 때부터 공부벌레는 아니었다고 했다.
 그럼에도 지금도 한 주에 책 한권을 읽을 정도로 다독가였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주변에 늘 책이 있었다고 했다.

 영어조기교육을 하는 요즘과 달리 그의 아버지는 천자문으로 조기교육을 했는데 그는 아버지에게 한자를 배웠던 그 시절이 그때는 참 싫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일본어 공부에 그보다 더 큰 도움이 됐던 것은 없었다고 했다.

 "오늘날 제가 한자를 근간으로 한 일본어를 공부하게 된 것도 돌이켜보면 어릴 때 아버지께서 익히게 해주신 천자문을 시작으로 청년기 때 읽었던 국화와 칼 등 일본문화관련 책에서부터 출발했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겁니다. 그러고 보면 우연하게 어떤 책을 읽느냐가 훗날 절묘하게 그 사람의 삶을 결정해준다는 생각이 들어요."
 
# 가업 잇기위한 일본어학과 진학이 인생 전환점
종로에서 4대째 종묘상을 크게 운영해오고 있는 그의 부모님은 그 역시 가업을 물려받길 원했다. 대학 원서를 쓸 당시 그의 아버지가 일본어학과 원서를 손수 가져와 그곳 진학을 추천한 이유 역시 일본으로 판매활로를 확대해보려던 아버지의 계산이 깔려 있었다. 당시까지 학업에 큰 욕심이 없었던 유 교수는 아버지의 뜻에 따라 단국대 일본어과에 진학했다.

 하지만 막상 일본어과에 진학하자 그의 인생은 아버지의 뜻과는 다른 길로 나아갔다.
 그는 처음 대학에 진학했을 때만해도 이미 일본어 기초를 닦고 들어온 동기들에 비해 성적이 부진해 1학년 내내 꼴찌신세를 면치 못했다. 군 제대 후 도저히 이대로는 안되겠다 싶어  그는 학교수업을 마치고 하루에 3~4시간씩 학원에서 '나머지'공부를 했다.
 2학년이 되자 어느 정도 수업을 따라갈 수 있었고 성실히 공부한 결과 졸업 전엔 학과 교수님이 대학원 스카웃 제의를 할 정도가 됐다. 그 때 일본어에 조금씩 재미를 느끼기 시작했던 그는 이번 기회로 제대로 공부를 해보자란 마음을 먹고 대학원 진학을 했다.

 곧 다음 학기에 일본 문무과학성에서 국비장학생을 뽑는 소식을 날아들자 별 생각 없이 지원도 했다. 그런데 전국에서 한두 명 뽑는 여기에 그가 뽑혔다. 그리고 이후 10년을 일본에서 국비장학생으로 살며 그의 인생은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나아갔다.
 
# 내 손을 잡고 이끌어주었던 스승처럼
한국에서 늘 자신을 곁에 두고 가르침을 주신 학과 교수님이 있었다면 일본에서도 그에게 영향을 준 교수들을 만났다. 그곳에서 학자란 본디 저래야 되는구나 하는 동경을 갖게 만든 스즈키 탄드르 교수와 같은 인생에 큰 영향을 준 스승을 만났다. 그가 기억하는 일본의 스승들은 국경과 언어의 경계를 넘어 그에게 참된 가르침을 주었고 지금도 그 가르침을 이어가고 있다.
 


   
▲ 유상용 교수가 진로상담을 위해 연구실을 찾은 학생과 얘기를 나누고 있다.
 그래서인지 지금 교편을 잡고 있는 그 역시 학생들에게 의미 있는 스승이 되고 싶다고 했다. 인터뷰의 절반은 현재 자신이 추구하는 교육철학에 대한 얘기를 했을 정도로 지금 그의 주된 관심사는 자신의 공부보다는 학생들을 위한 참된 교육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 있는 듯 했다. 취재가 이어지는 동안에도 그를 찾는 학생들의 발걸음이 종종 이어졌고 끝날 무렵에는 한 학생이 찾아와 진로상담을 했다.
 스승의 날을 맞이해 학생들이 일일이 쓴 편지와 이들이 그린 그의 초상화가 연구실 한편을 장식하고 있었는데 이들을 소중히 여기는 그의 마음이 느껴졌다.

 그의 서재를 나오면서 그가 그동안 쌓아온 지식의 보고인 이 공간이 결국 그의 스승을 거쳐 그의 머릿속으로 또 다시 그의 제자들에게 전해진다는 것을 생각했을 때 결국 진정한 지식이란 이렇게 공유를 통해 많은 이들이 나눠가짐으로써 더욱더 빛을 발하는 것은 아닐까란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도 그의 서재가 그의 지식을 풍부하게 하는 그의 서재일 뿐 아니라 그의 제자들의 삶도 더 풍성하고 윤택하게 하는데 쓰일 서재로 나아갈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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